나도 나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우리 팀의 워크샵이 있는 날이었다. 그동안 코로나로 외부 활동에 규제가 많았던 터라 팀원들은 설레는 마음을 가득 담고 있었지만, 사실 나는 회사의 단체 활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평소 같았음 연차를 내버리거나 자연스럽게 빠졌을 텐데 이번에는 참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처럼, 이렇게 된 이상 내 의견이나 마음껏 내보자는 심정으로 이것저것 프로그램을 제안했는데, 평소와 달리 적극적인 나의 모습에 다들 반가워하며 모든 일정을 내가 제안한 방향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2주일 전부터 단체석으로 예약해 두었던 서울숲의 '호호식당'에서 우리 팀만의 조용한 식사를 마치고 버크만으로 향했다. 내가 제안했던 프로그램이 기업고객을 위한 버크만의 팀워크샵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이메일을 통해 전달받은 개개인의 진단은 이미 완료한 상태였고, 우리는 그 기관에서 각자의 결과지를 공유하며 서로의 성향과 업무 스타일을 파악해 볼 수 있었다. 또한 업무 외적으로 몰랐던 서로의 모습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같이 일한 지는 오래됐지만 가끔 팀원들의 어떠한 행동에 물음표가 생길 때가 있었는데, 오늘의 결과를 통해 왜 그런 행동을 했었는지 납득이 됐다. 프로그램을 마치고 우리는 서울숲을 산책하며 그동안 몰랐던 서로의 모습을 두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끝으로 다들 이 프로그램이 너무 좋았다며 꼼꼼히 준비한 나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나야말로 모두에게 만족스러웠다니 참 다행이라 생각하며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 생각이 많아졌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나의 적성에는 잘 맞지만 타인에게 보여지길 원하는 나의 모습과 나의 진짜 욕구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강사님의 말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팀원들의 점수표를 보던 강사님은 나를 지칭하며 이 팀을 위해 본인이 참고 있는 부분이 굉장히 많다는 말씀을 하셨고, 이 부분에서 팀원들이 나를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몰랐던 부분이었다.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현재는 독립 컨설팅펌의 대표이자 교수, 작가, 강연자 등의 다양한 분야로 활동 중인 야마구치 슈의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에서 저자는 우리는 쉽사리 '알았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말한다.
우리의 배움은 알았다고 생각한 순간에 정체되고 만다. 과연 스스로 설렐 만큼, 앎으로써 자신이 달라졌다고 생각할 정도로 알게 되었는가? 우리는 안다고 내세우는 일에 조금 더 겸허해져도 좋을 것이다. 쉽게 아는 것은 과거의 지각 틀을 그대로 늘려 가는 효과밖에 가져다줄 수 없다. 정말로 자신이 바뀌고 성장하려면 안이하게 '알았다'라고 생각하는 습성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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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를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가끔 뒤통수를 맞는 일이 생긴다.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내 안의 나는 그런 내가 가소롭다는 듯이 새로운 모습들을 자꾸 보여주곤 하기 때문이다. 위 책에서는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지적으로 태만해진다고도 말하는데, 어쩌면 스스로를 알아가는 일에 정성을 다하지 않는 순간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오늘의 나도 그랬다. 내가 하고 있는 일과 나의 감정, 욕구들을 이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또 뒤통수를 맞았다. 새롭게 알게 된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보며 어쩌면 배움이라는 것은 평생에 걸쳐 계속해야만 하는 긴 숙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를 공부하는 것,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공부하는 것, 그리고 세상의 다양한 지식과 문화를 공부하는 것 등 배움은 끝이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는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앞으로의 나는 또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나라는 세계를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