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첫서재, 모두의 첫서재 이야기

남형석 작가의 산문집 <돈이 아닌 것들을 버는 가게> 리뷰

by 내민해
돈이 아닌 것들을 버는 가게. 돈 대신 사람들과 사연이 투박하게 쌓여가는 이 공유서재의 이름은 '첫서재'다. 세상 모든 처음이 시작되거나 기억되는 곳, 저마다의 서툴고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쌓여가는 공간으로 숙성하고픈 마음이 세 글자에 담겨 있다. 어디에서도 다독여주지 않는 어른의 서투름을 보듬는 공간이 지구에 하나쯤은 필요할 테니까.

<돈이 아닌 것들을 버는 가게> 남형석


'나묭'이라는 필명을 가진 이 책의 작가님은 내가 브런치에서 우연히 알게 된 분이다. 본명은 남형석. 이 책이 출판되기 전부터 그분의 브런치를 통해 <첫서재>를 알게 되었고 작년 여름휴가 때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길치인 내가 그곳을 잘 찾을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도 지도로 짚어가며 구불구불 골목길을 걸어가던 그때의 설렘이 아직도 생생하다. 첫서재 입구부터 느껴지는 따스함은 내가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그 모르는 분들, 모르지만 모르지 않기도 한 분들을 하나하나 초대하고픈 공간이 오늘부터 문을 엽니다.
꿈꿔왔던 공간에서 제가 머물 수 있는 기간은 단 스무 달이에요. 휴직을 끝내고 회사로 돌아가면 아예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저 아닌 누군가에게 관리나 운영을 부탁드려야 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고작 스무 달 운영하려고 이토록 과하게 시간과 돈과 정성을 들였다는 게 좀 바보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그것조차 특권이고 행복이라 믿어요. 바보 같아 볼 기회가 있다는 게, 단 스무 달이라도 꿈꾸던 공간에서 머물 수 있다는 게 어딘가요.


그분의 브런치에 담겨있던 지난 글들을 뒤늦게 한 편씩 아껴 읽었을 당시 이 문장들만큼은 마음에 콕 들어와 메모해뒀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 글의 내용처럼 <첫서재>는 시한부 공유서재다. 서재지기님이자 이 책의 저자인 남형석 작가님이 스무 달 휴직을 결심한 뒤 춘천에 내려와 시한부 공유서재를 차린 것이다. 2021년 봄부터 올해 가을까지만 문을 여는 이 공간은 어쩌면 끝이 정해져 있기에 더 특별하고 소중한 공간이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육십 년 묵은 폐가를 고쳐 작가님만의 방법으로 차곡차곡 이 공간을 조금씩 채워갔고, 이 공간의 정성을 알아보는 이들, 닮아있는 이들은 작가님만의 초대에 응답하듯 지금도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책은 남형석 작가님의 두 번째 책이다. 이토록 섬세한 감각의 서재지기가 또 있을까 싶은 그분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카페 안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 하나에도 혹여나 손님들에게 불편함을 줄까 노심초사하는 이분의 깊은 배려에 내 마음까지 온기가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특별한 호의를 베풀지 못했음에도 환대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손님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바라봐주는 다정한 모습도 좋았다. 다른 카페의 여느 사장님들과 달리 손님을 진심으로 기다리며 설레하는, 아니 손님보다는 방문객에 가까운 누군가의 귀한 발걸음을 반겨주는 이분의 순수함이 좋았다. 그냥 북카페가 아니었다. 그냥 공유서재도 아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첫서재>라는 누군가의 집을 방문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공간의 작은 소품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손님의 작은 것 하나까지도 섬세하게 살피고 고려하는 서재지기님의 세심한 배려들이 모여 만들어진 특별한 공간이었다. 그 공간을 가만히 글로써 훔쳐보는 나는 마치 하나의 특권을 누리는 사람과 같다 생각했다. 작가님의 조심스러운 발걸음 소리와 커피를 내리는 소리, 컵을 닦는 소리 등 첫서재의 고요함을 헤치지 않으려는 다정한 움직임들을 손님들은 과연 알고 있을까.


내가 방문했을 때 나 또한 같은 마음이긴 했다. 그동안 작가님의 글을 브런치에서 꾸준히 읽어왔던 터라 이분의 세심한 배려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고 나도 그 배려들을 가만히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 발걸음 하나가 조심스러웠다. 행여나 삐그덕 거리는 나무소리나 테이블에 책을 올려놓는 둔탁하고 무심한 소리가 서재를 채우기라도 할까 봐 평소보다 더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이곤 했다.


얼마 전 마지막으로 <첫서재>를 다녀왔다. 이 공간이 문을 닫기 전에 마지막으로 꼭 다시 방문하고 싶었고 그날이 되어 설레는 마음을 안고 새벽부터 집을 나섰다. 그전부터 작가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누군가의 관심을 일방적으로 받는 입장이실 때가 많으셨을 것 같아 그조차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문을 똑똑 두드리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 조심스럽게 작가님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 말씀드렸고 흔쾌히 응답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세 번째로 첫서재에 방문했던 날 나는 작가님과 처음으로 꽤 오랜 시간 대화를 이어가며 그동안 궁금했던 부분들과 작가님이 첫서재를 만들고 유지하고 이제 다시 일터로 돌아가려 하시는 일련의 과정들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분의 글과 책을 읽었을 때 느꼈던 온기가 얼굴을 직접 마주하고 말로 소통하는 순간에도 고스란히 아니, 더 다정하게 녹아있었다. 2시에 일어나야 해서 그 시간까지 대화를 이어가고 싶었지만, 그날따라 유독 끊이지 않는 손님들의 발걸음 덕분에 대화를 더 이어가는 것은 내 욕심일 것 같아 서서히 마무리했다. 앞으로도 글로 계속 소통할 수 있을 것이기에 이 만남이 다가 아닐 거라 생각하고 남은 시간은 첫서재와 나의 작별인사를 위한 시간으로 채워갔다.




어제 독서모임에 나가 이 책을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이 모임에서 작가님의 첫 책(고작 이 정도의 어른)도 소개(라 쓰고 자랑이라 읽는다...)했었고, 작가님과 첫서재에 대한 이야기는 친한 사람들에게 워낙 여기저기 전했던 터라 이번 모임은 나가기 전부터 단단히 다짐했다. 너무 좋아하는 티를 쏟아내지 말고 적당히 들뜬 마음으로 이 책을 담백하게 소개하자고 말이다. 결론은 실패였다. 모임장님은 내가 이 작가님 소개를 신나게 이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보시고는 '아... 고작 이 정도의 어른 쓰셨던 작가님'이라고 가만히 읊조리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를 남에게 소개하는 일은 이미 말투와 표정부터 다르다. 이 책과 서재에 담겨있는 깊은 뜻과 나의 감상(이 서재와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말이지!)을 수도꼭지가 열린 사람처럼 와르르 쏟아내듯 말하는 나의 모습이 다른 분들에게 어떻게 보였을지는... 가만히 생략하기로 한다. 아무튼 나에게 그만큼 특별한 공간이고, 이 공간이 있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소중한 책이었다는 것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나는 작은 것 하나에도 정성을 다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그 일에 뭘 그렇게까지 힘을 쏟냐고 핀잔을 줄 법도 한 일에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서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말이다. 내가 <첫서재>를 좋아했던 마음도, 이 서재를 만들고 다듬어가시는 작가님의 섬세한 마음을 좋아했던 이유도 다 거기서 출발한다. 진심과 정성을 다하는 그 깊은 마음.


정성껏 무언가를 대하는 날들이 늘면서 어린 시절에나 발동했던 감각들이 되살아난 것도 뜻밖의 수확이다. 설렘이라는 감각이 그렇다. 어릴 적엔 쓸모없는 일에도 쉽게 설렜더랬다. 시간을 배분할 때 미래의 유용성까지 계산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른이 되고부터는 쓸모 '있는' 일에만 선택적으로 설렜던 것 같다. 기다림이라는 감각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수록 기다림은 처리되어야 할 일을 처리하지 못해 찝찝한 기분으로 남거나 그저 시간 낭비로 여길 뿐이었다. 대개는 '기약 있는' 기다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기약 없이 기다리는 일이 잦다보니 기다림이란 감정 자체에 집중하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앞마당의 꽃이 언제 필지 알 수 없기에 바라보는 마음이 느긋하고 학교 다녀온 아이가 뒤이어 갈 학원이 없기에 천천히 놀다와도 걱정스럽지 않다.


-

우리는 어른이 되어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쓸모'에 집착하며 살아가는가. 어떠한 일을 시작할 때 주변에서 흔히 듣는 말들이 '그래서 그거 하면 뭐 되는데?', '뭐 할 건데?', '얼마 버는데?' 등등 무수히 많은 쓸모의 질문들을 받는다. 목표지향적인 삶에 익숙해져 있어 때로는 그 질문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게, 나 이거 하면 뭘 얻을 수 있지?'라고 말이다. 그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꼭 정량적인, 혹은 타이틀이 있는 무언가여야만 우리는 주변의 인정(그래, 그러면 해볼 만하겠네 같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약 있는' 기다림보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 잦다 보니 기다림이라는 감정 자체에 집중하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고 말씀하시는 작가님의 문장을 읽으며 어쩌면 나는 이쪽의 사람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소모적인 일이, 혹은 쓸모없다 여겨지는 일이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서울에서 춘천의 <첫서재>까지 가는 여정은 꽤 멀다. 이른 새벽부터 집을 나서 경춘선을 타고 춘천에 도착할 무렵이면 편도만 2시간을 훌쩍 넘는다. 그럼에도 나의 발걸음은 늘 가볍고 설렘으로 가득하다. 이 설렘을 준 <첫서재>도, 이 소중한 공간을 만들어주신 작가님께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랑해주는 서재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씀하시는 작가님의 그 마음, '지금 걷고 있는 길 위에서 서툴어하는 사람들, 혹은 새로운 낯선 길을 걸어보려는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어 이곳을 만들었다는 작가님의 다정한 마음을 깊이 느낄 수 있는 공간, 나에게도 꿈이 실현된 공간이 바로 <첫서재>다.


<첫서재>의 미래는 아직 불투명하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이 공간의 온기는 누군가에 의해, 혹은 누군가의 마음에 의해 계속해서 잔잔하게 남아있을 것이라 믿는다.




KakaoTalk_20220912_070641927_01.jpg
KakaoTalk_20220912_070641927.jpg
KakaoTalk_20220912_070641927_02.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