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저는 계속 기다릴거예요
절필 선언을 하기까지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몸이 지치면 마음도 지쳐버리는 걸까, 마음이 지치면 몸도 덩달아 지쳐버리는 걸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제처럼 답이 없는 질문 같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브런치의 한 작가님의 뉴스레터를 받던 중 절필을 선언하는 편지를 받았다. 사실 처음 그 메일을 받았을 때, 제목에서 직감했지만 설마 아닐 거라는 생각에 계속 읽지 못한 채로 클릭을 망설이다 오늘에서야 용기를 내어 클릭했다.
"안녕하세요, OO님. 요아예요.
저는 기껏 연희문학창작촌 입주 작가가 되어 놓고서는 절필 선언 글을 쓰고 있어요. 뜬금없이 웬 절필이냐고 궁금해 하시는 분도 계시고, 잠시 쉬었다 오면 되는데 글을 놓아버린다는 이야기에 당혹스러워 하실 분도 계실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앞서요.
(중략)
작가 현요아가 아니라, 글을 쓰는 현요아가 아니라 그저 현요아라는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성숙한 척하며 조언을 더해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아닌, 영향력을 받는 독자의 입장으로요.
현요아 작가는 주변 지인들에게도 내가 종종 소개할 만큼 좋아하는 작가고 나는 심지어 그분이 얼마 전에 출간한 책도 받아 서평을 쓰면서 그분을 향한 팬심을 무럭무럭 키워가고 있던 중이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절필 소식에 무언가 나를 잘 지탱하고 있던 끈 하나가 툭 하고 끊어진 느낌이었다. 물론 이 작가님에 대해 오랜 기간 알아왔던 나는 이 선택을 늘 마음속 어딘가에 담아두고 있기는 했다. '언젠가는'으로 시작될 이별의 편지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이 현실이 되는 시점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다가오다니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버겁게 몰아붙였을까, 가장 좋아하는 글쓰기를 놓아버릴 만큼 말이다.
(여담이지만, 나는 이 메일을 받고 현요아 작가님에게 개인적으로 메일 답변을 보냈다. 언제 어디서든 작가님의 글을 계속해서 읽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득 담은)
몸은 정직하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가장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위험 신호를 보내는 게 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 기분까지 흔들어 놓을 만큼 말이다. 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는 말을 꽤 신봉하는 편인데 요즘의 나도 살짝 위태롭다. 몸이 지치는 것은 아닌데, 이게 번아웃인 건지 무기력함인 건지 잘 모르겠다. 하던 일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즐겁지 않은 것도 아닌데 어떤 날은 손가락 하나조차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사실 요즘 그 증상이 꽤 잦다. 나는 오고 가는 말에도 유독 진심을 담는 편이고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목에 가시처럼 턱 하고 걸려 넘어지는 순간들이 있는데 요즘이 부쩍 그렇다. 별것 아닌 말들에 자꾸 넘어진다. 목에 가시가 걸린 것 마냥 컥컥거린다. 그래서 말도 행동도 평소보다 조금 덜 하려 하고 조심스럽게 나를 살피는 중이다. 몸에게도 말을 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 지금 괜찮아?'라고 한 번쯤 물어보고 싶기도 하다.
나는 요즘 말에 자꾸 넘어진다. 농담이 농담처럼 다가오지 못한다. 이 이야기는 웃자고 하는 농담이 아닌데 왜 다 장난으로 받아치지? 나는 웃기려고 한 말이 아닌데? 왜? 뭐가 웃겨? 라고 부정적인 방향으로 혼자 생각한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것은 상대의 화법의 문제가 아니라 내 몸이 웃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마음이 넉넉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흐르고 나니 요 근래 나와 대화를 나누었던 소중한 사람들에게 괜히 또 미안한 마음이 올라온다. 글로 소통하는 것은 몸이 건강하지 않을 때도 충분히 괜찮은데, 직접 목소리로 표현하는 것은 아직 많이 서툰 나를 다시금 발견한다. 특히 요즘처럼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을 때 말이다.
나 요즘 정말 괜찮은 건가
김소연 시인의 <어금니 깨물기>라는 산문집은 어금니를 깨물며 타인과 일상을 버티는 힘과 사랑에 대하여 말한다. 책 말미에 등장하는 김종삼 시인의 시 한 편이 있는데 오늘의 나에게 이 시를 선물로 전해주고 싶다.
평화롭게
하루를 살아도
온 세상이 평화롭게
이틀을 살더라도
사흘을 살더라도 평화롭게
그런 날들이
그날들이
영원토록 평화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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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 시를 열다섯 살에 처음 접하고 기도문처럼 외우고 다녔다고 한다. 평화는 찰나처럼 우리에게 와서 우리를 잠시 안아주고 떠나버리기에 적어도 하루에 한 번씩만이라도 평화롭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말이 오늘의 나에게 더 와닿는다.
얼마 전 추석 연휴를 맞이해 서촌의 <호모북커스>라는 한옥공유서재를 다녀왔다. 12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데, 5,000원을 내면 3시간 동안 그 공간에 있는 2,500여 권의 큐레이션 된 장서를 읽어볼 수 있다. 서촌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그곳에서 가만히 누워 책을 읽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은 꽤나 평화로웠다. 몸에 적신호가 켜질 때마다 나에게 조금 더 편안하고 좋은 환경을 선물로 주고 싶다. 그 건강한 환경의 채움 덕분에 나의 오늘에 한순간이라도 평화가 깃들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