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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Sep 21. 2022

당신은 다정한 사람인가요

저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고 믿어요

얼마 전에 다녀온 춘천의 <첫서재>에서 서재지기이자 작가님인 나묭님과 처음으로 대화를 나눴다. 항상 글로만 소통했는데 제대로 된 첫 대화에서 작가님은 사실 궁금한 게 있었는데 물어봐도 괜찮냐고 하셨다. 나 또한 그동안 궁금했던 것이 많아 내 질문만 쏟아내고 있던 찰나에 잘 됐다 생각하며 흔쾌히 물어보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브런치의 필명을 왜 바꿨는지 궁금하다고 하셨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지만 브런치에서 쓰는 필명을 처음으로 바꿨기에 궁금하셨나 하는 생각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작가님은 이어서 말씀하시길 유독 자신이 아끼는 글자들이 있다고 하셨다(처음에는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 다시 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끼고 아끼는 글자가 있어 그 글자가 담긴 어떤 단어만 봐도 반갑고 눈길이 가고, 종내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뜻이었다. 작가님에게 그 글자는 바로 '연'이었다. 내가 처음 작가로 활동할 당시의 필명은 '연해'였고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고 하셨다. '연'이라는 글자를 좋아하셔서 작가님의 귀여운 아들 이름도 '연호'다.


서론이 길었는데, 그와 비슷하게 올해 내가 유독 아끼는 단어가 있다면 그건 바로 '다정'이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도 자주 걸려 넘어지는 나는 말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담는다. 그 말이 꼭 얼굴을 마주 하고서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사실 말과 글뿐만이 아니다. 건네는 모든 것에 해당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건네기 전에 상대방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잠깐이라도 생각하고 건네는 것과 무작정 건네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여긴다. 그 머뭇거림이 어디서 기반할까를 곰곰이 생각하다 가장 최근에 읽은 김혼비 작가의 <다정소감>이 떠올랐다. 글에서도 여러 번 언급했던 책인데, 그만큼 그녀의 말들이 좋아 여운이 깊게 남아있다.


김혼비 작가는 <다정소감>을 쓰면서 인생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 중 자신의 마음을 가장 강력하게 붙드는 건 결국 다정한 패턴, 다정이 자신을 구원하는 이야기였다고 말한다. 다정한 이야기들은 결코 뻔하지 않고, 하나하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유하다고 말이다. 그녀는 각각의 다정들에서 얻은 작고 소중한 감정의 총합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빛의 온도를 만들었고, 주저앉고 싶은 순간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쉽게 포기하지 않도록 붙들어주었다고 고백한다.


어떠한 말과 행동에 다정함을 담고 있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상대가 그 마음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설령 건네는 이의 말과 행동이 서툴러 다소 투박해 보일지라도 그 안에 담긴 진심을 알아볼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다정함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일까.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나는 대체로 누구에게나 무해한 사람이기를 바라고, 그 무해함을 위해서라도 다정함을 담아 말과 행동을 전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자기 객관화야말로 가장 어려운 것일 테니까. 그래서 내가 다정한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도 조심스럽고, 상대의 다정함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라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조심스럽다. 사실 내가 삶에서 '다정함'이라는 가치를 꽤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도 <다정소감>이라는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그만큼 나는 아직도 나를 잘 모른다.


일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인류애를 느끼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아쉽지만 그 수가 점점 줄어간다). 낯선 장소에서 낯선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을 때 나는 이 감정을 어떻게 돌려줘야 할지 고민한다. 하지만 상대는 자신의 고유한 다정함을 나에게 그저 건넸을 뿐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았음을 알게 된 순간 '아직 세상이 따뜻하구나'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닐 수 있는 혹은 다소 유난스러워 보일 수도 있는 '다정함'에서 비롯된 행동들이 나에게는 이만큼이나 귀하다. 가까운 관계는 또 어떤가.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다정함은 그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어 더욱 단단한 관계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올해 나를 지금보다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문장, 아니 단어는 바로 '다정함'이다. 나의 책 목록에 담겨있지만 아직도 읽지 못한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을 어서 빨리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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