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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Sep 27. 2022

응답하라 2004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숫자

나는 숫자에 대한 나만의 징크스 같은 것은 있는데, 일 년 단위로 불행과 행복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17살이 행복했으면, 18살은 무조건 불행하다는 나만의 논리 같은 것이다. 근데 학창 시절에는 이 가정이 꽤나 그럴듯하게 일치할 때가 많았다. 물론 내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한 해가 행복하면 놀랍게도 그다음 해가 꼭 불운을 몰고 다니는 것처럼 불행했다. 불행하다고 생각되는 해에는 어서 빨리 다음 해가 돌아오길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행복한 해가 되었을 때는 그다음 해를 알리는 제야의 종소리가 두렵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이쯤 되면 나의 상상력 아니, 망상력도 참 징글징글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20대를 지나 30대에 접어들면서 나의 징크스는 서서히 잊혀져 갔다. 불행했던 날도 있었지만, 같은 해에 그것을 상쇄시킬 만큼 행복한 일들이 계속 찾아오면서 아무렇지 않은 일들이 되었다.


나는 특별히 좋아하는 숫자는 없지만,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나이가 언제냐는 질문을 받으면 한결같이 대답하는 해와 나이가 있는데, 바로 2004년 15살이다.

물론 지금이 행복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고, 그때의 나는 좀 특별하게 즐거웠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사귄 단짝 친구가 사물놀이라는 동아리에 지나치게 관심을 보였는데, 그 친구와 같이 다니다가 자연스레 나도 그 동아리에 가입하게 된 것이다. 한참 인기가 많았던 댄스부, 연극부, 합창부, 방송부 등등을 다 마다하고, 언뜻 보면 어른들의 취미 같아 보이는 조금은 촌스럽게 여겨질 수 있는 동아리라는 편견도 잠깐일 뿐이었다. 막상 사물놀이부의 일원이 되어서는 생각보다 그 동아리에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4가지 악기 중 장구수였는데, 2년 동안 운우풍뢰라는 이름을 가진 그 동아리에서 온갖 희로애락을 다 경험하며 인생 정점의 즐거움을 맞이했던 것 같다. 함께 했던 동아리 선후배, 친구들과도 진한 우정을 나누며 방과 후 매일 약속한 것처럼 음악실에 모였다. 특히 대회나 공연을 앞둔 기간에는 밤늦게까지 매일 연습하면서 음악실 괴담을 만들어내고 담을 넘어 다녔다. 실제로 그 동아리 선배들 중 졸업 후 사물놀이패에 들어간 분도 있을 정도로 그때의 우리는 운우풍뢰에, 사물놀이에 늘 진심이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운우풍뢰와의 인연은 16살이 되어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작별을 고하게 되었다.


한동안 그 여운이 가시질 않아 서울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가장 행복했던 15살과 정반대로 16살이 나에게는 인생의 암흑기 같았다. 낯선 서울의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늘 동아리실에 가곤 했던 나에게 갑작스레 찾아온 긴 공백의 시간은 마음 둘 곳 없는 공허감만 계속 만들어주었다. 이건 마치 오래된 연인과 이별하고, 오랜만에 혼자만의 주말을 맞이하게 되어 뭘 해야 할지 몰라 슬프고 허전한 느낌과 비슷하달까.


오늘 이 글을 쓰면서 오랜만에 그때의 추억들을 다시 떠올릴 수 있어 좋았다. 이제는 서울에 산 지도 18년 차에 접어들어 서울 사람이 다 되어버렸지만, 아직도 나에게 창원은 고향 같은 느낌이다. 첫 직장을 퇴사하고, 이직을 준비하는 쉼의 기간 동안 혼자 창원을 다녀왔던 적이 있다. 어릴 때는 그렇게 커 보였던 학교와 동네가 지금 와서 다시 걸으니 어찌나 작고, 오밀조밀 귀엽게 느껴지던지. 그때 함께했던 친구들과도 서울로 이사 오고 하나둘 연락이 끊겼는데, 다들 잘 지내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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