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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Sep 29. 2022

마음아 안녕?

나는 나의 감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불안하다, 행복하다, 평안하다

이 세 가지 감정 중 내가 평생 갖고 싶은 감정은 두 가지, 내가 도망치려 해도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감정은 한 가지다.


오늘 출근길에는 평소 즐겨 듣는 명상 유튜브 채널 <마인드풀tv>에서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제목은 '내가 내 감정을 잘 모르는 이유'였다. 영상에서는 우리가 매 순간 스스로의 감정을 잘 알아차려 감정에 매몰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감정은 나침반이기 때문에 인생의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데, 감정을 스스로가 모르면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감정을 외면했을 경우 가까운 이와 사랑을 주고받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내가 내 감정을 잘 모르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내가 가장 공감했던 것은 어릴 때 성장과정에서 부모의 감정에 책임감을 느낀 경우였다. 부모가 평소 감정기복이 심하거나 일방적으로 감정을 쏟아내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부모의 감정을 계속 예의 주시하며 긴장 상태로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것에 집중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감정에 집중하는 게 더 안전하다고 느끼며 성장하는 것이다. 그 영상을 보면서 가만히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작년에 감정일기를 쓸 당시만 해도 내 감정을 스스로가 잘 인지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요 근래 내가 느껴왔던 감정들은 타인의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들의 안위만을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은 것이다.

머리가 띵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론으로는 잘 알면서 실천은 항상 어렵다. 다른 사람의 감정은 다른 사람의 것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이토록 선명하게 알면서, 타인의 감정을 그대로 흡수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 감정선을 따라가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멈춰!'라고 외쳐주고 싶은 심정이다.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나는 내 감정보다 타인의 감정을 우선 살핀다.

'저 사람 괜찮나?'

그리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나에게 묻는다.

'근데 나는 괜찮나?'


일과 사랑, 인간관계와 삶의 태도에 대해 쓰는 것을 좋아하는 임경선 작가는 자신의 저서인 <자유로울 것>에서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숨기고 억누르면 그것은 인생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분노가 몸 안에 쌓여 아프기도 하고 심리적으로 우울해진다. 감정을 억압해온 만큼, 그것들은 어느 날 불쑥 자연스럽지 못한 방식으로 터질 수 있다. 그렇게 터져 나온 강렬한 감정은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상처 입힌다.
(중략)
그렇다고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고 단언하고 마는 건 좀 곤란하다. 그 말은 '이게 나야, 어쩔래?'로 번역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함을 오만함으로 착각하는 일이다. 난 원래 이렇다, 라고 일방적으로 선언해버리는 솔직함은 궁극의 자기 합리화이자 정신승리 혹은 변명이 될 수 있다.


-

표현은 하되 일방적인 토로가 아닌 건강한 표현법이 필요하다는 그녀의 문장에 공감하며 밑줄을 그었다. 내가 어릴 때 막연하게 상상했던 좋은 어른의 모습은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는 현자의 모습과 같았다. 어떤 불안과 역경에도 초연한 자세를 갖춘 이의 모습 말이다. 하지만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내가 겪어온 어른들의 모습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굉장히 복잡하고 미묘한 여러 감정선들이 얽히고설켜있었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도 사람마다 달랐다. 누군가는 직설적으로, 누군가는 우회적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아무런 표현조차 하지 않는 방식으로 저마다의 감정들을 품고 있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훨씬 더 일찍 눈이 떠졌다. 원래도 남들보다 이른 시간에 하루를 시작하는 나인데, 웬걸. 오늘은 4시에 눈이 떠졌고 다시 자려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아 그냥 일어나버렸다. 6시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고,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정처 없이 걷다가 평소와 비슷한 시간에 회사에 도착했다. 그 중간중간 내가 느꼈던 감정은 불안과 허전함 같은 다소 부정적이라 말할 수 있는 감정들이었다. 그 이유를 찾으려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꼭 그 이유가 있어야만 하나. 그 이유를 알면 뭐. 찾아서 부정적이라고 낙인찍고 억누르려는 건 아니고?'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그냥 내버려 두고 싶어졌다. 자신의 감정이 어떤지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감정을 억지로 누를 필요도, 해결해야 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해소는 필요하지만 해결은 그 감정 자체를 수용하지 않고 부정한 감정이라고 꼬리표를 달아버리는 것 같았으니까.


나는 늘 감정의 평화를 바라지만,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 등장하는 감정 캐릭터들처럼 나의 감정들은 차례대로 돌아가며 방방 뛰어논다. 오늘은 흐렸다 내일은 맑았다를 반복하고 때로는 하루에도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것이다. 그 끝에는 해결이 아닌 알아차림이 필요했다. 명상에서도 그토록 말하는 생각의 알아차림처럼 감정도 마찬가지다. 그저 알아차리면 된다는 생각이 든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수용해 주고 나를 들여다봐주는 것. 그 과정에 타인의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고 나에게 집중하는 것. 작년에 그만뒀던 감정일기를 다시 시작할 시점이 온 건지도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오늘 나는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 코인노래방을 다녀왔다. 단 2곡만 불렀지만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가끔은 평소와 다른 환기가 필요하다고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되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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