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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Oct 05. 2022

저는 책 좋아하는 사람 좋아합니다

나한테 책 좀 추천해줄 수 있어?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질문 중 하나다.

독서가 취미라는 말을 할 때마다 주변에서 자주 들어왔던 질문이자 요청이다. 매번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어떤 책을 추천하면 좋을까 생각이 많아진다. 사람에 따라 좋아하는 관심사와 장르, 작가의 문체 등 여러 가지 변수가 많기 때문에 책 추천은 늘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글을 쓸 때마다 책 속의 문장들을 계속 인용했던 것은 일종의 감상문 같은 것이었다. 읽었던 책의 내용을 떠올리며 나의 생각을 작가의 말에 걸쳐(?) 표현하는 것은 책이 나에게 선물해 준 일종의 특권이라 여겼다. 감사하게도 말이다.


 <씨네21>의 김혜리 기자는 유튜브 채널 <겨울서점>의 김겨울 작가와의 인터뷰 중에 "영화한테서 영감을 훔쳐서 내 글을 쓴다"는 말을 전하는데, 나도 이와 비슷하다. 책을 읽으며 계속해서 나를 채워가고 그 채워짐을 바탕으로 글을 풀어낸다. 하지만 최근 나의 글쓰기는 이것저것 너무 난잡하게 뱉어대기만 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날이 서있다. 그래서 당분간은 채우는데 비중을 높이고 싶어져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읽어나가는 중이다. 오늘 아침 출근 전에는 손보미 작가의 <작은 동네>라는 소설을 완독하고 집을 나섰다.


나는 작가 중에서도 독서를 좋아하는 작가를 좋아한다. 너무 당연한 말이라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 수 있겠지만 생각보다 자기 글을 쓰기만 하는 작가들도 많다. 읽지 않고 뱉어내기만 하는 작가들. 최근 브런치에서 한 출판 편집자의 고충을 담은 글을 읽었는데, 그가 말하길 어떤 작가들 중에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쓰는 책임에도 글의 완성도를 고려하지 않고 의식의 흐름대로 구구절절 쓴 비문투성이의 글을 원고랍시고 보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수차례 퇴고한 끝에 나온 최종 결과물이라고 차마 말할 수 없는 글들 말이다. 실력도 양심도 없는데 출간한 자신의 책을 동네방네 자랑하고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까지 하는 것을 보면 할 말을 잃게 된다는 그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김겨울 작가를 좋아한다. 사실 김겨울 작가는 이렇다 할 대표작이 있거나 자신만의 색이 분명한 작가는 아니다. 사실 작가보다는 <겨울서점>이라는 유튜브로 더 많이 알려져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작가로서의 그녀를 좋아하는 것은 그녀의 독서력 때문이다. 그녀는 작가이기 이전에 성실한 독자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출판되면 누구보다 먼저 그 책을 읽고 소개하고 퍼뜨린다(?). 책 읽는 사람은 물론 읽지 않는 사람까지 책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내가 인상 깊게 읽었던 그녀의 책은 <독서의 기쁨>과 <책의 말들>이다. 그녀의 책을 읽다 보면 그녀가 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진심이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책이 좋다.


끝으로 책 읽기에 대한 그녀의 감상을 담은 <책의 말들> 중 일부를 소개해 본다.


책 읽기는 느린 행위다. 책 읽기는 우리에게 멈춰 서도록 요구한다. 눈과 귀로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를 허겁지겁 처리하는 대신 천천히 생각하도록 요청한다. 어떤 책에는 저자가 과속방지턱을 많이 설치해 두는데, 그러한 과속방지턱은 몇 날 며칠에 걸친 고민으로 완성된다. 어떤 책에서는 저자가 혼신의 힘을 기울여 서서히 미끄러지도록 도로를 설계하는데, 이러한 도로 역시 몇 날 며칠에 걸친 고민으로 닦아진다. 성실한 독자는 그 과속방지턱을 갈라 보고 잘 닦아진 도로를 문질러 본다.
독서란 곧 경청이며, 경청이란 곧 집중하고 반응하고 되묻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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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책에 인생의 거창한 진리 같은 것이 들어있지는 않다고 말한다. 대신 책은 사유를 확장시키고, 자신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여러 의견들을 검토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준다고. 한 페이지라도, 한 챕터라도, 매일 읽는 것이 활자와 친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독서가 우리를 아주 오래된 책벌레들의 세계로 인도할 것이라 말한다.


내가 평소 책을 좋아하는 지인들과 인사를 나눌 때 가장 좋아하는 인사말이 있다. "요즘은 무슨 책 읽어?"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는 상대는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의 감상만을 나에게 전한다. 지적 허영심을 가득 담은 거창한 추천도 일방적인 강요도 아닌 정말 지극히 자신의 감상일 뿐이라 선택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추천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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