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글은 꼭 대중교통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여러 상황 속에서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묻어가려는 그 심보들에 대한 이야기다. 양볼에 욕심이 덕지덕지 혹은 이기심과 게으름이 잔뜩 묻어난 그들의 모습은 정말이지 딱 피하거나 무시하고만 싶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런 사람을 꽤 많이 만나곤 했다. 아 아니구나. 대학생 때 팀 프로젝트에 꼭 한 명씩은 있었던 부류의 사람들이구나. 그들은 팀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막바지가 되어서야 자신의 이름 석자라도 넣어볼 심산으로 안 하던 노력을 뒤늦게 하는 척하며 내 속을 헤집어 놓는다.
생각해보면 무임승차라는 것이 꼭 그리 거창한 일에만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집안일 같은 경우가 그 적절한 예가 아닐까. 해봤자 티도 안 나지만 하지 않으면 티가 나는 그런 거.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그 누군가가 누가 될까를 교묘하게 따지고 드는 심리전 같은 뭐 그런 거. 밥과 커피를 사는 소소한(?) 경우도 마찬가지겠지. 너랑 나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야를 자랑스럽게 떠들다가도 계산대 앞에만 서면 겸손해지고야 마는 그들의 심리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회사에서는 대체로 업무분장을 할 때 무임승차하려는 이들을 여럿 봐왔다. 애초에 도움은 바라지도 않았고 하다못해 자신의 일이라도 똑바로 해줬으면 하는데 그 기본조차 하지 않아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이들의 모습은 참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우리 회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청소하는 날이 있다. 회사에 오랜 전통(?) 같은 것인데, 청소하시는 분이 계시지만 공용공간을 제외한 공간을 직원들이 직접 청소하면서 정리하는 문화다. 근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청소시간은 9시인데, 우리 회사는 탄력근무제라 10시까지만 출근하면 되기 때문에 평소 늦게 출근하는 이들은 자연스레 청소에 불참하게 되는 것이다(이게 정말 너무 자연스러워서 이렇다 말하기도 뭐하다). 청소구역이 1인 체제라면 아무 문제없겠지만, 여럿이 함께 하는 경우는 얘기가 달라진다. 네 명이 분담해서 해야 하는 청소를 한 명이서 다 한다면? 근데 그 상태가 매주 반복된다면 그 한 명은 어떤 기분일까?
보통은 그 한 명이 나였다. 여기가 무슨 학교도 아니고 우리가 청소 시간을 갖고 이러니 저러니(심지어 나보다 나이도 많아) 잔소리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니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일이란 말인가. 심지어 어떤 이들은 매주 늦어서 그날이 청소하는 날이라는 것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 아 이 글을 쓰면서도 정말 화가 난다. 그러니까 결론은 해오던 사람만 계속하는 악순환이라는 거다. 다 큰 성인들한테 이런 걸 글로, 말로 알려줘야 한다는 것도 참 여러 가지로 소모적인 일이다. 학교가 아니라고, 학교가!
(심지어 나는 익명으로 청소시간을 건의하기도 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뭐 그 답답함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고, 최근 들어 나의 시야에 들어오는 한 사람이 있다.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장소에서 자꾸 만난다는 것이 좋은 징조는 아니다. 왜냐하면 그 시간에 그녀는 그곳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그 시간은 엄연한 청소시간이니까 분명 자기 구역이 있을 거란 말이다.
내가 주로 배정받는 구역은 손걸레인 경우가 많은데 분기별로 순서가 바뀌기 때문에 한 번 담당하기 시작하면 적어도 3개월을 지속한다. 덕분에 그 기간 동안은 같은 시간, 같은 화장실에 손걸레를 빨러 간다. 이 화장실은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지 않아 청소하는 날 만큼은 일부러 이곳을 이용하는데, 갈 때마다 그녀가 있다. 그녀는 매주 그 시간이 되면 이 화장실에서 정성스레 화장을 고친다. 처음에 몇 번 마주쳤을 때는 '아 그런가 보다'했는데, 이게 계속 반복되다 보니 문득 궁금해지는 거다. 그녀는 청소구역이 따로 없나?
손걸레에 물을 묻히기 위해 9시에 방문하고, 청소를 끝내고 더러워진 손걸레를 헹구기 위해 다시 방문할 때도 그녀는 계속 같은 자리에 서서 화장을 고치고 있다. 나는 보통 타인의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편이지만, 이 문제(청소시간에 자신만 쏙 빠지는 사람들에 대한 이기심)에는 유독 데어왔던 터라 그녀의 청소구역을 공지에서 확인하고 나서야 알게 됐다. 그녀는 그 시간에 청소를 그. 냥.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쩌면 이 모든 문제의 시작은 염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를 가만히 생각해본다. 사회학자 김찬호 교수는 자신의 저서인 <모멸감>에서 염치가 도덕의 중요한 토대라고 말한다.
구성원들 사이에 명시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공유되는 규범이 도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화 과정에서 양심과 상식을 내면화하기에 보통은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도 도덕률을 준수한다. 하지만 어느 사회에서든 그것을 어기는 사람이 나타나기 마련이고,
(중략)
자신의 모습을 객관화하면서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 매개 고리가 바로 수치심이고, 이는 사회가 원만하게 유지되기 위해서 구성원들이 반드시 지녀야 할 감정이다.
즉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그 마음이 옳음의 극치인 것이다. '염치'는 도덕의 중요한 토대이고, 파렴치하고 뻔뻔스러운 사람들은 지탄을 받는다.
휴-
다들 왜 이러는 걸까 정말.
누군가에게 너무 당연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에이 몰라 몰라 난 안 할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최소한의 예의와 인간관계 속 염치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본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도 하기 싫은 법인데, '나 하나 안 한다고 티가 나겠어'의 그 못된 심보는 대체 어떤 뻔뻔함이면 가능한 건지 정말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 봐도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뜬금없는 에필로그 등장에 혹시 놀라셨을까요?
우선은 지금까지 써왔던 저만의 불편함을 담은 글을 모아 브런치북을 발행하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저도 도전해보려고 해요. 이 브런치북은 여기서 잠깐 완성본으로 매듭지어지겠지만, 불편함에 대한 글은 새로운 매거진을 통해 계속 연재할 예정이에요.
드라마 대사에서 시작한 저의 물음(나만 불편한가요)은 애써 외면했던 제 삶의 여러 불편함들을 꾹꾹 눌러 담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예민함이라는 저의 기질 덕분에 남들이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부분을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에너지가 소진되던 날들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글이 된 것이죠.
퇴근 후 집으로 향하는 길, 에너지가 다 소진되다 못해 너덜너덜해진 기분으로 발걸음을 힘겹게 옮기던 날이면 저는 어김없이 노트북을 펴고 자리를 잡았어요. 그리고 썼죠. 저의 이 불편한 감정들을 말이에요. 쓰면서 고통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쓰고 나면 대체로 후련했어요. 적어도 혼자 짐처럼 꽁꽁 싸매고 있었던 것을 누군가에게라도 속 시원하게 풀어놓은 기분이었죠.
실은 나는 이런 감정과 이런 생각을 느끼고 있었다고, 근데 말할 수 없었다고. 사람들이 나를 예민하고 까탈스럽다 말할까 봐 혼자 끙끙 짊어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이죠.
그렇다면 지금의 저는 평안하냐고, 이제는 괜찮아졌냐고 누군가 저에게 묻는다면 저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할 거예요. 저의 불편함들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고, 아직도 풀어놓지 못한 이야기가 많다고 말이죠.
(아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토로하겠다는 뜻은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