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는 너는?
사람은 본인 고유의 색깔을 가져야 한다고, 특별한 나만의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늘 말하곤 한다. 그러고는 정작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본능적으로 배척한다. 이것은 낯선 생명체를 거부하는 동물적인 본능에서 기인한 습성이겠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그 본능을 이성으로 거를 수 있어야 함에도, 자주 그러기를 실패한다. 그리고 반짝이는 그 특별한 사람을 성의 없는 한마디로 정의해버린다.
'이상하다!'
<김이나, 보통의 언어들 중>
내가 좋아하는 장르는 소설과 에세이지만, 심리학 분야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라 주기적으로 심리학 코너 책들을 찾아 읽거나 유튜브에서 일상 심리학 강의를 찾아 듣곤 한다. 대학원도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었으나 이제 와서 진로를 바꾸기에는 지금 나의 직업이 적성에 잘 맞고,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정설에 따라 상식선으로만 알아가는 중이다. 그러던 중 작년 5월 무렵에는 좀 더 전문적인 심리학에 욕심이 생겨 학점은행제를 통해 평소 관심이 가장 많았던 '이상심리학'강의만 따로 수강하고 학점을 취득했다. 이상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이상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원인은 선천적, 후천적으로 경우도 다양하고, 증상도 사람마다 달라서 누군가에게는 약이 필요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상담과 치료가 필요하며, 이것저것 다 시도해도 듣지 않아 이른 나이에 삶을 포기하는 이들도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강의를 들으면서 계속 느꼈던 것은 이상심리뿐만 아니라 인간의 심리에 따른 행동과 생각은 원인과 결과를 하나로 단정 짓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상과 정상을 구분하는 일반적인 규준에도 변수가 많아 과연 우리 일상에 정상인이란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올라왔다. 누구에게나 자신만 알고 있는 독특한 특징(남에게는 다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는)들은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성적표의 김민영>이라는 독립영화를 봤다. 영화에는 김민영, 유정희, 최수산나 이렇게 3명의 여고생이 등장한다. 그들은 기숙사 생활을 함께하며 삼행시 클럽을 만들고 우정을 쌓았지만, 20살이 되어 대학에 진학하고 뿔뿔이 흩어지면서 삶의 방향이 다 달라진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언뜻 보기에는 제목에 등장하는 김민영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진짜 주인공은 바로 유정희다. 대학생이 된 민영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정희를 은근히 무시하고 깎아내리는 말과 행동들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스스로의 어떤 모습이 잘못되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한다(아니 정확히는 인지하려는 노력조차 없다). 정희는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민영의 무례한 태도에도 시종일관 둘의 관계에 진심을 다한다. 그런 정희의 태도에도 민영은 "4차원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 거야?"라는 막말을 하며 정희의 진심 어린 행동들조차 우습게 만들어버린다. 정희는 민영의 배려심 없는 모습에 상처를 받지만 그럼에도 민영 나름의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이해하며, 자신이 생각한 김민영의 모습을 솔직하게 담은 '김민영의 성적표'를 남기고 떠난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여운이 쉽사리 가시질 않아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가고도 한동안 그 자리에 멍하게 앉아있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누군가는 정희의 모습을 이상하다 말할지도 모르겠다. 현실감각이 떨어진다고, 지나친 이상주의 아니냐고 폄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작은 것 하나도 정성스럽게 자신만의 색으로 물들이는 정희의 진심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자신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친구에게 마저도 끝까지 예의를 갖추려는 그녀의 모습이 애틋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정희는 정희답게 이 영화를 매듭지었다.
<보통의 언어들>에서 김이나 작가가 했던 말처럼, 반짝이는 그 사람만의 고유성을 '이상하다'라는 성의 없는 한마디로 정의해버리는 일들이 사회에서 점점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일상의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진심을 담는 이들의 모습을 좋아한다(타인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진지하게 갈고닦는 이들의 모습이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고유한 특별함이 있고, 그들의 다름이 '이상하다'라는 성의 없는 단어로 치부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각자마다 자신의 삶이 애틋하고 소중하듯 그들 또한 자신만의 삶에 누구보다 정성을 다하는 중일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