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만 비밀입니다
태풍이 온다고 했다. 예고한 대로 밖에선 우선을 써도 아무 소용 없을 것 같은 어마어마한 양의 비가 쏟아지고 있다. 보통 이런 날은 바깥 활동은 엄두도 내지 않고 집안에만 콕 박혀 여름휴가의 마지막 날을 장식하면 참으로 좋으련만, 어디 습관이라는 게 그리 쉽게 사라지겠느냔 말이다. 절대 아니지. 나는 기어코 이 궂은 날씨를 뚫고 짐을 바리바리 챙겨 좋아하는 다락방 서점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지난달 글쓰기 미션에 성공한 덕분에 사장님께 받을 책도 있고, 최근 들어 주말 일정이 많아 오늘이 아니면 이곳에 방문하기 어려울 것 같아 나름대로는 힘든 발걸음을 하고야 말았던 것.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내가 이곳에 방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나를 찾기 위함이다. 더 나아가서는 내 중심을 지키기 위해서랄까. 서점에 방문하는 것과 나의 중심을 지키기 위한 것이 문맥상 통하는 말인가 싶어 의아함이 생길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최근 일어난 몇몇 일들이 대체로 그랬다. 불편하지 않은 선택들 덕분에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이 순간도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이 글을 읽어나가는 누군가는 이쯤 되면 의아할지도 모른다. 도대체 이번 글의 주제는 무엇인가 하고 말이다. 눈치 빠른 사람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이번 글은 누군가를 향한, 수신인이 정해져 있는 글이라는 것을 말이다. 정작 그 수신인은 나의 브런치 필명조차 알지 못하지만 말이다. 비밀로 부치고 있는데 언제까지 그 비밀이 비밀로 간직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그 수신인이 이 글을 읽지 않았으면 싶으면서도, 읽었으면 싶기도 한 모순된 감정이 오락가락 줄타기하는 중이다. 어릴 때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마음을 오랫동안 품었던 적이 있었다. 수신인이 정해진 편지를 일기장에 매일 적어내려갔지만 정작 그 편지는 상대에게 닿지 못했다. 더 정확히는 상대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편지가 아니었다. 그저 당시 내 마음을 풀어놓을 곳이 마땅치 않았지만 그럼에도 표현하고 싶은 욕심에 상념처럼 쏟아낸 파편들에 불과했는지도.
삶의 풍파를 혼자 오롯이 견뎌나가고 있던 나에게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 보면 어떻겠냐고 조언을 건넨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 친구의 말을 가만히 되뇌다 먼저 도움을 요청한다는 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출발하면 되는 것인가를 한 번 더 물어보려다 말을 삼켰다. 친구는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다시 또 입을 꾹 닫고 동굴 속으로 들어가려던 찰나에 한 권의 책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정확히는 나의 도움 요청에 물꼬를 틀어줬다고 해야 할까. 사실 나는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사람이 한 명 있었지만 이렇다 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케이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지만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짙은 갈색빛 표면에 윤기가 돈다. 그는 포크를 세워 케이크 끄트머리 부분을 신중하게 잘라낸다. 어쨌든 하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수없이 많은 순간, 진심이니 고백이니 하는 거창한 단어에 휩쓸리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어떤 충동이 지나가고 또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보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그래서 마침내 숨은 그림 찾듯 이렇게 조용하고 근사한 카페에서 단 하나 남은 케이크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그럼 나 먼저 먹는다.
그가 포크로 잘라낸 케이크를 입에 넣는다.
하지 않아서 좋았던 것, 하지 않았으므로 그가 지킬 수 있었던 것,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잃지 않았던 모든 것. 케이크의 맛은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응축시켜놓은 것처럼 아주 진하고 깊다.
<완벽한 케이크의 맛> 김혜진
그래, 나는 그동안 차라리 하지 않아서 좋았던 것들이 많았다. 그런 일들은 대체로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변수가 없고 예측 가능했기에 안전했지만, 그만큼 아쉬움이 남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번번이 그 안전함을 택했던 건 예측 불가능한 일에 대한 불안감이 큰 나의 오랜 기질 때문이다. 예측 가능한 변수, 그래서 완벽했던 케이크의 맛처럼 말이다(정작 밀가루는 먹지도 못하면서 완벽한 케이크의 맛이라니?). 나는 카페에 앉아 표제작과 같은 이름을 가진 단편 속 이 문장들을 가만히 응시하다 한 번, 두 번 반복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방 속에 넣어두었던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불현듯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 보라는 친구의 목소리도 다시금 떠올랐다. 모든 게 나를 움직이라고, 용기를 내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의외로 관계에 있어서만큼은 꽤나 도전적이고 용감한 나였지만 그때의 나는 모든 것이 다 조심스러웠다. 이대로 나를 계속 학대하듯 홀로 고립시킬 것인가,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을 뻗을 것인가. 짧은 시간 많이도 망설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에서는 그것을 하지 말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 않아서 좋았던 것, 하지 않았으므로 그가 지킬 수 있었던 것,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잃지 않았던 모든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용기를 냈고 하고야 말았다. SOS!
조심스럽게 뻗은 나의 손을 상대는 잡았다. 이 글의 수신인인 그 사람이 말이다. 그렇게 교통사고처럼 모든 일이 시작되고야 만 것이다. 불편하지 않은 선택들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던 나의 결심처럼 지금의 우리는 불편하지 않은 선택들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더 정확히는 나의 불편하지 않은 선택들을 그 수신인이 보폭을 맞춰 함께 걸어가 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쑥불쑥 불안함이라는 나의 오랜 기질이 올라올 때면 상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나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미리서 걱정하지 말고, 오늘만큼의 사랑을 하자고 말이다.
"당신이 편안하면 적어도 우리 관계는 편안하답니다. 당신 멋대로 아니고, 우리가 처음 이야기했던 대로 잖아요. 이해심이나 배려심이 많은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미 이야기했던 일들을 까맣게 잊을 만큼 기억력이 나쁘지도 않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을 조금씩 닮아간다. 어느 순간 둘만의 패턴이 생겨나고 그 패턴이 익숙해질 때쯤 불안감이 찾아온다. 상대의 세계가 공고할수록 나의 이 익숙한 패턴은 상대에게 길들여진다. 나의 중심을 잃어간다. 더 정확히는 나의 중심이 상대로 향한다. 나에게로 머물러 있던 방향을 상실한 몰입. 좋아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내가 가장 우려했던 그것, 바로 내 중심을 잃어가는 것. 더 나아가서는 상대를 맹목적으로 신뢰하고 상대에게 길들여지는 것(나는 종종 그에게 세뇌당하기 좋은 사람이 나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나에게 이 글의 수신인은 말했다.
"당신이 나한테 길들지 않았으면 해요. 다만 물들었으면 좋겠어. 나도 당신의 건강한 삶에, 예의 바르고 조심스러운 태도에, 진지하고 솔직한 마음가짐에 물들고 있거든요. 근묵자흑 근주자적. 당신의 색이 무엇이건 그 색에 물들어가는 나를, 계속 지켜봐 줘요. 우리 각자의 색이 서로를 보완하기를."
내가 중심을 잃었다고 느낄 때마다 정신을 바짝 차린다. 거리 두기를 하려고 보폭을 조정한다. 내 영역을 다시 확인하고 선명하게 선을 긋는다. 선을 넘나드는 관계의 무례함은 이미 오래전 한차례 세게 겪었다. 그 경험이 지금의 나를 더 겁쟁이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그 면에서 만큼은 겁쟁이가 맞다. 아니 어쩌면 삶을 대하는 모든 태도에 조심스러움이 스며들어있는지도 모른다. 많고 적음의 차이일 뿐. 돌다리를 두드려보고 안전한 걸 확인하고도 건널까 말까를 수없이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돌리고 묵묵히 내가 아는 길만을 고집하는 겁쟁이, 그게 바로 나였으니까. 앞자리가 3으로 바뀌기 시작했던 그 해의 나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부모님 곁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혼자의 삶을 시작했고, 위험한 사람을 만났고 그와의 만남에서 남자를 바라보는 모든 관점이 달라졌다. 무서움을 느껴버린 것이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나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는 걸 깨달은 해이기도 하다. 그렇게 30살을 시작했더니, 34살이 된 지금도 여전히 나는 겁쟁이다. 4년이 훌쩍 지난 일이건만 그때 그 사람이 나에게 남기고 간 상처의 흉터는 아직도 내 삶의 전반을 흔들 만큼 꽤 깊고 아팠다.
오늘도 나를 이 공간까지 안전하게 차로 데려다준 수신인은 묵묵히 자신의 일터로 돌아갔다. 나와 함께하는 모든 시간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의 용감한 모습과 나를 비교하며 나는 한없이 또 작아진다. 그야말로 겁쟁이다. 완벽한 케이크의 맛은 하지 않아서 좋았던 것이 아니라 했기 때문에, 용기를 냈기 때문에 더 좋아질 거라는 기대를 다시금 품어본다. 당신에게 이 이야기를 건넬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글쎄 나는 그렇게 용감한 사람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당신의 그 솔직함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나의 마음속 깊숙이 넣어둔 비밀상자를 하나씩 풀어헤치며 주저앉고 싶어질 때가 있다. 말 그대로 무너져 내리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런 내가 과연 혼자의 삶을 사랑한다 자신할 수 있을까.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삶을 이리도 고단하게 살아가는 것일까. 길은 그냥 길이라 걸어가면 그뿐인데 왜 그 길에 일일이 꼬리표를 붙이며 걸어갈 수 없는 핑곗거리를 만들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다시 거리를 벌린다. 혼자의 삶으로 깊이 숨어버린다.
수신인은 나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고 싶다고 말한다. 매일 오늘의 내가 궁금하다고 말한다. 그럼 나는 "'비밀이 없으면 가난해지고'라는 책 알아요?"라는 어처구니없는 농담을 건네곤 한다. 언제까지 이 비밀들이 비밀일 수 있을까. 나의 모든 것을 알고도 당신이라는 나의 유일한 수신인은 나를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 나라도 감당할 수 있겠냐는 말을 돌려돌려 표현하는 나의 모습을 그는 정면으로 마주한다. 도망치지 않는다.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나는 오늘도 그의 용감함이 부러웠다. 물러섬 없이 건강한 그의 태도가 나를 더 부끄럽게 만들었다. 훗날 이 글을 다시 읽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어디쯤 서있을까. 우리의 관계는 어떻게 변했을까. 벌써부터 그걸 우려하고 있는 나 자신이 한없이 답답하다가도 이게 결국 나라는 걸 이내 깨닫는다. 그래, 그냥 이게 나인걸. 그렇다면 나는 그 수신인에게 다시 또 묻고 싶다.
이런 나는 어떠냐고. 감당이 가능하겠냐고.
나는 여전히 겁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