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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시작했다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연애

by 내민해

내가 처음으로 담배를 접했던 건 아빠를 통해서다. 아빠는 이제 술도, 담배도 하지 않으시지만 내가 어릴 적만 해도 흡연자였다. 내가 초등학생 때, 금연에 성공하셨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오빠 때문이다. 아빠는 늘 베란다에서 혼자 담배를 피우곤 했는데, 하루는 독한 냄새를 미처 다 빼지 못한 채 방안으로 들어온 아빠를 보고 오빠가 말했다. 아빠가 담배를 끊지 않으면 자신도 어른이 돼서 담배를 피우겠다고 말이다. 경고가 가득 담긴 그 한 마디가 아빠의 금연 계기가 되어줄 거라고는 기대도 안 했는데, 다행히 그 일 이후로 아빠는 담배를 끊었다. 그리고 오빠는 살면서 단 한 번도 흡연의 세계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나 또한 마찬가지. 그렇게 아빠 이후로 내 주변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고, 내가 자라온 세계에서 담배란 먼나라 이야기처럼 여겨졌다.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가장 놀랐던 것 중 하나는 생각보다 흡연자가 많다는 사실이었다. 오티와 엠티, 각종 행사마다 술자리가 이어졌는데, 그때마다 술과 담배를 동시에 하는 선배와 동기들을 많이 봤다. 흡연 구역에서 따로 피우기도 하고, 술자리에서 그냥 피우기도 했다(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제한적이지 않았다). 아빠 이후로 담배라는 존재를 아예 잊어버린 채 20년을 살아왔는데, 대학생활을 거쳐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점점 더 자주 접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건 아주 가까운 지인 중에는 흡연자가 없다는 사실이었고, 코로나를 기점으로 흡연자를 기피하던 나의 속마음은 나날이 날카로워져 갔다.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비흡연자라는 공식은 나에게 디폴트에 가까웠다. 어떤 친구는 남자와 사귀기 전에 무조건 전제로 거는 것 중 하나가 비흡연이라던데, 나는 그 조건 자체를 듣고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건 조건이 아니라 필수 아닌가? 내 세계에서는 존재조차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 여겼으니까. 그 친구 말에 의하면 흡연하는 사람과 키스를 했을 때 그 특유의 피맛이 느껴진다고 했다. 한 번이라도 흡연의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금연을 해도 그 맛이 느껴진다고 말하길래 신기하긴 했는데, 나는 여태껏 그걸 느껴본 적이 없었다. 살면서 담배라는 걸 입에 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사람들도 만나봤고, 오랫동안 흡연을 했지만 금연에 성공했던 사람들도 만나봤다. 뭐가 됐든 나와 연애하는 동안 흡연자였던 사람은 없었다. 흡연이라는 건 내가 상대를 만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 정도가 아니라, 그냥 너무도 당연하게 비흡연자만 만나왔던 지난 시간들이었다.


그러던 내가 지금의 연인을 만났다. 사귀기 전부터 그가 담배를 피운다는 걸 알고 있었고, 사귀고 난 뒤에도 그는 여전히 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전제인데, 우리의 연애에 장애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물론 그의 건강이 걱정스러울 때는 많았지만 그것조차 말하기 조심스러웠다. 몸에 해로운 걸 알면서도 우리가 하고 있는 것들이 비단 담배뿐만은 아닐 테니 말이다. 그리고 아무리 여자친구라 해도 개인의 취향을 함부로 간섭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는 내 앞에서 담배를 피운 적은 없었지만 가끔 그 향을 맡기는 했다. 친구가 말했던 '피맛'의 키스가 무엇인지도 그를 통해 처음 알았다. 그의 지난 연인 중 담배를 끊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상대도 있었다고 들었지만 나는 그것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순수한 본인의 의지 없이 상대의 강요로 시작된 금연은 행여나 둘 사이에 균열이 생겼을 때, 또 하나의 오해를 만들 명분이 될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생각했다. 만약 내가 이 사람과 헤어질 수는 없고, 그럼에도 이 사람의 흡연을 이해하기 어려워지면 어떡해야 할까를 말이다. 그때가 된다면 나는 그에게 금연을 지속적으로 종용하는 사람이 될까, 흡연에 잔소리하는 사람이 될까. 내가 생각하기에 백해무익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잔소리다. 그래서 결심했다. 만약 그때가 되면 차라리 내가 흡연을 하기로. 그리고 얼마 전부터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담배를 시작했다. 남들은 매년 새해 목표 중 하나가 금연이라던데, 나는 이 나이에 담배를 시작하다니. 누가 들으면 뜯어말리고 싶은 심정일 테지만. 글쎄, 나는 내 선택을 존중해주고 싶다.



다른 사람이 알려준 정답과 스스로 고른 오답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후자다. 사람은 오답을 선택하면서 그 자신이라는 한 인간을 쌓아가는 것이다.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약'을 먹고 올바른 판단을 하게 되더라고 누군가 몰래 물에 타놓은 그 약을 모르고 먹게 되는 것과 스스로 복용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수정은 처음으로 딸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오답을 선택하기 위해 자신으로부터 도망친 아이.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장강명



나에게도 금연이라는 목표가 생기는 날이 올까. 아마 내가 금연을 하는 날은 지금 만나는 이 사람과 헤어진 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담배가 몸에 얼마나 해로운지, 금연을 얼마나 지속해야 몸속 니코틴이 모두 빠지는지, 평소 호흡기도 별로 좋지 않은 내게 흡연이 얼마나 치명적일지 여러 변수를 다 생각했음에도 나의 이 선택을 지지하고 싶다. 담배를 한 번도 사본 적이 없어 어리숙한 모습으로 편의점에 들러 담배 한 갑과 라이터를 샀다. 내 손으로 이걸 사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는데, 모든 게 그저 순리대로 흘러가는 기분이 들었다.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몇 번의 시도 끝에 라이터에 불을 붙였다. 라이터를 켜는 것조차 익숙하지 않던 나였지만 몇 번 하다 보니 꽤 익숙해졌다. 찾아본 정보에 의하면 처음 담배를 피울 때는 기침이 나고, 이게 도대체 왜 좋은 건가 생각하게 된다던데, 나는 이상했다. 연기를 들이마시고 내뱉었는데 기침이 나지 않았다. 머리가 살짝 멍해지는 느낌이 들길래 마치 복식호흡을 하듯 더 깊이 들이마셨다. 한 개비를 다 피우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라? 겨우 이거라고?'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아 연달아 한 개를 더 피웠다. 주변이 담배연기로 자욱해졌고, 그 뒤로도 약간 몽롱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담배의 개수를 늘려갔다.


이 글을 읽고, 지금의 내 행위를 뜯어말리고 싶어 하는 어떤 이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듯하다. 그럼 나는 그들이 더 기함할 문장을 적어볼 테다. 내 목표는 흡연이 아니다. 정확히는 중독이다. 개수를 더 늘려, 더 익숙해진 패턴으로 중독되려 한다. 그러면 그를 더 이해할 수 있을까. 그는 끊으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이 아니다. 끊으려고 시도했으나 매번 실패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그래, 차라리 때가 되면 내가 피워서 중독이 되어버리자'라고 말이다. 평소 지독히도 건강을 챙겨 왔던 나였건만 정반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지구력이 좋아 습관 들이기를 잘 하는 나는 좋은 습관뿐만 아니라 나쁜 습관도 빨리 들이는 편인데(이런 나의 취약함을 알기에 부러 좋은 것만 보려 노력하기도 했다), 무엇에도 중독되고 싶지 않았던 내가 중독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굳이 이 길을 가게 된 것이다.


늦게 배운 게 무섭다고 했던가. 의지가 확고하니 늘려가는 개수가 빨랐고, 그 흐름에 적응하는 것도 금방이었다. 얼마 전 회사에서 한 직원이 정해진 흡연실이 아닌 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바람에 다른 직원들의 원성을 샀던 일이 있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피해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바람에 벌어진 해프닝이다. 내가 속한 팀의 팀원들은 그곳과 자리가 멀었음에도 귀신같이 그 냄새를 감지하고 여기저기 창문을 열기 바빴다. 그 사람을 비난하며 흡연자를 욕하는 소리가 귓가를 땅땅 때리는 것 같았다. 근데 이 상황에서 내가 가장 놀랐던 건, 내가 그 냄새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평소 오감에 예민하고 특히 청각과 후각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나였기에 더 놀라웠다. 집에 혼자 있을 때도 창문으로 조금만 담배연기가 들어왔다 싶으면 그 냄새를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는 기겁하며 문을 닫아버렸던 나였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침을 뱉고, 냄새를 풍기던 사람들을 극도로 피해 다니던 내가 이제 그 냄새와 문화에 익숙해지려 한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내 스스로가 점점 무서워질 지경이다. 지금의 이 패턴이 얼마나 더 독하게 내 발목을 잡을지 모르겠다. 불편하지 않은 선택을 하겠다던 나의 다짐처럼 담배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참 요지경이다.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던 세계에 발을 들였다.


누군가는 말하겠지. 사랑이 별거냐고, 그 사람과 영원할 것 같냐고. 글쎄, 모르지. 사람 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말이다. 그럼에도 지금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건, 이 선택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설령 그와 헤어진다 해도 그로 인해 내가 담배를 시작한 걸 후회하거나 원망하지는 않을 것이다(무엇보다 그는 지금의 내 상황을 알지 못한다). 누구의 강요도 없이 오로지 나의 결심과 의지대로 한 선택이니까, 어떠한 핑계도 대지 않을 작정이다. 그동안도 나는 계속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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