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민해 Nov 25. 2022

나의 다정한 서점

아니, 우리의 다정한 서점

그러니까 나는 내가 읽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자기만의 속도와 방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고민하고 흔들리고 좌절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애써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스스로 나를 포함해 나와 관계된 많은 것을 폄하하게 되는 세상에서 나의 작은 노력과 노동과 꾸준함을 옹호해주는 이야기를, 더 잘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느라 일상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나의 어깨를 따뜻이 안아주는 이야기를.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이 책은 올해 봄에 처음 읽었던 책이다. 브런치북 전자책 출판 프로젝트 수상작이었던 책인데, 독자들의 요청 쇄도로 종이책으로까지 발간된 책이다. 아직도 소설 장르 쪽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고 있는 이 책은 '과연 이렇게 따뜻한 서점이 세상에 존재할까'싶을 정도로 사람 냄새나는 소설이다. 저마다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등장인물들이 서점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가며 성장과 치유를 이어간다. 평으로는 "읽는 내내 위로받는 느낌", "소설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공간이었으면", "지친 일상의 피로회복제 같은 소설"등이 있는데, 정말 그렇다. 너무 따뜻해서 아름다운데 그만큼 이상적인 공간이라는 아쉬움도 남는 소설이다. 이 책의 저자인 황보름 작가는 그녀만의 서정적인 문체로 누구나 부담 없이 공감하며 읽을 수 있게끔 글을 써 내려갔다. 어른을 위한 한 편의 동화 같은 책이다.


나는 책에 등장인물 중 서점 주인인 영주라는 인물이 가장 좋았다. 성취욕이 강했던 과거의 영주는 커리어 우먼으로 당당히 자리 잡으며 직장에서 승승장구한다. 결혼도 하나의 비즈니스 파트너와 계약하듯 자신과 닮은 남편을 만나 일에만 매진한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가던 영주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번아웃. 처음 느껴보는 무기력함에 퇴사를 감행하고 모든 걸 놓아버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남편은 영주의 변한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 둘은 이혼하게 된다. 모든 걸 체념한 채 살아가던 영주는 우연히 쉴 휴(休)의 뜻을 담은 휴남동(가상의 동네)에 이끌려 그곳에 서점을 오픈한다.


하지만 영주는 막상 서점을 열어놓고도 아무런 표정 없이 묵묵히 책만 읽는 사장님이었다. 손님들은 그녀의 우울한 표정에 서점에 방문해도 쉽사리 말을 건네기 어려웠고, 심지어는 그녀의 공간을 침범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받게 되면서 자연스레 발길이 끊기게 된다. 몇 달이 지나 건강을 찾아가던 영주는 그제야 서점이라는 공간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변화를 주고자 마음먹는다. 처음으로 바리스타를 채용하고 책과 관련된 모임을 만들면서 저마다의 상처를 갖고 있는 인물들이 서점에 모여들기 시작한다.


작가는 휴남동 서점에는 "거리가 지켜지는 우정과 느슨한 연대가 있고 좋은 사람들과의 속 깊은 대화가 있다"라고 말한다. 자기만의 속도와 방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던 작가의 마음이 이 책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그중 영주의 모습은 대기업에서 개발자로 근무하다가 몇 번의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면서도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은 잃지 않고 살아가는 황보름 작가의 모습과도 닮아있었다.


마침 내가 이 책을 막 읽었을 당시, 관악구의 독립서점 <자상한 시간>에서 황보름 작가의 북토크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곳을 다녀왔었다. 책과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지만, 황보름 작가가 삶을 대하는 방식과 생각들이 인상 깊었다. 여담이지만 그녀의 독서 철학도 나와 닮은 점이 많았다.



지난달 정독도서관에서는 '연합 독서동아리 한마당'이라는 행사가 열렸다. 서울특별시 교육청 도서관 및 평생학습관 소속 252개 독서동아리 회원 간의 소통과 공감을 위한 자리로, 독서동아리 활성화 및 시민의 자발적 독서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2019년부터 개최했는데 올해로 네 번째를 맞이했다고 한다. 여러 프로그램이 많았는데, 황보름 작가의 북토크가 열린다는 소식에 다시 한번 그녀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박혜진 문학평론가가 인터뷰어로 북토크 진행을 이어가면서 지난번 보다 더 깊이 있는 그녀의 삶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나의 삶에도 영주 같은 휴식처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만의 취향과 소중한 관계로 가득 채운 따뜻한 동네 서점을 만들고 싶다. 꼭 오래 머무르지 않더라도 방문하는 손님들이 그 공간에 잠시라도 머물렀다가, 문을 열고 서점을 나설 때면 마음 한편에 잔잔한 온기가 남아있는 그런 다정한 서점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 특유의 슬픔이 있는데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