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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Nov 28. 2022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난다던데요

나의 눈물버튼과 웃음버튼

어릴 때부터 디즈니를 보고 자라온 나는 디즈니 특유의 감수성을 좋아한다. 2006년 디즈니와 픽사가 합병되었지만, 아직도 두 회사는 각자만의 스토리 전개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씨네21의 송경원 기자의 말에 따르면 디즈니의 스토리텔링은 논리, 합리, 성취의 이상적인 구현이고, 픽사의 스토리텔링은 관찰과 공감이라고 한다. 즉, 디즈니의 방식은 주인공이 시련을 당하고 기회를 얻어 악을 타도한 후 성장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목적 지향형 스토리라는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열린 결말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편이라 픽사보다는 권선징악의 전개 구조를 가진 디즈니와 조금 더 잘 맞는 편이다. 디즈니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유독 내가 좋아하는 몇 작품들이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주말마다 비디오테이프가 늘어질 정도로 보고 또 봤던 <뮬란>, 애니메이션을 넘어 영화로까지 제작된 <알라딘>, 디즈니 감성이 듬뿍 담긴 따뜻한 가족영화 <아이스 프린세스>, 그리고 <겨울왕국>까지. 이 밖에도 디즈니의 여러 작품들을 좋아하지만 유독 이 작품들이 더 기억에 남는 이유는 나의 눈물버튼을 자극하는 공통적인 서사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억눌려왔던 어린 시절을 가진 여주인공들이 스스로도 몰랐던 자아를 서서히 찾아가다 종국에는 폭발적으로 에너지를 쏟아내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서사구조들 말이다. 이 부분이 나의 눈물버튼이다. 주인공이 꼭 여성에 국한될 필요는 없었지만, 디즈니는 여주인공들의 미묘한 감정선을 잘 표현하는 재주가 있다고 느껴진다.


그중 가장 좋아했던 작품은 단연코 <뮬란>이다. 천방지축 말괄량이 기질이 다분한 파씨 가문의 유일한 외동딸 뮬란은 어릴 때부터 조신하고 순종적인 여성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는다. 좋은 신랑을 만나 가문의 영광이 되는 것이 일생일대의 목표인 것처럼 길들여지는 그녀의 삶은 그 시대에 걸맞은 당연한 이치로 여겨지고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가 아버지를 대신해 전장에 나가게 되면서 모든 이야기는 뒤틀리기 시작한다. 파씨가문의 외동딸이 아닌, 파뮬란이라는 한 여성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당시에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에 불과했지만 여장부로 성장해가는 뮬란의 모습에 나도 몰랐던 내 안의 불꽃이 타오르는 경험을 했었다. 뭐 그렇다고 엄청 거창한 불꽃은 아닌데 적어도 그 시기의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만 묵묵히 순종하는 어린이였으니까.


성인이 된 후로도 영화나 드라마, 뮤지컬, 애니메이션 등을 볼 때 유독 저런 서사가 담겨 있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곤 했다. 억눌려왔던 그들의 감정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면서 주변을 놀라게 하고, 변화된 모습으로 새롭게 거듭나는 순간 왠지 모를 벅차오름에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다. 물론 내 옆에 앉아 함께 작품을 감상하던 지인들은 어리둥절해한다.

"어? 갑자기 왜 울어?"

"뭐야, 어느 장면에서 눈물이 난다는 거야?"

상대의 질문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의 감정을 추스르며 남은 장면을 묵묵히 감상하고 혼자 조용히 눈물버튼에서 손을 뗀다. 나의 눈물버튼은 때때로 이토록 선명하다.


반면에 나의 웃음버튼은 또 다른 의미에서 주변의 의아함을 사곤 하는데 우선 나는 억지웃음을 싫어한다. 자학하는 개그도 별로. 타인을 조롱거리 삼아 웃음을 종용하는 것도 매우 별로. 웃기려고 용을 쓰는 개그보다 이게 웃어야 하는 포인트인가 하는 생활개그가 조금 더 내 스타일. 남이 아닌 스스로를 낮추면서 겸손하고 위트있게 읊조리는 개그랄까. 거기다 하나 더 추가하면 이건 한 번도 언급했던 적이 없는데, 의외로 나는 의인화에 빵빵 터지곤 한다. 이건 누가 봐도 너무 물건인데, 자꾸 그 물건에 감정을 부여한다던가 자신만의 세계관을 투여한다던가 하는 그런 개그들 말이다. 이게 글로 표현하기 참 어려운데 종종 그런 글을 읽을 때면 혼자 피식피식 바람 빠진 풍선마냥 속절없이 긴장이 풀리고 웃음버튼이 작동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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