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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Dec 29. 2022

브런치를 향한 짝사랑을 종료합니다

애증의 브런치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라는 말을 정말 싫어한다. 상대가 싫다는데 왜 10번씩이나 찍어대냔 말이다. 상대는 당신이 10번을 찍든, 100번을 찍든 아니라고 강. 하. 게. 주장하고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사람을 대상으로 했을 때를 말한 것이고,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면 얘기는 조금 달라진다. 나는 목표와 꿈, 배움을 향한 끝없는 도전과 열정은 지향한다. 개구리 왕눈이도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라고 노래하지 않았던가(응?).


그래서 내가 10번 넘게 꾸준히 도전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브런치다. 글쟁이로 평생을 살아가기 위한 전제조건에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이 필수는 아니었지만, 이 플랫폼을 통과해야 나만의 글을 올릴 수 있는 고유한 장소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글쓰기 플랫폼의 첫 단계라고 말이다.


처음 브런치 작가를 시작한 게 올해 초다.

나의 첫 글 발행일은 1월 1일. 2022년의 새 출발을 브런치와 함께한 것이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사실 브런치의 작가신청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브런치의 작가신청 기획안은 일반 출판사 기준으로는 약식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기획안은 기획안이다. 작가소개부터 나의 활동 계획, 발행할 글의 제목과 주제, 목차, 샘플 원고 첨부까지. 출간(?) 기획안이라는 것을 처음 접해본 나로서는 이 모든 것이 그저 생소할 뿐이었다. 특히 첫 문장과 제목이 중요하다는 주변 말에 팔랑귀가 되어 자극적인 제목을 꾸역꾸역 뽑아내 볼까도 잠시 고민했지만 역시 내 옷 같지 않아 포기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혼란스럽게 했던 질문은 내 SNS 플랫폼 계정 주소를 쓰는 란이었다. 나는 사실 SNS를 하지 않는다. 카카오톡도 SNS의 종류 중 하나긴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SNS라 함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블로그? 정도가 될 것 같은데 무엇 하나 하고 있는 것이 없는 나로서는 꽤나 난감한 질문이었다. 그나마 하고 있는 네이버 블로그는 그저 내 일기장을 클라우드처럼 사용하려고 비공개로 만들어놓은 거라 공개된 글도 이웃도 없었기에 들어와 봤자 아무것도 없는 블로그를 브런치에 적을 수는 없었다(물론 비공개로 쌓여있는 글은 1,000개가 훌쩍 넘지만). 그래서 그 칸은 비워두기로 했다. 이건 마치 "너 친구 많아?"혹은 "인기 많아?"라는 질문처럼 여겨져서 살짝 불편하기도 했지만, 어쩌겠는가. 브런치도 작가와 구독자가 존재하는 하나의 SNS 플랫폼인 것을. 그래도 브런치는 나의 인기력(?) 보다는 내 글을 보겠지라는 믿음을 갖고 뚝심 있게 지원했다.


그 결과는?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하하하하. 사실 첫 번째에 되리라고는 기대도 안 했다(면 거짓말). 그렇게 브런치를 향한 짝사랑 도전기가 시작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브런치는 재수고 삼수고, 몇 번이 돼도 계속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다만 떨어진 이유는 알려주지 않는다. "보내주신 신청 내용만으로는 브런치에서 좋은 활동을 보여주시리라 판단하기 어려워"라는 답변만 반복해서 돌려줄 뿐이다. 작가 소개, 주제, 내용, 목차 등 이것저것 다양한 변화를 주면서 계속 도전했지만 번번이 떨어지기만을 반복했다. 아무리 강철 멘탈이라도 반복되는 거절에 마음이 다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여담이지만, 지원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깨달았던 사실 중 하나는 메일 제목만 봐도 떨어진 걸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브런치 작가를 통과하면,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탈락하면, "브런치 작가 신청 결과 안내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메일이 도착하기 때문이다. 연이은 탈락에 한동안 휴식기를 가지면서 재정비하기도 했었다. 글쓰기와 관련된 책을 읽으며 내 글의 부족한 점과 보완할 점을 정리하면서 말이다. 그 와중에도 비공개 일기장을 꾸준히 채워가는 나만의 글쓰기는 멈추지 않았다. 문득문득 '그래, 굳이 브런치에 작가가 될 필요는 없잖아?'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하고, 영화 역린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대사를 가만히 읊어보기도 했다. 중용 23장에 있는 말이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

그렇게 나의 뚝심 있는 진심과 정성을 믿으며 도전을 이어가던 어느 날 갑자기 예상치 못한 순간에 합격해 버렸다. 그때의 얼떨떨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제목이며 목차며 잔뜩 힘을 주고 도전할 때는 콧방귀도 안 뀌더니(뭐래), 기대를 내려놓고 '그래, 되든지 말든지 나답게 쓸 거야'라고 담백하게 지원했더니 덜컥 돼버린 것이다. 인생이란 참 알 수 없는 일들의 연속(세상은 요지경)이구나를 다시 한 번 깨달으며, 멍하게 브런치 알림을 바라보던 그날 이후로 1년이 지났다. 나와 브런치의 인연은 다소 애증에 가까웠던 질긴(?) 짝사랑을 시작으로 올해가 되어서야 어렵사리 제1장을 열었다. 2022년의 마지막 날을 목전에 둔 지금, 앞으로도 2장, 3장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나만의 브런치 생태계를 구축해 보자고 가만히 다짐해 본다.


+ 이 글을 쓰면서 2022년 나의 글 목록을 가만히 뒤적거리다 '내가 이런 글을 썼다고?' 싶은 글들이 몇 개 눈에 띄기 시작했다. 대체로 이런 글은 브런치에 올리지 못하고 날 것 그대로 내 비공개 블로그에만 저장되곤 하는데 보여지지 않아서 그런가 왠지 더 애틋하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말이다(자기애가 강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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