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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Jan 02. 2023

쉿, 조용히 해야 해

월요병을 아시나요

영국을 대표하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도리스 레싱의 소설 <19호실로 가다>는 결혼제도에 순응하며 자신의 독립성을 모두 포기한 전업주부 수전이 숨 쉴 틈을 찾기 위해 '19호실'이라는 자신만의 공간으로 향하는 이야기이다. 그 방에서 그녀는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수전은 하루 동안의 '자유'를 되돌아보았다. 외로운 미스 타운센드와는 친구가 되었고, 파크스 부인은 불만을 늘어놓았다. 그래도 수전은 정말로 혼자가 되었던 그 짧은 시간 동안의 황홀함을 기억하고 있었다. 수전은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앞으로 그런 고독한 시간을 더 자주 마련하기로 결심했다. 절대적인 고독, 아무도 그녀를 모르고 신경도 쓰지 않는 고독이 필요했다.
(중략)
이 방에서 수전이 뭘 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충분히 쉬고 나면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서 양팔을 쭉 뻗고 미소를 지으며 밖을 내다보았다. 익명의 존재가 된 이 순간이 귀중했다.


-

반복해서 돌아오는 월요일은 직장인이 아닌, 학창 시절부터 꽤 스트레스였다. 한 주의 시작이니 설렐 만도 하지만, 왠지 모를 그 막연함은 앞으로 다가올 일주일의 긴 시간을 어떻게 잘 지내야 할지 막막한 요일이기도 했다. 특히 일요일 밤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멜랑꼴리함은 명확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모호함이 있는데, 늘 비슷하게 찾아오고 비슷하게 사라진다. 왜 이렇게 월요병이 자꾸 찾아올까를 생각하던 중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찾은 나만의 방법이 하나 있다면 글 초반부에 잠깐 나눴던 <19호실로 가다>의 수전 같은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나는 보통 어떤 일을 진행할 때, 한 번에 왕창 몰아서 하는 것보다는 촘촘히 끊어서 매일 조금씩 일정량을 반복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 사이사이에 일상의 작은 숨구멍을 뚫어놓고 말이다. 그 숨구멍이 나에게는 딱 정해져 있는데, 주 1회 오전 한 번은 꼭 쉰다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 회사는 탄력근무제라 잘만 사용하면, 1년 동안 매주 오전에 한 번씩은 쉴 수 있다. 그 요일은 대체로 화요일인데, 주중에 한 번의 쉼이 있다는 사실이 내 삶을 꽤 안정되게 만들어준다.


보통은 월요일이 가장 힘든 날인데, 화요일의 반차를 기대하며 월요일을 보내고, 화요일은 반차가 있어 회사에서의 시간을 금방 보낸다. 그렇게 수요일이 되면 평일의 절반이 시작되니 생각보다 마음이 괜찮다. 그렇게 목요일, 금요일을 차근차근 맞이하면 꽤 괜찮은 한 주가 된다. 마음의 여유가 자리 잡은 한 주랄까. 거기다 공휴일이라도 있는 주에는 체감상 2일은 쉰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더 편안해진다. 바로 이 루틴이 나의 19호실이고, 이 루틴을 반복한지는 사실 거의 3년이 넘었다. 그리고 이 시간은 나만 알고 있는 시간이다. 회사 사람들도 내가 주기적으로 쉼을 갖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 시간마다 뭘 하길래 매주 근태 기안을 올리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냥 쉬어요"라고만 간결하게 답한다. 말 그대로 나만의 시간에 가타부타 이유와 설명을 쏟고 싶지 않아서다. 이 시간에는 어떠한 연락도 받지 않고, 답장도 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고립된 시간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숨기곤 하는데 나에게 이 시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너 지금 쉬니까 연락받을 수 있잖아라고 말하며) 누군가가 연락을 취할 수도 있고, 나만의 시간을 침범당할 것 같아 아예 핸드폰 자체를 꺼두고, 더 비밀리에 간직한다. 마치 지나치게 가까운 관계일수록 SNS 계정을 공유하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특별히 거창한 것을 하는 것도 아니다. 위에 언급했던 소설 속 주인공처럼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도 있으니까 말이다.


말이 점점 길어지는데, 어쨌든 삶에 나만의 쉼표가 있다는 것은 꽤 괜찮은 일이다. 나는 한 번에 몰아서 쉬는 것보다 일상에 틈틈이 숨 쉴 공간을 여기저기 마련해 두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공간과 시간이 늘어나면 나의 월요병도 서서히 무뎌져간다. 오늘은 새해의 첫 번째 월요일이다. 소소한 행운과 불운이 적절히 섞여 있던 하루였다. 반가운 누군가와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고, 길이 미끄러워 회사 사무실 계단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고, 균형을 잡겠다고 허둥대던 내 모습에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났다.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2023년의 평범한 일상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그리고 내일은 오전 반차가 있는 날이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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