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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Feb 03. 2023

나에게 휴식이란

쉬어라, 쫌

나는 생각을 안 하는 게 더 힘든 사람이다. 머릿속을 비우고 싶다 말하면서도 정작 나의 생각들은 말풍선처럼 여기저기 둥둥 떠다닌다.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샤워를 하다가도, 양치를 하다가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위와는 전혀 상관없는 생각의 가지가 끝도 없이 뻗어가는 것이다.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도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는 내 정체성과 잘 맞기 때문이기도 하다. 글감을 읽고 하고 싶은 말들이 뒤죽박죽 섞여 우르르 쏟아내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 쏟아내는 과정들이 실은 꽤 즐겁다. 글 한 편을 쓰는데 크게 어렵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적어도 글 한 편은 꼭 써야만 한다는 것. 그게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 같다는 것이다. 휴식도 이와 비슷하다. 나에게 휴식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을 정지한 채 가만히 누워있거나 잠을 자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평온한 상태는 유지하되 생각은 깨어있는 것, 마음이 시끄럽더라도 그 시끄러움 안에서 깨닫는 바가 있는 것, 생각을 비워내기보다 생각을 채워가는 과정에서 삶의 충만함을 느끼는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오빠와 내가 부모님 댁에 놀러 가면 엄마는 잠시도 가만히 계시지를 않고 이것저것 무언가를 하신다. 그게 집안일이 되었든, 우리를 챙기는 것이 되었든, 잔소리가 되었든(ㅋㅋㅋ) 말이다. 어릴 때부터 내가 봐왔던 엄마의 모습은 늘 분주하고 쉼 없이 무언가를 하고 계신 모습이었다. 덕분에 내가 늘어져 있는 꼴(?)을 잘 견디지 못하셨는데, 우리 집은 게임의 퀘스트를 깨듯 계속 무언가를 달성해야만 했다. 그게 때론 압박감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부모님과 독립한 후로도 여전히 분주하게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보며 어쩌면 이건 부모님의 영향이 아니라 내 타고난 기질이 아닌가 싶다.


되게 욕심 없는 척하더니 실은 내 욕심의 장르가 달랐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시간에 욕심이 많은 편이고, 내가 습득한 것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체득하는 과정에 욕심이 많은 편이다. 특히 시간에 대해서 말하자면 끝도 없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낭비처럼 느껴질 때가 많고, 더 나아가서는 죄책감마저 든다. 가만히 쉬어도 되고 사실 그것을 안 해도 되는데, 하고 난 뒤에 찾아오는 보람과 성취의 기쁨을 놓지 못해 나는 또 그걸 한다. 돌고 돌아 결국은 제자리. 그렇게 무한 굴레다. 그러니까 어디 가서 피곤하다든지, 쉬고 싶다든지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사람인 거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다 자처해서 그 굴로 들어가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그 굴이 좋거든. 그냥 그게 나 같아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는 책이 있다. 인간 존재의 근본 문제에 대한 문학적 고민이 녹아져 있는, 러시아 대문호로 불리는 도스토옙스키가 3년에 걸쳐 완성한 마지막 작품이라고 한다. 출판사에 따라 분권이 다르지만 대략 1,6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새해를 맞이해 기간을 정하고 챌린지 형식으로 완독하는 모임들이 여럿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고전이다. 지금 읽고 있는 책도, 읽고 싶은 책도 여전히 많지만 오랜 고민 끝에 지난달부터 나는 이 장기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지난주가 1권을 읽고 모이는 첫 모임이었다. 3시간 동안 우리는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다.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들이 모임원들과의 대화를 통해 하나하나 해소되기도 했지만, 철학적인 부분까지 깊게 파고드느라 오히려 생각이 더 많아지기도 했다. 아직 두 권의 책을 읽어야 하고, 두 번의 모임이 남아있다. 약 3개월에 걸쳐 이 책을 완독하고 나면 내가 몰랐던 또 다른 인간 본연의 모습을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를 기대하고 있다. 감사와 결산으로 내가 속한 팀이 가장 바쁜 시기지만 장기 프로젝트에 합류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 프로젝트에 함께 하는 것이 나에게는 또 다른 의미의 쉼이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나의 휴식은 대체로 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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