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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Feb 01. 2023

제 인생에 전지적 작가 시점은 없습니다

작년 12월 한국비폭력대화교육원에서 진행하는 NVC 1단계를 수강했다. 이 강의는 비폭력대화 강의라고도 불리는데, 스테디셀러로 유명한 <비폭력대화>라는 책을 출판한 곳에서 주관하고 있다. 강의 중에 선생님이 지속적으로 강조하셨던 대화의 중심은 상대의 말을 판단하지 않고, 관찰하라는 것이었다. 즉 나한테 유익하든 유익하지 않든 나라는 필터를 거치지 않고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다.


얼마 전, 설 연휴 동안 김혜진 작가의 <경청>이라는 책을 읽었다. 작년 10월에 출간된 아직은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소외된 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공감하며 담담하게 써 내려가는 그녀의 문체가 좋아 이전의 여러 작품들도 읽어 왔던 터라 이번 작품도 기대가 됐다. 특히나 말의 무거움을 깊이 생각하는 나에게 시의적절하게 와닿은 책 제목이기도 했고 말이다. 이 책에 유독 자주 등장하는 동사가 있는데 바로 '기다리다'이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보통 우리는 그 상황을 해결(이라 쓰고 판단이라 읽는)하기 위해 한마디 말을 덧댄다. 가끔은 그 덧댄 말에 더더 말을 보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이 완성되기도 하는데, 그 말로 상처받은 누군가가 생겨나기도 한다. 이 책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의 말 한마디로 누군가 자살을 하면서 스토리가 전개된다. 물론 전적으로 주인공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는 없지만 아예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에 놓인 그녀는 천천히 기다리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교문 앞에 이르러서야 그녀는 말로, 언어로, 아이를 위로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있다. 상담사로서 자신이 가졌던 굳건한 믿음의 실체가 이처럼 허약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그녀는 어떤 말에도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자신이 한 말이 어떤 식으로 변형되고 왜곡되는지 짐작할 수 없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진작 깨달아야 했을 말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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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 관찰이란 기다림에서 시작된다. 그 기다림이 때로는 지겹고 답답하고 끝이 보이지 않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리는 것. 상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면서 때가 되기를 기다리는 그 머뭇거림들, 그게 내가 생각하는 관찰의 가장 좋은 모습이다.


<경청>에서 저자가 하고자 했던 말은 관찰과 기다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주인공은 말 못 하는 길고양이를 구하기 위해 고양이가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까지 매일 기다린다. 비록 말로 대화를 나눌 수는 없지만, '침묵'으로 교감하는 주인공 해수와 고양이 순무의 모습은 또 하나의 깊은 관찰이다.


그래서 내가 주로 관찰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사람이라고 답할 것이다. 특히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관찰한다. 몰래 힐끗힐끗 엿보듯이 당신들을 관찰한다는 뜻이 아니라 당신의 입장이 되어 당신이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지를 온전히 관찰한다는 뜻이다. 나라는 필터를 덧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당신들을 말이다.


세상은 더 빠르고 더 간결하게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생략되는 말들 속에 오해가 쌓이고, 분주한 마음에 실수가 생기지만 그런 것을 돌아볼 여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다그치기 바쁘다. 뒤처지는 사람은 개인의 노력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낙오자 취급을 당한다. 하지만 나는 그 속도감에 편승하고 싶지 않다. 자신만의 속도로 묵묵히 걸어가는 이들을 응원하고, 그들의 속도를 기다리고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오늘도 나는 당신들을 관찰한다. 조금 오래 걸릴지라도 당신들을 정성 들여 깊이 있게 알아가길 원한다. 적어도 당신들이 내 곁에 있는 한 그 노력을 게을리하는 일은 없도록, 당신이라는 책을 천천히 읽어가며 관찰하고 궁금해하는 사람이고 싶다.



"관찰하지 않고 인간을 사랑하기는 쉽다. 그러나 관찰하면서도 그 인간을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옥중서한> 서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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