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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Jan 30. 2023

나의 마음 소리가 궁금해

2013년에 방영했던 배우 이보영과 이종석 주연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드라마가 있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신비한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 박수하(이종석)와 국선전담 변호사 장혜성(이보영)이 미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는 드라마다. 박수하는 드라마의 제목처럼 타인의 마음을 소리로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데, 그 능력 때문에 가까운 이들에게 상처받는 일들이 계속 생긴다. 어린 나이에 아빠를 잃고 친척들 손에 맡겨지지만 그들의 진짜 속마음을 적나라하게 들으면서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다.


가끔 나는 누군가의 마음이 지나치게 궁금할 때가 있다. 이것도 호기심의 영역으로 봐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한참 그 마음이 최대치로 올라갔을 때는 다름 아닌 취업준비생 시절이었다. 면접관의 마음이 너무 궁금했다. 도대체 나한테 이 질문을 왜 하는지, 도대체 나를 왜 뽑지 않는 것인지, 웃는 표정 뒤에 어떤 의중을 담고 있는지 정말 궁금했다. 나는 분명 그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했고 그 또한 나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건만 대체 왜 불합격을 떡하니 안겨 주는 것인지 도통 납득하기 어려웠다. 계속되는 불합격 메시지에 멘탈이 너덜너덜해졌는데 그때가 마침 저 드라마가 한참 방영하던 2013년이었다.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간절히 바랐던 시기가 지나고 난 뒤에도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저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 텐데'라고 말이다. 상대의 의중을 파악할 수 없을 때, 상대의 진심을 의심하는 순간이 찾아올 때면 어김없이 저 생각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드라마 속 수하의 모습처럼 가까운 이들의 알고 싶지 않은 속마음까지 여과 없이 들린다면 조금 무서울 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반듯하고 정직한 사람이라 해도 털어서 먼지 안 나올 사람이 있을까. 그의 모든 생각과 마음이 다 바르고 아름답지만은 아닐 테니 말이다. 마치 연인과 배우자의 핸드폰을 몰래 손댔을 때,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마는 것처럼. 어쩌면 상대의 속마음이라는 것도 있는 그대로를 여과 없이 듣는 것보다 목소리라는 필터를 거쳐 직접 말로 듣는 것이 가장 괜찮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 좋았던 시간에>는 김소연 시인이 지난 여행 이야기를 한데 모아 엮어낸 여행 산문집이다. 시인은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와 같을 때 훌쩍 여행을 떠난다고 말한다.


즐거웠지만, 나는 이상했다. 마음이 없는 사람처럼 건조해져갔다. 거울을 보면 슬픔도 근심도 말끔히 사라져, 태평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바라던 것이었으나, 바라던 게 아닌 것만 같았다. 안온하되 허전한 상태. 그 허전이 난감한 상태. 나는 소파에 심드렁하게 누워 바다를 바라보다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토록 바라던 한가함을 얻었고 이토록 태평한데, 왜 헛헛해하는지에 골똘하다가 그만 불안해져버렸다. 한 톨의 슬픔조차 남지 않아 공허했고 그게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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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글을 쓰면서 문득 들었던 생각은 나는 타인의 마음 소리를 궁금해하기에 앞서 나의 마음 소리에는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가다.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도, 감정에 공감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이 아닐까. 나는 나의 마음 소리에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가. 얼마나 귀 기울이고 있는가. 얼마나 궁금해하는가. 센서를 내 쪽으로 돌려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주고 싶다. 나의 마음 소리를.



자 말해봐, 나 들을 준비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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