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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Jan 24. 2023

우울한 게 죄는 아니잖아요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우울증, 즉 우울장애는 의욕 저하와 우울감을 주요 증상으로 하여 다양한 인지 및 정신 신체적 증상을 일으켜 일상 기능의 저하를 가져오는 질환을 말한다. 그 원인은 생화학적, 유전적, 환경적 등 다양한 요인이 존재하지만 분명한 원인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고 한다.


오늘은 조금 용기를 내어 나의 우울함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깊이 나눠보고자 한다. 수없이 말했던 예민함이라는 기질은 사실 우울함을 기저에 깔고 가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일상적인 일에 지나치게 반응하다 보면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매사에 조심성도 많고 경계심도 높은 나는 대체로 늘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 그 불안감 덕분일까. 자칫 잘못하면 깊은 수렁으로 빠질 것만 같은 우울감이 내 마음의 수면 아래 늘 잠재되어 있었다. 작은 일에도 지나치게 의미부여를 하다 보면 그 생각에 빠져 매몰되어 버릴 때가 있는데, 우울감도 사실 비슷하다. 그 수렁에 너무 깊이, 오래 들어가 있으면 나는 다시 일어나지 못할 내가 두려워 되도록 고개를 돌리고 훌훌 털어버리려 한다. 그럼에도 깊은 수렁으로 끝없이 내려가는 날들이 있는데, 그럴 때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벗어나려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너무 우울하거나 공포스러운 영화는 피하는 편이다(영화 기생충을 보고도 그 영화 특유의 침체된 분위기 속 여운이 너무 깊이 남아 2주 정도를 밤에 불을 끄지 못하고 잠들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우울감이 늘 있었는데, 아마도 그건 엄마의 우울감을 닮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내가 어릴 적부터 꽤 오래 정신과 약을 복용해 왔는데, 가끔은 나도 엄마를 따라 함께 병원을 가기도 했었다.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는 엄마의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며 내가 알고 있는 이 우울감을 엄마도 알고 있을까 혼자 가만히 생각했던 것 같다.


가끔 친구들이 "아 나 오늘 너무 우울해"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하는 걸 보면 신기하고 놀라울 때가 많았다. 그 말은 마치 "아 나 오늘 지나가다가 돌에 걸려 넘어졌잖아" 정도의 어조로 들렸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남들에게 나의 우울감을 저렇게 지나가는 말처럼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데 그것은 부끄럽고 창피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나를 무서워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유독 깊은 우울감이 찾아오는 날이면 꽤 자주 죽음을 생각했고, 높은 곳을 두려워하면서도 그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뛰어내리면 어떤 기분일까를 상상할 때가 있었다. 죽음의 순간이 고통스럽지 않다면 나는 이미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친구들이 "아 나 오늘 우울해"라고 말할 때면 이 말들이 목 끝까지 차오르지만 이내 참아내곤 했다.

'너도 그럼 차에 치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 '문득 길을 걷다가 아 오늘은 차에 치여 죽으면 깔끔할 것 같은 데라는 생각을 자주 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죽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


남들에게 찾아오는 우울감이 어느 정도인지 나는 잘 모른다. 나와 비슷한 결인지 아닌지 말이다. 근데 나의 우울감이 한없이 깊어질 때면 그 끝에는 항상 죽음이 자리하고 있어 쉽게 입 밖으로 꺼내기가 어려웠다. 평소의 밝고, 긍정적이고, 희망을 노래하는 내게서 그런 말이 나온다면 사람들이 나를 정신 이상자로 볼까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정신이 그렇게 건강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 말이다.


그래서 나는 삶을 늘 절제하며 살아간다. 특히 감정을 말이다. 너무 깊이 침잠해 버리면 다시 올라오지 못할 나를 안다. 그 끝에 죽음을 생각할 나도 안다. 사람들은 말한다. 솔직하게 털어놓을 상대가 필요하다고, 털어놓고 나면 괜찮을 거라고.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나는 나의 이 감정을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매사에 진심을 다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진심이 아니면, 삶의 이유와 방향을 잃어버리면 자꾸 다른 방향을 생각하게 될까 봐 두렵기도 했다. 알베르 카뮈의 말처럼 '인간은 왜 자살하지 않는가'를 늘 염두에 두어야만 했다.


글을 쓰면 쓸수록 우울함으로 깊이 들어가는 느낌인데, 오늘의 결론은 "나는 사실 우울한 사람입니다"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마무리 짓고 싶다. 나는 우울함에도 불구하고, 삶의 아름다운 면을 더 보고, 느끼려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20여 년 동안 사회생활을 하며, 현재는 '씨네21'의 편집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이다혜 작가의 <출근길의 주문>에서 그녀는 향상심을 잘 유지해 가는 사람이다. 그녀는 남들이 보기에 본인이 평정심이라는 게 있어 보인다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알아주는 사람들이 좋다고 말한다.


나는 우울증을 관리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울증 관리는 여느 질환 관리와 비슷하다. 스트레스 받지 않고, 잘 자고 잘 먹고, 꾸준히 운동하는 것. 그리고 증상이 심해지면 전문가를 만나는 것. 이 빤한 원칙을 지키는 것은 상당히 재미없고 귀찮은 일이다.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많은 사람들은 완전한 게 아니라 문제들을 잘 돌보고 있을 뿐인 경우가 많다. 두려움을 안고서.
나는 주변 사람에게 쉽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을 강화하는 사람하고 한나절 보내면 일주일이 힘들어진다. 게다가 저런 사람은 다른 이들이 모두 각자의 어려움을 안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무시하는 중이다.
내가 생각하는 향상심은 이런 것이다. 우울증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신, 무엇이든 그러저러한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런 자신을 잘 달래가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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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혜 작가의 이 말들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나는 비록 우울증을 안고 살아가고 있지만, 나의 모습이 대체로 평정심을 잘 유지하는 것으로 비춰진다면 잔잔한 호숫가의 백조가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 힘겨운 갈퀴질을 하는 것처럼 늘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진심을 다해 잘 살아가고 싶다. 나만의 평정심을 유지해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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