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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Feb 14. 2023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작년 연말에 독서모임에 갔다가 갑작스럽게 책 선물을 받았다. 사실 나에게 책 선물은 언제 받아도 어떻게 받아도 좋은 것이라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다. 근데 선물해 주신 분이 평소 내가 이쪽 분야에 관심을 많이 보이는 것 같아 이 책을 선물하는 거라고 말씀해 주셔서 더 감동이었다.


내가 선물 받은 책은 영국의 행동과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대니얼 네트가 쓴 <성격의 탄생>이라는 책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해왔던 성격 유형의 베이직한 척도가 MBTI라면, 이 책에서는 크게 5가지로 성격을 유형화한다. 외향성/신경성/성실성/친화성/개방성 이렇게 말이다. MBTI가 둘 중에 한 가지를 골라야 하는 것이라면, 이 책에서 말하는 5가지 유형은 높고 낮음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좀 더 면밀하게 관찰된다. 저자는 이것을 성격심리학이라고 하는데, 성격의 유형이 유전, 환경, 심리뿐만 아니라 뇌과학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내향성의 점수가 월등히 높은 나는 아무래도 외향성의 높낮이를 설명하는 파트가 가장 와닿았다. 저자는 흔히 사회성을 외향성과 동일시하는 데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회성의 반대인 수줍음은 외향성 수치가 낮은 것이 아니라 신경성 수치가 높은 것이 원인이고, 외향성 수치가 낮다고 해서 반드시 수줍음을 타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내 경우도 낯선 사람과 처음 대화를 나누는 것을 어려워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어려워하는 것은 친분의 여부와 관계없이 오랜 시간을 타인과 공유하는 것이다. 사회적 에너지가 많지 않은 내향인이라 그 사람이 좋든 싫든, 누구를 만나도 에너지가 급격히 떨어지는 건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향성 수치가 낮은 사람은 그저 다른 사람들과 많이 어울리지 않는 것뿐이며, 수줍음 없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이 때문에 외향성 수치가 낮은 사람은 혼자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높은 외향성을 좋은 인간관계와 혼동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여러 번 말했지만, 나는 철저한 내향인이다. 그래서 내가 가진 내향인의 성격특성을 나열해 보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다만 내향인들도 다 같은 내향인이 아니기에 때로는 I형의 사람들끼리의 만남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서로 같은 I니까 다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당연함이 자칫 오해를 만들거나 무례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는 나와 정말 맞지 않았음에도 "실은 나도 너랑 같은 I야"라는 것을 강조하며 이상한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이들이 있는데, 그게 어찌나 불쾌하던지(I도 다 같은 I가 아니라고요). 내향인의 여러 가지 특성 중 나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을 하나 꼽아보자면 아마 나만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점일 것이다. 4차원 같은 재기 발랄함보다는 그저 내면의 세계가 깊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좋아하지도 않고, 삶의 우선순위가 우리나라에서 유독 중요시하는 경쟁, 비교, 치열함과는 조금 다른 위치에 있는 편이다.


앤드루는 사람들이 노력해서 얻으려는 것들-물질적 부, 결혼, 경력 등-이 좋다는 것을 분명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에겐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는 그런 것들이 생기면 갖긴 하겠지만, 생기지 않는다고 괴로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는 친구가 있으면 만나겠지만 친구가 없다고 안달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어쨌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내향적인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는, 세상이 주는 보상에 무관심하며, 따라서 보상에 구애받지 않는 비범한 힘과 독립성을 가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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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내향인들의 이와 같은 모습 때문에 사회적으로 언뜻 보기에 약간 불행하고 우울한 사람의 범주에 넣으려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이것은 쾌감상실이 만들어낸 우울증과는 달리 낮은 외향성에서 오는 금욕주의에 가깝다고 말한다. 나 또한 앤드루와 비슷한 성향을 띄고 있어 어떤 이들은 나를 보며 "그럼 대체 세상을 무슨 재미로 살아?"라는 다소 무례한 질문을 가감 없이 던지기도 한다. 그럼 나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말을 혼자 속으로 삼킨다.


'내가 말해주면, 너가 이해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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