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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Feb 17. 2023

죽는 날이 언제인지 알게 된다면

나이 들어 병드는 과정에서는 적어도 두 가지 용기는 필요하다. 하나는 삶에 끝이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다. 이는 무얼 두려워하고 무얼 희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실을 찾으려는 용기다. 그런 용기를 갖는 것만도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로 그 진실을 직면하기를 꺼린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더 어려운 용기가 있다. 바로 우리가 찾아낸 진실을 토대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용기다. 문제는 어떤 것이 현명한 길인지 알기 어려운 때가 너무도 많다는 점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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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해 종종 생각해 볼 때가 있다. 죽겠다는 뜻이 아니라 삶과 죽음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려 노력한다는 말이다. 외과의사인 아툴 가완디의 책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는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생명 연장의 한계를 꼬집어 말한다. 의료계는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것에 집중하며 의학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지만, 무의미한 연명 치료에 매달리기보다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이다. 결국 좋은 죽음이란 좋은 삶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것이다.


책 중반부에서는 "혼자서 화장실에 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몰라요"라는 로다 할머니의 말씀이 긴 여운으로 남기도 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삶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것과 노화라는 것이 단순히 나이를 먹는 것과는 별개로 계속해서 무언가를 하나씩 잃어가는 것을 인정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니 서글프기도 했다.


올해로 내 나이는 34살이 됐다. 작년 말 김경일 교수님의 북토크에 다녀왔는데, 교수님은 지금의 30대는 큰 변수가 없는 한 130살까지 살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나는 큰 병이나 갑작스러운 사고가 생기지 않는 이상, 아직 살 날이 100년이나 더 남았다는 뜻이다. 물론 나는 100년의 미래까지 걱정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다소 안일한 생각으로 지금 내 삶을 무한하다 착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죽기는 할 텐데 당장 일은 아니고, 언젠가 도래할 먼 훗날이라고 말이다.


드라마에 종종 등장하는 판타지적 요소가 있다. 바로 수명시계(명칭이 이게 맞나?)다. 앞으로 내가 살 수 있는 날이 얼마인지 알려주는 시계인데, 어떻게 죽을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제 죽을지는 알게 되는 것이다. 나는 운명이나 미신을 믿지도 않지만, 나의 미래를 미리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워 행여나 그런 말을 들어도 고개를 돌려버릴 사람이다. 누군가 대뜸 나에게 "너 앞으로 3년밖에 살지 못해"라는 말을 건넨다면, 찝찝하겠지만 믿지는 않겠지. 근데 그걸 알고 나면 내 삶은 달라질까? 내가 그 말을 믿게 되면 지금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겠다 늘 말하면서도 정작 그 시간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내가 있다. 해야 할 일이 산재되었을 때는 더 심한데, 하지 못한 일을 걱정하느라 지금 당장 눈앞에 놓인 일에는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상태. 강박과 완벽주의에 시달리다 지금 주어진 삶의 순간을 놓쳐버리는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요즘은 문득 그런 생각도 든다. 나의 하루 일과를 너무 계획대로만 탁탁 맞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보통은 그 계획을 반드시 지켜야만 할 것 같은 강박마저 있는데, 그걸 지키지 못하는 것을 견뎌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도대체 이건 삶을 사는 것인지, 살아 내는 것인지 의아해진다. 삶을 즐긴다고 아니, 즐기겠다고 말하면서도 이건 즐기는 것도 누리는 것도 아닌 애매한 외줄타기같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 혼자 위태롭게 삶을 지탱해가는 느낌. 조금 더 편안하면 안 될까. 조금 더 긴장을 풀기는 어려운 걸까. 시간을 밀도 있게 쓰고 싶다는 강박과 욕심에 사로잡혀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아가는 나를 보며 조금은 그 끈을 풀어도 괜찮다고, 모래시계 돌리기를 멈추고 이제는 그만 치워버리라고 속삭이며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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