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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Mar 09. 2023

우리 꼭 같은 팀 합시다

우리 팀과 유관부서로 일하고 있는 다른 부서의 직원이 얼마 전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해연님, OO님이 저보고 집요하대요."


그의 말을 듣고 '그런가?'싶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던 것 같아 가만히 웃었다. 근데 그 집요함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집요함이라면 일할 때, 특히 그 팀에서 일할 때만큼은 마음껏 발휘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는 일을 잘한다. 그 팀의 업무는 다방면으로 신경 쓸 것과 챙길 것들이 많은데, 지금껏 그 팀의 누구도 그 일을 똑 부러지게 해내는 것을 보지 못했다. 연달아 발생하는 그 팀의 실수에 우리 팀원들 모두 학을 뗄 정도로 애물단지 같은 존재였다. 발신자 표시에 그 팀 이름이 뜰 때면 모두들 고래를 절레절레 흔들며 갑자기 자기 일에 열중하곤 했다. 속으로 '또 시작됐군'이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아니라 안도하는 마음은 덤이다.


하지만 그가 오고부터는 그 팀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정확히는 일처리 능력이 달라졌다. 그는 꼼꼼하다는 말로 부족하다. 기한을 어기는 법이 없었고, 피드백 속도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빨라 오히려 내 쪽에서 천천히 해도 된다 말할 정도였다. 수정할 것과 개선할 것을 바로바로 반영하고, 궁금한 것은 참지 않고 물어보는 그의 모습에 나조차도 놓치고 지나쳤던 것을 다시 찾아볼 때도 많았다. 나는 그 사람이 일머리가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면서 이 사람이라면 뭘 해도 잘할 것 같다는 생각에 신뢰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집요하다니. 그리고 그 집요하다는 말을 건넨 사람은 다름 아닌 그 팀의 직원 A다. 이 말인즉슨 일을 너무 못(안) 해서 우리 팀을 속 터지게 했던 그 직원 A란 말이다. 본인이 일 못하는 것을 정작 일 잘하는 사람에게 집요하다는 말로 프레임을 씌우다니 참으로 못났다 못났어.


서론이 장황했다. 오늘 내가 쓰려고 했던 주제는 바로 천재성이다. 천재성이라는 말이 다소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문턱을 조금 낮춰 접근해 봤을 때, 나의 천재성은 바로 집요함이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집요하다'를 검색해 보면 '몹시 고집스럽고 끈질기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유의어로는 '고집스럽다', '그악스럽다', '끈질기다'가 있는데, 무엇하나 기분 좋은 어감이 없다. 굉장히 깐깐하고 신경질적인 느낌마저 든다.


나도 꽤나 집요한 편이다. 이 집요하다는 것이 한 끗 차이로 잘못 나가면 집착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그쪽보다는, 한 가지에 집중하면 그것을 완전히 해결하기 전까지 절대 중도 하차하지 않는 편이라 말하고 싶다. 물고 늘어지는 것을 잘하는데, 그 물고 늘어지는 것이 누군가를 질리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집중도를 끌어올려야만 하는 일에서 발휘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나는 책도 집요하게 읽고, 집요하게 메모하고, 완전히 이해해서 내 것으로 만들기까지 집요하게 노력한다. 일처리를 할 때도 그렇다. 내 일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완전히 숙지하고 빈틈없이 마무리하려 노력한다. 이 모든 과정이 내가 갖고 있는 집요함이다. 무언가에 궁금증이 생겼을 때도 마찬가지다. 집요하게 찾아내고 혹시나 또 놓치는 부분이 없나 찾고, 경험하고, 물어보고 집요할 정도로 매달린다. 그렇게 다 끝내고 난 뒤에야 온전한 나의 것이 된다. 이게 내 집요함이다.


남궁인 작가와 이슬아 작가의 서간에세이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라는 책에서도 나는 이슬아 작가 특유의 집요함이 좋았다. 이 책은 두 명의 작가가 돌아가며 서로에게 쓴 편지를 담고 있는데, 책 말미에 이슬아 작가가 둘의 서간문 중 누구의 글이 더 서간문에 적합한지를 꼼꼼하게 분석하며 써 내려간 글이 있다. '상대를 지칭하는 단어의 빈도'나 '자신을 지칭하는 단어'의 빈도수를 세어 그래프로 정리하고, 도식화시키기도 했는데 나는 그 부분을 읽으며 감탄했다. 물론 그녀의 이 미친(?) 집요함이 누군가에게는 '뭘 저렇게 까지', '징하다 징해'라는 말로 비난당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뭐 이쪽 과니까. 그녀의 이런 집요함에 큰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아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한 가지 있다. 혹시 이런 사람이 나와 다른 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쩌면 장르가 달라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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