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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Mar 16. 2023

당신은 왜 살고 있나요?

종종 주변인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당신은 왜 살고 있나요?"

그럴 때마다 대체로 돌아오는 답변은 "그냥 사는 거지",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나으니까", "태어났으니까" 등등 뚜렷한 무언가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이 땅에 태어났으니까 태어난 대로 살아갈 뿐이라는 다소 투박한 답변은 나의 근본적인 궁금증을 해결해 주지 못했다. 질문을 하면 할수록 무언가 뻥 뚫린 것처럼 공허했고 더 나아가서는 외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다면 이 질문도 해보고 싶다.

"당신에게 삶은 선물인가요?"

어쩌면 우리는 삶과 죽음을 너무 이분법적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이라는 선물(?)이 과연 선물이 맞는가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다. 누군가에게는 삶이 죽음보다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철학 교수인 사이먼 클리츨리의 책 <자살에 대하여>에서 저자는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금기시되었던 주제 중 하나인 '우울증'처럼, '자살'이라는 주제를 조심스럽지만 솔직하게 다뤄낸다. “죽음을 생각하는 철학자의 오후"라는 부제를 가진 이 책에서 그는 말한다. "우리는 자살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할 언어가 없다"고 말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렇다. 지나치게 삶의 의미를 찾다 보면, 역으로 삶의 의미가 없는 삶은 삶이 아닌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특별한 의미가 없는 내 삶이 다소 초라하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인데, 이건 사실 내 이야기다. 나는 내 삶에 의미를 찾는데 꽤나 자주 진지했다. 진지해야 할 것만 같았다. 삶인데, 얼마나 소중한 삶인데 말이다. 근데 그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자꾸 늪으로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그냥도 많았다. 이유를 따지지 않는 그냥, "그냥 그렇게 사는 거지"라는 무수히 많은 그냥의 말들.


내가 구독하고 있는 여러 작가님들 중에 "김똑띠"라는 필명의 작가님이 있다. 본업은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이다. 교육에 대한 가치관을 녹여낸 그분의 글을 가만히 읽다 보면 선생님인지, 철학자인지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그만큼 삶에 대한 고찰이 깊으신 분이다. 여러 편의 글 중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글이 있었는데, 바로 꽃꽂이에 대한 글이다.


3월의 어느 날, 작가님은 자주 오가던 골목길을 지나다 새로 생긴 꽃집을 우연히 발견하셨다. 그리곤 '인생이란 우연의 필연화 과정'이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을 빌려 이렇다 할 특별한 이유도 없이 덜컥 꽃꽂이 원데이 클래스에 등록하셨다. 꽃을 배우며 세 번의 계절이 지났고, 가벼운 마음에서 시작한 원데이 클래스는 취미반을 거쳐 성인반에 이르게 되었다. 그 긴 과정을 통해 배운 것이 무엇이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작가님은 간결하게 대답하셨다. "꽃을 만지는 경험"을 배웠다고.

꽃이란 무엇인가부터 시작해서 꽃꽂이의 정석을 술술 읊어볼 만도 한데, 배움의 목표가 일련의 커리큘럼을 숙지하는 데에 있지 않다는 작가님의 말씀에 큰 울림이 있었다.


삶의 의미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거창하게 "나는 반드시 무언가가 될 거야", "나의 삶의 목표는!"으로 시작되는 문장에는 힘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때로는 그 힘이 과해져 왜곡된 의미부여가 쌓이다 스스로가 그 의미에 닿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한다. 누구를 위한 채찍질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래서 나는 내 삶의 의미라는 거창한 단어에 힘을 조금 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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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사 연구자이자 칼럼니스트인 김영민 교수는 자신의 저서인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산책은 이 세상에서 자신이 존재하기 위한 거의 모든 것이라 말한다.


내가 산책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산책에 목적이 없다는 데 있다. 나는 오랫동안 목적 없는 삶을 원해왔다. 왜냐하면 나는 목적보다는 삶을 원하므로. 목적을 위해 삶을 희생하기 싫으므로. 목적은 결국 삶을 배신하기 마련이므로.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해보자. 대개 기대만큼 기쁘지 않다. 허무가 엄습한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제 뭐 하지?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고 해보자. 허무가 엄습한다. 그것 봐, 해내지 못했잖아. 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았지?


그는 목적이 없어도 되는 삶을 원한다고 말한다. 삶을 살고 싶지, 삶이란 과제를 수행하고 싶지 않으므로.



2021년 봄부터 시작했던 글쓰기 모임도 그렇다. 처음 시작은 단순했다. 원래부터 혼자 끄적끄적 쓰는 것을 좋아했고, 좋아하다 보니 나누고 싶어졌다. 이렇다 할 큰 의미도 기대도 없이 무작정 시작했던 글쓰기 모임은 이제 1년 반의 긴 시간을 넘어 내 삶의 일부가 됐다. 그 기간 동안 내가 배우고 느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글을 나누는 재미"라고 답할 것이다. 이 한 문장 안에 그동안 그곳에서 배우고 느낀 수많은 것들과 소중한 관계까지 다 담겨있다. 나의 삶도 이와 비슷하다. 거창하지 않고 소소하다. 나는 매일 읽고 쓰고 걷는 나의 삶 그 자체를 사랑한다. 그것을 할 때 비로소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긍정의 정서를 경험한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내일도 계속 그렇게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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