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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Mar 06. 2023

친애하는 당신에게

재작년 '공감인'이라는 비영리단체에서 마음벗으로 활동하면서 그를 처음 알았다. 2013년부터 시작된 공감인은 서울시에서 위탁받은 치유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치유의 온기를 서울시 전역으로 확산시키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따뜻한 치유활동가 단체다. 사실 그를 마음벗 안에서 만난 것은 아니다. 함께 마음벗으로 활동하고 있는 동료 중 한 명이 그의 유튜브 콘텐츠에 출연한 것을 우리에게 공유하면서 처음으로 그의 존재를 알게 됐다. 구독자가 1,000명도 채 되지 않는 유명하지 않은 작은 채널이었는데 그 채널에 담긴 영상들이 참 좋았다.


"인생의 반짝임만을 보여주기 급급한 세상에서 내 삶을 줄곧 가엾게 여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공간"이라는 소개 글처럼, 그곳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상처(가정폭력과 우울증, 성폭행, 왕따, 트랜스젠더, 가난 등)와 결핍을 가지고 있다. 셀럽도, 인플루언서도 아닌, 우리 곁에 있지만 차마 자신의 깊은 상처를 내보일 수 없었던 평범한 그들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자신만의 이야기를 각본도 대본도 없이 묵묵히 전해 간다.


나는 그 채널의 구독자가 되었고 그들의 삶을 조용히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누군가의 서사를 말없이 공감하며 눈물짓기도 했던 어느 날, 나 또한 그중 한 명이 되었다. 오랫동안 마음속 상처로 담아두었던 나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진 것이다.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누군가는 나라는 사람의 투박한 영상을 보며 위로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말이다. 그렇게 그를 만났다. 전화로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했고 강남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그와 처음으로 대면했다. 짧게 인사를 나누고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그동안 영상에서 봐왔던 것처럼 어떠한 준비도 대본도 없이 무작정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카메라는 오직 나를 비추고 있었고, 그는 내 건너편에 앉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편하게 말해도 괜찮다는 제스처를 중간중간 건넸다. 촬영은 1시간을 훌쩍 넘었지만, 제작된 영상은 10분이 채 되지 않았다. 긴 시간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는 한마디 말도 덧대지 않았지만, 눈으로 계속 말하고 있었다. 다 얘기해도 괜찮다고. 촬영 중간 내 이야기에 북받쳐 눈물짓는 나를 보며 함께 눈물짓기도 하는 그의 모습에 고마운 마음도 올라왔다. 생전 처음 보는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차츰 괜찮아졌다. 그렇게 우리는 촬영을 마치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며칠이 지나 영상을 업로드했다는 그의 메시지에 나는 그가 만든 영상을 보면서 그날의 일들을 가만히 떠올렸다. 이 모든 것이 작년 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그해 겨울 그의 책이 나왔다. 그동안 다른 이들의 이야기만 담아냈던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다. 알고 보니 그는 나와 동갑이었다. 아버지, 어린 남동생과 같이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의 서사를 가만히 읽어 내려갔다. 평범한 에세이였지만 왜 그토록 그가 다양한 삶의 면면을 깊숙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랐는지 알 수 있었다. 누구보다 힘겹게 살았던 그의 삶이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해가 지나고 설날 연휴 즈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그의 카톡을 받았다. 나는 출간된 책의 내용이 참 좋았다는 말을 건넸다(그 책에는 나의 이야기도 담겨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가깝고도 먼 또 하나의 인연이 되었다. 다름을 틀림으로 대하는 시선들을 좋아하지 않으며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결국 우리의 이야기라는 것을 들려주고 싶었다는 그의 문장을 가만히 되뇌어본다.


간혹 사람들은 묻는다. 왜 굳이 팔리지도 않을 콘텐츠를 기획하고, 아까운 시간과 돈을 쓰냐고.
지치거나, 피곤하지 않냐고. 하지만 내가 중요하게 여기고 진심으로 원하는 건 팔리는 콘텐츠가 아니다. 자랑하기 바쁜, 혹은 나를 들여다볼 시간조차 인색해 하는 우리가 조금이나마 각자의 결핍을 공유하고 내면을 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을 뿐이다.

<친애하는 당신에게> 정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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