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제 인생을 채점하지 마세요
집은 나를 가장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공간이에요. 그곳으로부터 내쫓김을 당한다는 것은 부정적인 의미가 지나치게 커요. 굉장한 박탈입니다. 누구의 소유이든 간에, 집은 가족 모두의 공간입니다. 누구도 다른 누구를 내쫓을 수 없어요. 가족 구성원이라면 집에 있는 것은 당연한 권리입니다. 정말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도, 이 권리를 다른 누구도 아닌 부모가 박탈하는 행위 자체는 학대예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입니다.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오은영
그 집을 떠난 지도 이제 4년에 접어들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곳에서의 시간들. 안온함보다는 긴장과 압박의 연속이었던 그 숨 막히던 공간. 나는 그곳을 30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고, 그곳을 나오기로 결심했던 그때의 선택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
흔히들 말하는 "가족이니까", "다 너 잘 되라고", "가족이 아니면 누가 널 챙겨주니?" 등의 전제들이 싫었다. 그 전제로 시작되는 사랑(이라 쓰고 폭력이라 말하는) 그 모든 행위들이 지독하게 싫었다. 가족이니까 그래도 되는 양, 가족이라서 특별한 것처럼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라는 일방적인 상황들이 지긋지긋했다.
그곳에서 나는 매 순간 검사를 받는 사람이었다. 지금 내 인생이 엄마의 생각대로 잘 흘러가고 있는지, 이탈하고 있지는 않은지, 거슬리는 부분은 없는지 늘 살펴야 했다. 조금만 엄마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김없이 지적이 시작됐다. 벗어날 곳은 없었다. 그냥 당하는 거다. 그 작은 방 안에 갇혀서 벗어날 수도 도망칠 수도 없이 계속 코너로 몰려야만 했다. 모든 것이 그날 엄마의 기분과 마음에 따라 달라졌다. 기분이 좋은 날은 무난히 넘어가는 것이고,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는 멀쩡히 잘 하고 있던 것 하나하나까지 다 들춰내 탈탈 털리곤 했다. 낮이든, 밤이든, 새벽이든 예측할 수 있는 시간도 없었다. 그저 엄마가 말하고 싶으면 말하는 거다. 내가 자고 있으면 강제로 깨우고 일으켜 세워서라도 말이다. 엄마의 교정에 내 삶에 대한 존중과 배려 따위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당신은 말을 하는 거고, 나는 들으면 되는 그런 관계였다.
나는 말대꾸를 한 적이 없다. 내 의견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적어도 내 인생이니까 나도 나의 생각과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것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내가 의견이라고 하는 말들이 엄마의 귀에는 그저 말대꾸로밖에 여겨지지 않았고, 나름대로 논리정연하게 나의 입장을 설명해 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강압적이었다. 그래도 가끔은 "너 밖에서도 이렇게 사람들한테 말대꾸 따박따박하고 다니니? 그러면 사람들이 너한테 뭐라고 안 해?"라는 말로 순화(?)되기도 했다.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일이 검사하듯 내 인생을 멋대로 설계하는 엄마의 독단에 지쳐 그만 좀 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돌아오는 답은 어김없이 같았다.
"그래? 그렇게 잘났으면 나가."
지금 당장 밖에 나가 살 집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엄마가 내 입을 막을 때마다 쓰는 주문이었다. 나는 대화를 하고 싶었던 건데, 엄마는 엄마의 말에 복종하지 않는 나를 못마땅해하며 결국은 마무리를 꼭 저렇게 지었다. 키워준 걸 고맙게 여길줄 모른다고 말했다. 나의 의견 따위는 듣고 싶지 않고, 너는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라는 일방적인 말이었다. 그래도 저 정도면 많이 순화된 편이지 보통은 나가라고 소리 지르기 일쑤였다.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하고, 심할 때는 지금 당장 나가라고 나를 억지로 붙잡아 내동댕이치기도 했다.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맞았다. 어릴 때는 맞으면 아프다고 울었지만, 성인이 되고 부터는 아무리 아파도 오기로라도 아픈 티를 내지 않았다. 그러자 엄마는 몸이 아닌 머리나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다. 다 큰 성인에게 그게 얼마나 모욕적인 행동인지 알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렇게 나를 복종시켰다. 그 집을 떠나기 전까지도 마찬가지였다.
그 집을 벗어나고 가장 좋았던 것은 엄마를 피하고 싶을 때 피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공간에 갇혀있을 때는 모든 것이 엄마의 통제 아래 있었다. 어쨌든 집이라는 공간을 영원히 벗어날 순 없기에 나의 일탈은 길어봤자 이틀을 넘지 못했고,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엄마는 나의 약점을 가장 잘 알고 있었고, 그 약점을 잘 이용하는 사람이었다.
독립하고 물리적으로 거리가 멀어지자 엄마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영원히 당신 손 안에 있을 것만 같았던 자식이 이제 자칫 잘못하다간 영영 연락을 끊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걸 처음으로 느낀 것 같았다. 그때부터는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엄마와 부딪힐 때마다 연락을 피했다. 길게는 몇 달이 되기도 했고, 명절에 한 번 가는 발걸음조차 끊어버리기도 했다. 엄마는 처음으로 나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건네기 시작했다. 과거의 잘못들에 대해 정말 미안했다고, 그때 왜 그렇게 함부로 모질게 했었는지 많이 후회하고 있다고 말이다. 온갖 폭언과 폭력을 쏟아내고 정말 미안하다고, 미안했다고 말하는 엄마의 이중적인 모습들에 나는 늘 흔들렸다.
"괜찮아요. 다시 잘 지내봐요. 우리."
나는 엄마의 사과를 더 이상 비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엄마도 한 번에 변해갈 수 없으니 지금 우리의 관계는 과도기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가끔 만나는 그 시간이 소중해졌고, 그렇게 우리의 관계도 차츰 괜찮아져 가나 보다 생각할 때쯤이면 어김없이 일이 터지곤 했다.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구나를 되감기 하듯 엄마는 겉모습만 변한척 했을 뿐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언제든 내가 조금이라도 약해져있을 때면 쉴 새 없이 나를 공격했고, 지적했고, 검사하듯 온갖 말들을 퍼부었다. 그래놓고 다음 날이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랑해, 내 딸", "어제는 엄마가 너무 심했지?", "우리 딸이 순수하고 착해서 엄마는 너무 좋아"라는 온갖 감언이설로 나를 또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상대의 진심 어린 사과와 감정 호소에 약한 나를 가장 잘 아는 엄마가 늘 취하는 방식이었다. 그럴 때면 나는 "괜찮아요."라고 그 사과를 맥없이 받아들이곤 했다.
'그래, 인생이란 게 원래 지지고 볶고 그렇게 사는 거지'라고 하기에 그 지난한 과정들이 나를 너무 지치게 만들었다. 상처가 아물어갈 때쯤이면 엄마는 어김없이 내 인생을 지적하려 들었고, 그때마다 방어하기 급급했던 나는 최근에 또 한 번 엄마와 부딪히고 말았다.
인생에 큰 결정을 앞두고 나도 가족들에게 지지라는 걸 받고 싶었던 게 그렇게 큰 잘못이었을까, 그렇게 철없는 행동이었을까? 두려움과 혼란스러운 나의 마음 상태를 털어놓으며 조금이라도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나의 크나큰 착각이었다. 그렇게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리는 내가 바보 같았다. 나는 그렇게 또 엄마에게 검사를 받았다. 지지와 격려, 위로는커녕 온갖 지적과 교정, 그게 맞냐 틀리냐는 말들로 내 걱정을 더 두렵고, 혼란스럽게 만들어준 엄마에게 나는 오늘의 이 통화를 후회한다고 말했다. 다시는, 두 번 다시는 가족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말에 화가 난 엄마는 또 심한 말들을 퍼부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며, 후회한다는 말을 하냐며, 너는 그게 잘못됐다는 등의 말들로 나의 말문을 막았다.
내가 해결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던 문제는 엄마의 걱정까지 더해 더 큰 두려움으로 내게 돌아왔다. 나는 아직도 그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하지만 그건 내 문제다. 어차피 내 문제였다. 잠시라도 가족들에게 응원과 지지를 기대했던 내 스스로를 지독하게 원망했고, 다음 날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엄마의 일방적인 연락에도 무응답으로 대응했다. 뒤늦은 사과와 사랑한다는 말을 쏟아내는 엄마의 카톡에 할 말을 잃었다. 부재중 전화도 애써 무시했다. 나는 그렇게 또 나의 동굴로 들어간다.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언제까지 지속해야 할까. 엄마는 변하지 않았다.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변하려는 의지조차 없었다. 그날 통화를 하면서도 내게 말했다. 바뀔 수 없다고, 내가 바뀌라고. 나 또한 말했다. 맞은 사람이 아프다고 하면 때린 사람은 멈춰야 하는 것이라고. 계속 맞았으니 조금 더 맞는다고 큰일 나지 않는다는 듯 말하지 말라고. 나는 늘 아팠고, 이제 더 이상 맞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흔히 기억은 미화된다고들 하는데, 나의 오랜 상처들은 미화되어서 이 정도인 걸까, 아니면 점점 더 왜곡되고 있는 것일까.
얼마 전 그 일이 있고 난 후 엄마는 나에게 "OO아, 인생은 혼자 사는 게 아니야"라는 다정한(이 이중성이 무섭다) 카톡을 보냈다. 나는 그 카톡을 보고 다시 또 생각이 많아졌다. 이 세상은 철저하게 혼자라는 것을 누구보다 제대로 보여준 엄마가 할 소린가 싶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그 간격을 좁히려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 멀리 와버렸고 돌아갈 길도 이제는 잊어버렸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그 길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가족과의 면적을 줄여가야 할 때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