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꼰대라는 은어를 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만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샐러드 가게가 있다. 나처럼 혼자 오는 손님도 많고 주식(?)이 아니다 보니 매장 자체가 일반 식당처럼 소란스럽지는 않은 편이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이곳을 찾았는데 나의 오랜 루틴 중 하나이기도 하다. 매장에 직원분들도 항상 동일한 메뉴를 주문하는 나의 모습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셨는지 주고받는 멘트도 꽤나 단조롭다. 이런 담백한 분위기라면 앞으로도 계속 재방문할 의사가 있었... 는데, 어느 날부턴가 조금 애매한 상황을 만나고 말았다.
내가 알기로 이 매장은 프랜차이즈이기 때문에 점장님이 상주해 계시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아니 그래서였다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방문하는 시간대에 유독 눈에 들어오는 한 명의 직원분이 계셨다. 편의상 그분을 A라고 지칭하겠다. 언제부턴가 내가 점심을 먹으려고 매장을 방문하는 시간대가 A의 쉬는 시간과 겹치는 것 같았다. 나는 원체 사람 많은 곳을 꺼리다 보니 되도록 피크타임을 피해 이른 점심을 먹었고, 그 시간대가 한가했기 때문에 A의 쉬는 시간과도 겹쳤던 게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우선 A는 쉬는 시간을 매장 안에서만 보낸다. 더 정확히는 주방 쪽이 아닌 홀에서 보내곤 하는데, A도 그 시간에 이른 점심을 챙겨 먹는 것 같았다. A가 손님이 아닌 직원이라는 것을 안 것은 앞치마를 두른 채로 테이블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으면서 핸드폰으로 예능을 보는 것 같았는데, 문제는 그 소리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보통의 식당이나 카페에서도 그 정도 음량으로 영상을 본다면 충분히 피해가 될 것 같기는 한데, '앞치마를 두른 채' 영상을 보며 밥을 먹는 A의 모습이 불쾌하게 느껴진 순간 혹시 내가 말로만 듣던 젊은 꼰대가 아닌가 싶어진 것이다.
나는 소음에 특히 예민한 편이고, 식당이나 카페는 원래 대화가 오고 가는 곳이니까 사실 그 예능 영상을 누군가의 대화 소리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근데 그 소음이 음량이 커서 문제인 것인지 A가 이곳의 직원인데 손님에게 피해를 줬기 때문인 건지(앞치마를 벗고 쉬었다면 괜찮았을까), 직원이 아닌 일반 손님이 같은 행동을 하고 있어도 내가 그 사람을 신경 썼을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도 말로만 듣던 젊은 꼰대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지점은 '아니 직원이 어떻게 손님이 있는데도 저렇게 시끄럽게 영상을 볼 수 있지?'라는 심보였을까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다른 손님이 같은 행동을 하고 있어도 내가 비슷한 불쾌감을 느꼈을지 확신할 수 없어 더 혼란스러워졌다.
A의 행동이 그날 한 번 뿐이었다면 다행(?)이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매주 내가 방문하는 시간대마다 그 모습을 마주하게 됐다(매장이 좁아 피할 수도 없다). 앞치마를 두른 채 볼륨을 한껏 높인 예능 영상을 보며 식사를 하거나 신발을 벗고 반대편 의자에 다리를 올려둔 채로 낮잠을 자는 등 자신의 쉬는 시간을 오롯이 즐기고 있는 그 모습이 탐탁지 않았던 것이 나의 편협함 때문인가 생각이 깊어졌다. A가 만약 직원이 아니라 손님이었다면 신발을 벗고 의자에 발을 올려둔 채 낮잠을 자거나 시끄러운 영상을 보면서 식사를 한다고 해서 그 손님에게 한마디 말을 건넬 필요를 내가 느꼈을까 싶은 것이다. 어떨 때는 영상에서 쏟아지는 소음이 너무 커 한 번씩 쳐다보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더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노려... 아니, 쳐다보는 A의 시선에 놀라 다급히 시선을 돌리곤 했다. 내가 느낀 A의 눈빛은 무표정보다는 싸늘함에 가까웠다(물론 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만약 이 상황에 내가 A에게 한마디 말을 건넸다면 나는 진상 손님이 되는 것일까?
점장님이 상주해 계셨어도 A는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손님이 왕인 줄 아는 갑질 손님의 한 사례가 되는 것일까?
괜히 말을 건넸다가 나중에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오늘 어떤 손님이 되게 진상 부렸잖아'라고 웅성거리는 것은 아닐까?
직장 속 MZ 세대들의 모습을 풍자하는 영상과 오고 가는 말들이 많은 요즘 나는 그들과 같은 MZ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꼰대, 손님이 왕인 줄 아는 안하무인으로 취급당하게 되면 어쩌지? 라는 생각에 혼란스러웠다. 서비스직에 종사하고 계신 분들의 고충을 어느 정도는 경험해 봤기에 나 또한 무조건적인 친절을 바라지는 않는다.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라고 해서 항상 웃을 수도 없고, 친절해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그럼에도 친절하지 않은 것과 불친절은 다른 것이라 생각한다. 말장난 같지만 정말 그렇다. 불친절과 안친절은 엄연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A에게 이곳은 작은 직장 혹은 잠시 아르바이트를 하며 거쳐가는 곳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정해진 시간 동안 정해진 역할만 다하면 되는 공간일지도 모르고. 나는 그런 A의 행동에서 어떠한 악의를 느낀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를 불편함들이 스멀스멀 올라오면서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버린 것이다. 윗세대가 바라보는 우리 세대가 그동안 이런 느낌이었을까 싶어 굉장히 혼란스러웠다(제 급여에 예의와 웃음은 포함되어있지 않습니다만). 거기다 이번 주에 방문했을 때는 유독 더 귀를 때리는 예능 영상의 소음 때문에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불편한 식사를 경험했다. 그 시간대에 다른 손님이라도 있었으면 좀 괜찮았으려나. 손님이 나 하나밖에 없는 시간대라 더 그러는 것일까.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은 왠지 모를 허한 느낌에 다급하게 자리를 정리하고 그곳을 나왔다.
그날 밤 나는 점심에 먹은 음식이 얹힌 것인지 밤늦도록 쓰린 속을 달래며 헛구역질을 하다 잠을 설쳤다. 불편한 리뷰를 남길까 고민하다 늘 그래왔듯 아무 말 없이 피하는 쪽을 택했다. 나의 오랜 단골집을 버려야 할 때가 오고 만 것이다. 어차피 프랜차이즈이기 때문에 다른 매장을 찾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이 불쾌한 경험을 나에게 지속적으로 주고 싶지는 않았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말처럼 결국은 내가 조용히 떠나는 길을 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