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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Mar 13. 2023

당신이 사랑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날 사랑하긴 했니

배려는 이기심을 넘지 못한다. 배려보다 이기심이 더 큰 사랑의 증거로 간주된다. 사랑하기 때문에 떠난다는 수사가 이 세계에서 위선과 변명의 표현으로 인식되는 이유이다.
(중략)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는 사람은 사랑하기 때문에 파멸에 이르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 자기는 물론 연인(사랑하는 '사람')의 파멸조차 감내하는 극한의 이기심을 사랑은 요구한다. 그, 또는 그녀가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사랑이 이기적인 것이다.

<사랑의 생애> 이승우



헤어질 때 종종 등장하는 말 중 하나가 "사랑하니까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 흔히들 반문하곤 한다. "아니, 사랑하는데 왜 헤어져?" 거기에 덧붙여 "그건 덜 사랑하니까 그런 거야. 정말 사랑했어 봐. 사랑했으니까 헤어진다는 말이 나올 수 있나."라고.

이별을 고하는 것이 마치 배신인 것처럼, '너는 우리 사랑에 딱 그만큼이었다'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내 경우에도 그런 헤어짐을 겪었었던 적이 있다. 상대의 일방적인 비난에 침묵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말했다. 이 사랑에 진심이었다면 헤어지자는 말을 할 수가 없다고,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이다.


진짜 그럴까?


나는 이승우 작가의 <사랑의 생애>라는 책을 읽으며 그 답을 찾았다. 배려는 이기심을 이기지 못한다는 작가의 말이 나의 답답함을 시원하게 풀어주었다. 상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이기심으로 우리는 그 사랑을 지킨다는 명목을 앞세워 사랑하는 사람의 (이미지의) 훼손을 감수한다. 작가는 말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사랑을 내놓지 않으려 한다고.


사랑을 내놓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이미지의 훼손만은 막으려는 사람은 사랑의 크기를 묻는 질문 앞에 놓인다. 당신의 사랑은 그 정도인가? 사랑이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기 때문에, 즉 연인의 이미지를 걱정할 여유를 부릴 만한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랑을 내놓으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사랑이 그래도 되는 것인가? 당신의 큰 배려는 당신의 사랑의 보잘것없음을 감추기 위한 포즈가 아닌가?


-

마치 자신의 사랑만이, 상대를 비난하면서까지 지키려고 하는 사랑만이 진짜 사랑인 것 마냥 도취된 상대의 말을 이기기란 쉽지 않다. 그는 누구를 사랑하는 것인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 사랑을 지키고 싶다고? 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 다치는 그녀의 상처에는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그녀를 사랑한다고?

그 사랑은 대체 무엇을, 누구를 위한 사랑인데?

상대를 훼손시키지 않으려는 배려는 사랑해서 헤어질 수 없다는 이기심을 이길 수 없다. 표면적으로 그렇다. 이건 한 단계 더 나아간 접근이다. 그걸 당신은 알고 있는가. 당신은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그 상대인가, 그 사랑인가.


침묵하는 자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 침묵하기 때문에 더 비난당하는 그들을 위한 변론을 하고 싶었다.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말을 참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 그 어려운 것을 감내하고서라도 지키고 싶은 단 한 가지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사랑이라 생각한다. 상대를 나처럼 아끼기 때문에 우리의 사랑이 지속되어 봤자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줄 일만 남았다는 것을 아는 이는 그 사랑을 쉽게 놓는 것이 아니라 울면서도 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마음을 아느냐 묻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이와 사랑을 지속하고 싶었다. 그 배려, 그 존중을 진정으로 생각해 본 이는 그 사랑을 놓을 수밖에 없는 이의 마음까지 헤아릴 수 있을 것이라 감히 자신해 본다.


이승우 작가는 그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 같았다. 헤아려본 적이 있는 사람 같았다. 사랑에도 자격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면 이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상대를 나보다 더 사랑한다는 입바른 거짓말을 늘어놓기에 앞서 이 사랑을 책임감 있게 만들어갈 수 있는가를 말이다. 상대를 나보다 더 사랑한다고 말해놓고 상대의 상처에 아랑곳하지 않는 그 마음은 사랑이 아니다. 이기심이다. 그래서 배려는 이기심을 이길 수 없다. 마음 아프지만 대체로 그렇다. 나는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과 사랑하고 싶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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