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온도
나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대화가 잘 통하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말을 유창하게 잘 하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인데, 결이라는 게 맞는 사람들이 있다. A라는 사람은 주변에서 말하길 너무 소극적이라 말주변이 없다는 평을 들어왔다고 치자. 근데 내가 이 A라는 사람과 직접 대화를 나눠보니 내 기준에서는 말주변이 없는 게 아니라 단지 말의 속도가 느릴 뿐, 오리혀 생각도 깊고 상대를 배려하며 대화를 이어간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는 나와 대화의 온도가 맞는 사람인 것이다. 이처럼 타인과의 관계를 오래 이어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나에게는 대화의 온도다.
오래전에 읽었는데, 아직도 여전히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고 있는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라는 책이 떠오른다. 이 책을 읽을 당시 명성이 하도 자자해서 잔뜩 기대하고 읽었지만 오히려 실망만 했던 기억이... 물론 좋았던 문장들도 있었다. 그는 언어에는 따뜻함과 차가움, 적당한 온기 등 나름의 온도가 있다고 말하는데, 그 문장을 읽으며 나에게 맞는 언어의 온도와 대화의 온도는 몇 도쯤인가도 생각해 보게 됐다.
흔히들 말한다.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건 작은 사랑일지도 모른다.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큰 사랑이 아닐까.
요즘은 이 문장을 꽤 많은 사람들이 쓰는 것 같던데, 당시에는 이런 인식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에게 해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여겼던 시기. 이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주는 사람보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사람이 더 크게 느껴진다. 꼭 사랑뿐만이 아니다. 대화의 온도를 맞추기 위해서는 상대의 언어에 대한 존중도 동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싫다고 말하는 것을 권하지 않으며, 내 입장에서만 일방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상대의 입장에서 진정으로 생각하고 경청하는 것. 진정한 대화는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주인공이라는 것을 서로가 알고 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언어에 유독 민감한 나는 요즘도 말의 독에 푹 빠져있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에너지가 쭉쭉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알 수 없는 포인트에서 화가 올라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이때는 집 생각이 간절해진다. 그들과 헤어지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날 먹은 음식이 얹힌 것처럼 속이 불편하고 체한 느낌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서 이것은 상대의 잘못인가 나의 잘못인가를 곰곰이 되짚어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어쩌면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그저 우리 대화의 온도가 맞지 않아 서로가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작년 말에 비폭력강의를 들으며 느낀 것 중 하나는 상대를 온전히 존중하며 말하는 것과 나의 감정, 욕구를 인지하며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 뱉는다고 다 말이 아니며, 상대의 말을 나라는 필터를 거쳐 왜곡되게 해석해서도 안된다. 있는 그대로 상대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듯 바라보는 것이 왜 이렇게 버거운 것일까. 이 글을 쓰며 또 생각이 깊어진다. 나는 말을 흡수하는 필터가 유독 촘촘한 것일까, 아니면 그 필터망이 고장 나서 걸러도 될 말까지 굳이 다 필터에 걸려버리는 것일까.
이 시기가 도래하면 한동안 누구와도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진다. 더 이상 누군가와의 인연을 이런 일로 정리하고 싶지 않다. 나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말을 왜곡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의 토양이 촉촉해질 시간말이다. 당분간은 뱉어내는 말도, 들려오는 말도 되도록 아끼고 걸러야겠다고 혼자 가만히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