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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Feb 10. 2023

회피형 가면을 쓴 불안형일까

돌이켜보면 꾸준히 타인과 단절된 삶을 살고자 했다. 감정을 나눌 이들이 없는지 끊임없이 둘러보다 종종 마음에 품이 남는 듯한 사람을 보게 되어도 슬쩍 피해 가곤 했다. 누군가와의 교류를 절절하게 그리워하면서도 끈질기게 외면해 왔던 이유 중 하나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정말 소중한 것은 바라는 간절함이 클수록 잃어가는 과정의 고통이 더 크기 마련이니까.
잃는 것에 익숙한 사람은 소중한 무엇을 가지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이것을 영구적으로 가지게 될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해야 덜 고통스럽게 잃을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당신의 블루는 어떤 색인가요?> 김다은



어제 친구와 대화를 나누던 중 애착유형에 대한 주제가 나왔다. 이 친구는 평소에도 사람들의 기질과 성향에 관심이 많다 보니 MBTI에도 꽤나 과몰입 중인데, 애착유형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개인적으로 '너는 OO형이니까 어떨 것이다'라는 전제를 좋아하지 않지만, 데이터가 주는 통계적 결과를 완전히 무시할 수만은 없다. 나 또한 스스로를 내향적 개인주의자라고 칭하곤 하니까. 모든 상황에서 만능키처럼 다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대체로 그 전제를 두고 얘기하면 나란 사람을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돼서 편할 때가 많기는 하다. 공통의 언어라고나 할까. 그래서였을까, 유형의 결과에 자신의 해석까지 덧붙여 실생활에 적용한 일화를 간간이 들려주는 친구의 말을 듣다 보면 꽤 재미있기는 하다. 물론 말끝마다 나를 회피형이라고 놀리는 친구 덕분에 발끈할 때도 있지만 넉살 좋은 친구라 그럭저럭 지내는 중이다.


말했다시피 우선 나는 회피형이다. 그 친구의 말에 의하면 회피형 중에서도 꽤나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맞는 말이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대인관계의 피로도가 높은 편이다. 특히 가까운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면 해결하려고 하는 것도 맞지만, 부딪히는 것 자체를 싫어해서 피해버릴 때도 많다. 문제를 굳이 문제 삼지 않아 골이 더 깊어지는 경우랄까. 그렇게 참다 참다 터지면 그걸 상대방에게 터뜨리지 않고 혼자 관계를 정리해 버린다. 상대는 영문도 모른 채 어리둥절해 하지만 나는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은 말해줘도 모른다의 논리를 꽤나 신뢰하며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근다.


나는 사실 회피형도 맞지만 불안형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고 친구에게 말했다. 불안형이 갖고 있는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가 상대방을 향한 과도한 기대감인데(불안하니까), 나는 그 모습을 내 속으로 삼키다 보니 회피형으로 보일 때가 많다. 잃는 것에 익숙한 사람은 소중한 무언가를 가지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이것을 영구적으로 가지게 될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해야 덜 고통스럽게 잃을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는 김다은 작가의 말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싫어서 그냥 피해버린 것이다. 기대감이 커질까 봐 가지려고 애쓰지 않고, 애초에 가질 욕심조차 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어떨 때는 관계 자체를 형성하지 않을 때도 있다. 마음을 다 줬다가 정말 소중해졌는데 상대가 떠나버리면 그 상실감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 마음의 문을 꼭 닫아버리는 것이다. 적당히 한 발만 걸쳐놓고 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언제든 도망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실은 회피보다 불안의 척도가 더 높게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나의 말에 처음에는 "뭐? 네가?"라고 다소 놀란 반응을 보이던 친구도 아니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수긍하더니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넸다.


"근데 사실 한쪽 성향(회피)이 세면 나머지(불안)도 있더라고. 본인이 본인의 불안을 감당 못 해서 회피로 도망친 케이스일 수 있어. 그럴 때는 본인의 불안한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 보고 상대방이 받아주는 긍정적 경험을 하면 좀 나아질 텐데."라고 말이다.


위로인 듯 위로 아닌 위로 같은 말(갑자기 어떤 노래가 떠오르네?).

우리는 이 말을 끝으로 대화를 마쳤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나만의 방법을 전하고 싶었는데, 사실 나는 이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했다. 상실에 대한 두려움과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내가 평생 풀어가야 할 숙제가 아닐까. 하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풀어야 할 숙제들이 산재하고 있는 건지. 그냥 좀 단순하게 살고 싶다.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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