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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Feb 06. 2023

저는 불참하겠습니다

코로나로 바뀐 일상

나는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라 '덕분'에 사람을 만나지 않아서 좋다는 사람들 편에서 글을 쓰고 싶다. '인싸'와 '사회성 좋은 사람'에 가려진 내향성의 개인주의자들이 드디어 눈치 보지 않고 기지개를 켜는 시대를 마주하여 반갑다. '사람 디톡스'라고 하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이들은 요란하게 목소리를 내지 않기 때문에 더욱 대변인이고 싶다. 세상은 코로나19로 단절된 사회적 관계에 집중하지만, 그 이면의 이야기는 잘 귀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무인도를 만드는 사람> 유려한(작가, 문화예술기획자)



작년에 읽었던 <혼자여도, 혼자여서 괜찮아>라는 책 속 유려한 작가의 글이다. 이 책은 무인도라는 공통 주제를 바탕으로 혼자여도 괜찮고, 혼자여서 괜찮은 여러 작가들(시인,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극작가, 기자 등)이 자신만의 무인도를 상상하며 써 내려간 책이다. 나는 여러 작가의 글 중 유려한 작가의 <스스로 무인도를 만드는 사람>이 가장 좋았는데, '스스로 만든 자발적 무인도가 낙원'이라는 표현도, 고독을 오롯이 즐기는 그의 고유함도 좋았다. 내향인의 심리를 섬세하게 잘 묘사하고 있어 읽는 내내 웃음 짓게 되는 부분도 많았고 말이다.


코로나라는 세계적인 전염병이 시작된 지도 벌써 3년이 넘었다(쓰고도 놀랐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지독한 전염병과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생소한, 하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말이 생겼다.

'사회적 거리두기'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비단 싫지 만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바로 나 같은 사람 말이다. 위에서 소개했던 유려한 작가는 코로나19의 순기능(?) 중 하나는 불필요한 만남이 차단됐다고 말한다. 만나지 않고 싶지만 만나야만 하는 불행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문제를 가져오는지 생각하면, 코로나19는 라이프스타일을 전환하여 일시적이나마 숨통을 터주었다고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다소 거친 표현으로 닿을 수 있는 이 말이 나는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심지어 묵은 체증이 쭉 내려가며 무언가에서 해방되는 느낌마저 든다.


친밀한 관계일수록, "사실 나 너랑 만나는 건 좋은데, 같이 있으면 좀 피곤해."라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라는 책 제목처럼 말이다. 나의 이 말에 누군가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고 뱉어내곤 했었다.

"네가 진짜 제대로 한번 외로워봐야 정신을 차리지."라는 악담도 자매품으로 한 번 더 얹혀주면서 말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거리두기의 순기능은 모든 것과 단절된 삶이 아닌, 누군가와 만나고 싶지 않을 때 만나지 않을 자유를 의미한다. 친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을 거절할 자유, 싫어하는 누군가에게 쓰는 시간은 1분 1초도 아깝다고 단호하게 거절할 자유, 나는 사람이 많고 시끄러운 모임은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 회식은 너나 좋지 나는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 등 사회적 관계에서 통념처럼 쏟아지는 무수히 많은 일반화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코로나는 상대의 호의(를 빙자한 일방적인 만남)을 자연스럽게 거절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내향적이고 개인주의자인 나는 사회적 에너지가 많지 않다. 평범한 사람에게 100의 에너지가 있다면, 나에게는 50정도이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그렇다고 혼자 있는 시간만이 오롯이 행복하다는 뜻은 아니다. 나 또한 소중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즐겁다. 그때의 내적인 충만함은 단순히 좋았다고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온몸에 은은하게 퍼져가는 그 온기는 한 번의 만남만으로도 꽤 오래 간직된다. 아마 내가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여러 가지 행복 중 꽤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하지만 자주는 여전히 버겁다).


그래서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이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나의 대답 1순위는 관계의 자유다. 불편한 관계와 만남을 거절할 자유가 주어졌다는 것, 그 작은 틈이 일상에서 터부시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허용된다는 점이다. 깜빡이도 켜지 않고 들어오는 무례한 상대들에게 급제동을 걸 수 있는 그럴듯한 명목이 생긴 것이다.




작년 12월 한 달 동안 한국비폭력대화교육원에서 진행하는 <비폭력대화>수업을 온라인으로 수강했다. 비대면으로 모인 수강생들과 비폭력적으로(?) 대화를 나누며 각자만의 공간에서 Zoom으로 수업을 듣는데 정말 편안했다. 심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안정감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공간이 주는 편안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작별인사는 쿨하고 빠르게 '회의 나가기'버튼을 누른다. 참으로 군더더기 없는, 나에게 꼭 맞는 비대면 교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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