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작은 그날 아침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평소라면 5시부터 울렸을 핸드폰의 알람은 잠잠했지만 나는 습관적으로 눈을 떴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멍하니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 무기력하게 다시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1월 한 달 동안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들이 일어난 것일까.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이 이토록 한순간에 벌어져도 되는 일일까. 갑작스러운 사직, 일방적인 해고와 가까웠던 회사의 방침과 결정.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힘 없이 몸을 일으킨 나는 방문을 열고 부엌으로 나갔다. 느지막이 일어난 부스스한 딸의 모습. 엄마는 고개를 돌려 나에게 무심한 눈길을 한 번 쓰윽 주고는 다시 부엌 일에 열중했다. 엄마에게 인사를 건넬 여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의 에너지는 어제로 모두 소진된 것 같았다. 식욕도, 입맛도 없었지만 뭐라도 먹어야 할 것만 같아 아무 말 없이 냉장고 문을 열고 묵묵히 밥상을 차렸다. 반찬 뚜껑을 열고 꾸역꾸역 밥을 넘기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던 엄마는 한숨을 푹 쉬더니 이내 첫 마디를 건넸다.
"너는 나한테 아침 인사도 안 하니?"
나는 어떤 표정으로, 어떻게 아침 인사를 건네야 할지 머뭇거렸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소처럼 웃으면서 "좋은 아침!"이라고 밝게 말한다면 이 상황이 조금은 나아질까. 하지만 그러기엔 어제의 상처가 아직 너무 생생했고 오고 갔던 날 선 말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았다. 그런 나의 모습이 답답했는지 엄마는 모진 말로 채 아물지도 않은 나의 상처에 한 번 더 생채기를 냈다.
"네가 그러고 돌아다니니까 회사에서 그딴 취급이나 당하는 거야."
숟가락을 들고 있던 나의 오른손이 파르르 떨려 들고 있던 숟가락을 식탁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눈물이 한 번에 쏟아져 나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피해자는 분명 나인데, 가해자의 행동마저 합리화하게 되는 이 말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다 큰 딸의 눈물을 본 엄마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내두르며 부엌을 나갔다.
'이건 반칙이지. 아무리 내가 한심해도 그렇지 가장 약해졌을 때 가장 아픈 말로 때리는 게 어딨어. 밖에서 나쁜 상대한테 당하고 온 건데, 작정하고 부러 나를 괴롭히는 상대를 계속 참다가 결국 뿌리치고 나온 건데. 엄마는 내 편이어야지. 한 번도 내 편이었던 적 없지만 적어도 이번만큼은 내 편이 되어줘야지.'
그날이 시작이었다. 내가 엄마의 손을 놓았던 것은. 그날을 기점으로 나는 독립을 결심하고 차근차근 준비하기 시작했다. 지금 엄마와 나의 온도는 어디쯤 있을까. 만약 그날 아침의 대화가 조금 더 따뜻했더라면 우린 계속 함께 살 수 있었을까. 다시 돌아간다면 지금의 모습과 많이 달랐을까. 나는 도망치듯 집을 나왔고 각자의 공간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몇 년이 지났지만 엄마는 그 일에 대해 나에게 여러 번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나의 온도계는 고장이 난 건지 다시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떤 말은 뱉어내면 그만일 때도 있다. 주워 담을 수도, 돌이킬 수도 없을 말 말이다. 어쩌면 그 말은 실수가 아니라 진심일 수도 있으니까. 진심인데 실수로 나와버렸네, 실수는 맞는데 실은 전부다 진심이야. 결국은 다 그런 거다. 바꿀 수 없는 말이라는 것도 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