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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Jan 13. 2023

우리 조금 더 품위 있게 이야기해 볼까

취중진담을 믿으시나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취중진담이라는 말,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신의 진실된 마음을 말한다는 뜻으로, 자신이 평소에 안 했던 말들을 술에 취하면, 모두 토로하며, 하소연한다"는 뜻이다.

취중진담. 과연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참 어려운 부분이다. 때에 따라서는 믿기도 하고, 믿지 않기도 하고 애매한 지점에 놓여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흔히 취해서 하는 말이 본심이라고들 한다. 그 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이다. 근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그 본심이라는 것을 다 말하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특히 연인과 부부, 가족 관계에 있어서 꼭 서로의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거짓말을 하라는 뜻이 아니라 이를테면 내가 화장실에 가서 생리현상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가까운 사람들이라면 꼭 다 알아야 할까? 나의 모든 것을? 굳이?

본심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이 술의 힘을 빌렸든 빌리지 않았든 입 밖으로 나온 이상 그것은 더 이상 술이라는 핑계로 얼버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은 그동안 계속하고 싶었던 말과 행동이었음에도 용기가 부족해서 하지 못하고 억눌러왔던 것을 술이라는 핑계로 풀어내다니 너무 비겁한 것 아닌가.


그래서 나는 취중진담은 믿는 편이다. 진담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꼭 그 진담을 내가 다 알아야 하고, 봐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하나의 합리화가 될 수도, 비겁한 변명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에게는 초자아와 이드가 끊임없이 갈등함에도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들에 있어서는 개개인의 차이에 따라 초자아가 이를 제지한다. 하지만 그 초자아 자체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충동 조절 장애'라 판단하고,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렇게 자신하듯 말하는 나도 술 먹고 이불킥한 사연을 풀어보라면 누구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에피소드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긴 하다. 다만 최악은 피한다. 끝까지 가지는 않는다고 해야 하나. 필름이 끊기면 그 순간은 내가 통제할 수 없겠지만, 그 일이 벌어지고 난 뒤에 적어도 책임은 지려하는 편이다. 말실수가 있었다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행동이 부주의했다면 그것 또한 사과한다는 것이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그 끝을 가지 않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나는 사실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나에게 혼술은 불안과 걱정을 줄여주는 용도로 간절히 필요할 때만 찾는 약 같은 것이지 그 외에는 술을 찾지 않는 편이다. 그리고 이렇게 찾는 혼술은 대체로 혼자 긴장을 풀기 위해 마시는 것이기 때문에 안주도 필요 없고, 소주 한 병이면 족하다. 반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분위기에 마시는 술은 그 분위기가 좋아 마시는 것이지 술이 좋아 마시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런 술자리도 연례행사처럼 자주 있지도 않고 말이다.


오래전 유튜브 클립을 통해 유퀴즈에 출연한 김영하 작가의 영상을 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술에만 너무 관대한 우리나라의 술 문화를 꼬집는 그의 말에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다른 약물은 그걸 하는 사람이 이상하고 끊은 사람을 보통 건강한 사람이라 하는데, 유독 술만큼은 끊은 사람이 이상하게 보이고 그걸 하는 사람들이 정상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마치 술이 융합의 척도인 것처럼, 술을 못 하는 직원에게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회생활 어떡하려 그러나아?"라는 조언들이 난무한다. 못 마신다 안 마신다 그러면 굳이 또 그 이유를 변명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술이 뭐 좋은 거라고 못 마시고, 안 마시는 이유를 구구절절 대야 하냐는 말이다. 이것은 마치 비혼을 택한 싱글과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한 부부에게 쏟아지는 무례한 질문과도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그 영상을 보면서 술에만 유독 관대한 우리나라 문화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갖은 사연을 쏟아내야만 탈출할 수 있는 음주의 굴레라는 표현도 참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사를 깊이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 또한 술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누군가가 가족들 중에 있었고 그 누군가 덕분에 곁에서 힘들어하는 다른 누군가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나는 이다음에 커서 절대로 술 좋아하는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강한 결심을 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 전제는 변함이 없다.


술을 무조건적으로 먹지 말자, 피해야 한다가 아니라 술을 좋아하는 만큼 건강한 음주문화가 자리 잡혔으면 한다는 뜻이다. 작년 5월, 배우 김새론이 음주 운전 때문에 촬영 예정이던 두 편의 드라마에서 하차했다는 기사를 접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녀는 청담동에서 운전 도중 가드레일과 가로수, 변압기 등을 여러 차례 들이받는 사고를 내고도, 혈중알코올농도 측정을 거부하고 귀가했으며 다음 날이 되어서야 음주 운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커리어가 단지 술이라는 것 하나로 그녀의 발목을 잡아버린 것이다. 그녀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술에 대한 논쟁을 끝도 없이 해왔다. 술로 인해 벌어진 사건사고와 그에 대한 변명과 속죄, 반성 등을 말이다. 그러니 이제는 조금 더 품위 있는 음주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으면 하는 바람이다. 술에 취해야만 할 수 있다는 그 말을 맨정신에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용기를 길러보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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