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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Apr 04. 2023

무엇이든 해도 됩니다

아 책 훼손만 빼고요

서울 곳곳의 낯선 동네를 방문할 때마다 그 근처의 독립서점을 방문하는 취미는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추천할 만한 곳을 찾지 못해 글을 계속 올릴 수가 없었다. 적어도 이 공간에 남기는 글만큼은 내가 가보고 좋았던 서점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지난 주말 잠실에 꽃구경(이라 쓰고 사람 구경이라 읽는)을 갔다가 정말 오랜만에 마음에 쏙 드는 독립서점을 만났다. 이곳의 이름은 <무엇보다 책방>이다. 꽤 오래전 네이버 MY 플레이스에 찜해뒀던 곳인데, 잠실에 갈 일이 없어 방문을 미뤄두고 있던 찰나 이번에 드디어 기회가 닿은 것이다. 네이버에 검색해 봐도 이렇다 할 소개 글이 없어 괜찮을까 싶었는데 방문하고 알았다. 나의 괜한 기우였음을 말이다.


3층에 위치해 있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코끝에 닿은 디퓨저 향부터 내 취향을 간파당했다(무슨 향인지 여쭤본다는 걸 깜박했다). 독립서점치고는 공간도 꽤 컸는데, 책을 읽을 수 있는 테이블도 따로 마련돼 있었고, 주인장님의 큐레이션도 하나하나 정성스러웠다. 어떤 독립서점은 사진 찍기 좋은 각도로만 예쁘게 꾸며놓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을 때도 있는데(사진 맛집 같달까), 적어도 이곳은 그렇지 않아 보였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면 오히려 그 반대. 검색할 때만 해도 큰 기대가 없었는데, "오히려 좋아"를 남발하고 싶을 만큼 좋았다.


그리고 놀라웠던 사실 중 하나는 작년 여름휴가 때 경주에 놀러 갔다가 그 동네 독립서점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했지만, 버스 시간에 쫓겨 결국 사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왔던 적이 있었다. 근데 그 책을 <무엇보다 책방>에서 발견한 것이다! 어찌나 반갑던지, 당장 구매해 버렸다. 일반 단행본과 달리 독립서적은 서점 주인의 취향에 따라 판매하는 책 종류가 다르다 보니 이런 기회는 꽤 드물다.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것 같은 기쁨에 <무엇보다 책방>에 대한 내적 친밀감마저 생겨버렸다. 그 외에도 서점 주인장님의 취향이 왠지 나와 비슷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건, 독립서적임에도 내가 이미 알고 있는(괜찮게 봐두었던) 책들이 그곳에도 여러 권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구입한 책 외에도 주인장님의 예쁜 손글씨가 담겨있는 소개 글들을 꼼꼼하게 읽었다. 주인장님이 남겨주신 여러 문장 중 가장 다정하게 닿았던 문장은 "책을 상하게 하는 것 말고는 모든 걸 편하게 즐기시면 됩니다."였다. 간식도 OK, 질문도 OK!

<독립출판물>이 무엇이고, 이 출판물을 구매하는 것이 작가들에게 큰 힘이 된다는 문장에서도 주인장님의 진심이 묻어나 더욱더 이 공간을 소개하고 싶어졌다.


계산대 앞에서 책을 구매하자 4월의 엽서 달력을 함께 주시며 "포장해 드릴까요?"를 조곤조곤 물어보시는 주인장님의 외모는 부드러운 목소리와는 달리 배우 마동석님이 떠올라 살짝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따뜻한 미소와 다정한 목소리로 그곳을 떠나는 나를 배웅해 주셨다. 사람은 역시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걸 다시 한번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여담이지만, 나는 <무엇보다 책방>을 자꾸 <무엇이든 책방>으로 소개할뻔했다. 책을 상하게 하는 것 말고는 모든 걸 편하게 즐겨도 된다는 주인장님의 말씀에 흔들렸나 보다.

"무엇이든 해도 됩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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