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독서는 호흡이다. 나는 이미 읽고 쓰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중략)
나는 길고 복잡한 언어가 지배하는 세상이 두렵지 않다. 나는 그 세상에서 육신을 벗고 언어의 일부가 되고 싶다. 같은 꿈을 꾸는 나의 동족들, 읽고 쓰는 종족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예 지면을 딛고 선 볼품사나운 다리를 잘라내고 날아 오르고 싶다. 그럴 수 없어 서글프다.
<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장강명 작가다. 최근에 '가장'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이제 나는 그의 팬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그의 글을 읽는 것이 즐겁다. 그가 쓴 책도 좋아하지만, 그의 삶과 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닮고 싶은 부분이 많다. 이를테면 책에 굉장히 진심이라는 것. <책, 이게 뭐라고>는 책의 제목처럼 '책, 이 까짓 게 뭐라고?'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 책을 너무나 사랑하는 장강명 작가의 진지함이 가득 묻어난, 그가 꿈꾸는 책 읽는 사회의 모습이 담겨있다.
현대 사회는 진지한 인간들을 싫어한다. 광고와 열광에 기대야 하는 이들은 거대한 질문, 예를 들어 ‘왜’와 같은 물음에 “그냥요”라든가 “재미있으니까!”라고 답하는 부류를 선호한다. 의미가 아니라 느낌을 추구하는. 그런 이들은 같은 질문에 긴 답을 품은 사람들을 떨떠름히 여기고, 진지충이라고 놀린다. 자신들이 결핍하고 있는 것, 진지함을 통해서만 이를 수 있는 어떤 가치들을 우리들이 가졌다고 의심하고 질시하는 걸까. _49p
그는 제대로 된 독서 생태계를 꿈꾼다. 킬링타임용으로 끝나는 파편적인 독서를 지양하고, 본질을 깊이 파고드는 독서를 추구한다. 힐링이 대세라서 서점 평대에 온통 힐링, 힐링으로 점철된 에세이 붐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서 나를 본다. 너, 나 할 것 없이 글의 깊이보다는 누가 더 유명하고, 누가 더 많이 팔았는지를 경쟁하며 인기몰이 하듯 책을 찍어내는 출판업계의 장사꾼 같은 태도에도 할 말이 많다. 자연스럽게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눈길을 돌리고 구석에 자리한 책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제일 위 칸부터 아래 칸으로 찬찬히 시선을 내리며, 내가 모르는, 익숙하지 않은 작가들의 책 제목과 책 내용을 촘촘히 살핀다.
그리고 작년 가을, 그가 그토록 지향했던 독서 공동체가 생겼다. 바로 '그믐'이라는 온라인 독서 플랫폼이다. '그믐'의 운영자는 다름 아닌 그의 아내다. 그의 아내는 외국계 기업의 재무팀에서 높은 연봉을 받으며 15년을 일하다 번아웃이 왔고, 오랫동안 꿈꿔왔던 독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과감하게 사표를 던졌다. 이 모습은 마치 장강명 작가가 오래전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돌아선 과정과 꽤나 비슷하다. 그래서 부부인가.
그믐은 누구나 인터넷상에서 자신이 원하는 책으로 북클럽을 개설해 댓글로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독서 경험 공유 플랫폼이다. 그곳에서 추구하는 것은 심플하다. 책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제대로 읽자는 것. 그리고 나누자는 것.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한 이 공동체는 작년 가을에 오픈해 올해 1월을 기준으로, 회원 수가 약 4,000명가량에 육박했다고 한다.
각종 동영상 플랫폼, 재미있고 화려한 게임 등 볼 것 많고 할 것 많은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런 시대에도 꿋꿋하게 책을 읽는 사람들이 여기 있습니다. 새벽녘이 되어야만 겨우 볼 수 있는 아주 귀한 달, 그믐처럼요.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책을 읽고 ‘좋아요’ 수에 흔들리지 않는, 맥락 있고 진지한 대화를 이어보고자 만든 공간이 바로 지식공동체 그믐입니다. 어둠에 저항하는 마지막 그믐달처럼 우리는 계속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생각을 나눕니다.
이곳은 장소의 제약이 없고, 외모, 직업, 성별, 나이 그 어떤 것도 개의치 않으며, 모든 모임이 다 무료다. 언제든 참여할 수 있고, 가입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올린 글을 읽을 수 있다. 이곳에서는 이모티콘도, 좋아요도 쓸 수가 없고, 오직 자신의 언어로만 표현하게 되어있다. 단순히 조회수를 올리기 위한 낚시나 말초적인 자극 경쟁에 반기를 든다. 각자가 생각한 바를 조금 더딜지라도 기록으로 촘촘히 남긴다. 모임이 한번 열리면 29일 동안만 열린다. 기한 없는 모임은 참석자들을 매우 친밀하게 만들지만 종종 모임의 주제와 이유를 잊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책이라는 본질을 갖고 대화하자는 깊은 취지인 것이다. 장강명 작가의 아내 김혜정 대표는 '그믐'이 잘 될지 어떨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자기 인생의 과업이라고 말하며 눈을 반짝인다고 한다. 그는 그런 아내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함께 응원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한 선택이었다고 말이다.
나는 책에도 글에도 진지한 이 공동체를 열렬히 응원하기 시작했다. 몇 주 동안 이 공동체를 가만히 관찰했고, 나 또한 이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렇게 가입했고 조금씩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물론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오프라인으로 참가하는 일은 (아직은)없을 테지만, 어쩌면 그게 나에게는 더 맞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본질이 흐려지지 않는 이 공동체가 오랫동안 이 사회에서 빛을 발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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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는 내가 속해있는 독서모임에서 장강명 작가의 책을 컬렉션으로 한 모임이 열렸다. 일명 "내가 읽은 장강명"이다. 모임 공지가 올라오자마자 참석 버튼을 누르고, 그동안 읽었던 책 외에 읽지 않은 그의 책들을 섭렵하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많았다.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의 작품은 장편뿐만 아니라 단편도 정말 많았다. 심지어 이번 모임을 기획하고 진행하셨던 모임원분도 책을 다 구하지 못했다는 후문을 전해주셨다. 하지만 구할 수 있는 책들은 모조리 다 챙겨오신 정성에 내가 다 감동받고 말았다(큰 가방에 무려 10권이 넘는 책을 바리바리 담아오셨다). 우리는 장장 3시간 동안 장강명 작가의 여러 작품을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오고 가는 대화 속 흥미로운 주제도 많았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나처럼 극호에 가까운 사람도 있었고, 불호에 가까운 사람도 있었다. 불호에 가까운 분은 다름 아닌 우리 모임장님이셨는데, 장강명 작가와 닮은 점이 있어 더 싫어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인정하세요). 모임에 가기 전 상처받을 각오를 충분히 하고 갔지만 말짱 도루묵이었다. 여전히 상처는 받았지만, 뭐 그래도 괜찮다. 내가 좋아하는 걸 남이 꼭 좋아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아 근데 큰일이다. 장강명 작가가 최애 작가가 된 뒤로 그와 관련된 글의 지분이 점점 늘어가는 게 확연히 느껴진다. 오늘까지만 하고 당분간은 자중해야겠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조지 오웰의 책을 읽고 있지...
* 조지 오웰은 장강명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