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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Jul 26. 2023

당신의 인생책은 무엇입니까

장강명 작가의 <표백>을 다시 읽고

긴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쳤다. 6월부터 약 한 달 반 동안 진행됐던 모임이다. 이 모임을 열었던 리더님은 우리 모두 각자의 이유로 독서를 하지만, 자신에게 독서란 머리를 깨는 행위라고 말했다.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프란츠 카프카>


그는 그냥 읽는 게 아니라 "제대로 읽는" 모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깊게 탐독하고, 조금 고되더라도 제대로 얻어 가고 싶으신 분"들을 위한 인문학 스터디라는 소개 글에 혹해서(?) 고민을 거듭하다 겨우 막차를 타듯 신청했다. 중간에 이탈하고 싶어지면 어쩌나 걱정했던 시간들이 무색할 정도로 다양한 관점으로 생각하고 배울 수 있었던 뜻깊은 모임이었다.


마지막 모임에서 나누었던 책은 지정도서가 아닌, "나의 인생책"이었고, 나의 인생책을 고심하다 내린 결론은 장강명 작가의 <표백>이었다. 나는 무엇이든 "가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굉장한 부담감이 생기곤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나의 인생책"을 고른다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흔히들 인생책이라 함은 뭔가 있어 보여야 할 것 같고, 출간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어야 할 것만 같고(이를테면 고전 같은?), 국내보다는 왠지 해외여야 할 것 같고, 엄청난 메시지를 주어야만 할 것 같은 이미지가 강했다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누가 들어도 "오, 그 정도면 인생책이라고 할만하지"라고 인정할 법한 책을 골라야만 할 것 같은 나름의 압박감이라고나 할까. 남들이 보기에 그럴싸해 보이는 책? 근데 나에게도 의미가 있고, '이게 나의 독서력이다'라고 자랑할 수 있을 법한, 뭐 그런 느낌?


근데 그냥 그런 거 다 떠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책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책을 골랐다. 그게 장강명 작가의 <표백>이었다. 처음 읽었을 당시에 꽤나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이번에 다시 읽어도 여전히 충격적이다. 다 읽고 난 뒤에 느낀 감상도 사실 비슷하긴 했는데,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자살하라는 거야?' 라는 다소 회의적인 입장이기도 했다(아 근데 저는 장강명 작가님 좋아해요. 시비 거는 거 아님). 어쨌든 그렇게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나의 소중한 인생책을 살짝만 소개해 보려 한다.



그런데 이제 나는 세상이 아주 흰색이라고 생각해. 너무너무 완벽해서 내가 더 보탤 것이 없는 흰색. 어떤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이미 그보다 더 위대한 사상이 전에 나온 적이 있고,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그에 대한 답이 이미 있는. 그런 끝없이 흰 그림이야. 그런 세상에서 큰 틀의 획기적인 진보는 더 이상 없어. 그러니 우리도 세상의 획기적인 발전에 보탤 수 있는 게 없지. 누군가 밑그림을 그린 설계도를 따라 개선될 일은 많겠지만 그런 건 행동 대장들이 할 일이지. 참 완벽하고 시시한 세상이지 않니?

나는 그런 세상을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라고 불러.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야심 있는 젊은이들은 위대한 좌절에 휩싸이게 되지.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 자신이 품고 있던 질문들을 재빨리 정답으로 대체하는 거야. 누가 빨리 책에서 정답을 읽어서 체화하느냐의 싸움이지. 나는 그 과정을 '표백'이라고 불러.



그렇게 시작된다. 이 모든 이야기가.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 중 '세연'이라는 캐릭터는 이 말을 끝으로 위대한 자살 계획을 세운다. 심지어 자신에서 끝나지 않고 자신의 뒤를 이을 추종자들을 위한 메시지도 남겨가면서 말이다. 그들이 자신의 뒤를 이어 이 원대한 계획을 완성할 수 있도록.



"그래서 자살하려는 거야? 아무것도 할 게 없어서?"

"아니! 난 뭔가 위대한 일을 할 거야. 생각해놓은 일도 있고."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극심한 가난과 고통 속에서 7급 공무원이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데 그 과정이 참 별로다. 이 사회에 굉장히 비관적이면서도 이렇다 말하지도 못하고, 누군가에게 기생하듯 살아가는 그의 이중적인 모습이 말이다. 그는 결국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세연의 뜻에 동조하며 잇따라 자살하는 친구들의 주행을 막으려 하지만 결국 다 실패하고 만다.



새로운 담론을 제기할 수조차 없는 환경은 우리 세대의 가치관에도 예상치 못한 영향을 미친다. 이른바 '표백세대'의 등장이다.
이 세대에게는 부모나 교사를 통해 전달하는 지배 사상에 의문을 갖거나 다른 생각에 빠지는 것은 낭비일 뿐이다. 그런 시도는 기껏 잘해봤자 기존 지배 사상이 얼마나 심오하고 빈틈없는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효과만 낳는다.
이들에게 지배 사상은 큰 틀에서 항상 옳으며, 그 사상을 받아들이는 데 개인마다 과정과 깊이가 다를 수는 있으나 결론은 언제나 같다. 이들은 지배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



이 책을 읽으며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표백세대'라는 단어가 나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곤 했다. 아마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이미 완성된 사회에 살아가고 있기에 새로운 것을 찾지 못하고, 체제에 순응하며 부품이 되어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청년들의 무력감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닐 테지. 일부는 그 안에서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자신만의 색을 뿜어내고 있지만 말이다. 점점 더 세상은 다양성이 존중받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는 여전히 나와 다른 이들을 쉽게 구분 짓고 손가락질하며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거나 판단당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세연은 그 모든 체제를 비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녀가 말하는 원대한 계획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단순히 자살해서는 안 되고, 모두가 가장 부러워하는 위치에 올랐을 때 자살해야만 비로소 자신의 죽음이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가 있다는 그녀의 주장에 나는 "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거창한 죽음을 끝으로 맞이하게 될 것이 대체 무엇이기에.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당시에는 초판으로, 두 번째로 읽을 때는 개정판으로 읽었다. 초판 1쇄에 담긴 작가의 말과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나 개정판 출간을 맞은 장강명 작가의 말이 주는 메시지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저는 '위대함'은 실제로는 별 중요한 의미가 없는, 고리타분한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표백>을 쓰고 난 뒤 저는, '위대한 일'에 집착하는 세연과 달리, 남들이 무가치하다고 무시하는 일에 매달려 끝내 의미를 찾아내고야 마는 주인공에 대해 3년 안에 쓰려 했습니다. 그렇게 쓴 소설이 <열광금지, 에바로드>입니다. 이 책의 화자는 <표백>의 등장인물 장휘영입니다. 자살 선언을 거부한 장휘영이 세연과 정반대되는 주인공을 만나게 되는 거지요. <열광금지, 에바로드>는 장휘영이 "꼭 랠리를 완주하세요. 어떤 숨은 선물이 있을지 모르니까요"라는 말을 들으며 끝납니다. 이는 <표백>에 대한 저의 답이기도 합니다.



그의 책을 두 번을 읽고 난 뒤 나의 결론은 이렇다.

사회를 전복시키는 것보다 더 위대한 건 스스로를 지켜내는 것이고, 그런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삶을 더욱 사랑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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