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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Jul 31. 2023

매일 실패합니다

그래도 계속할 겁니다

글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좋아한다. 이를테면 공모전 같은 것?

나는 오며 가며 버스 전광판이나 각종 게시판에 붙은 공모전 등에 야금야금 도전해 보고 있다. 각을 딱 잡고 '도전!'이 아니라 그냥 오다가다 보게 된 걸 메모장에 저장해 뒀다가 날짜가 다가오면 한 번 지원해 보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교보손글씨대회> 같은 경우는 매년 비슷한 시기에 열리고 있어 계속 떨어지면서도 줄기차게 지원하는 중이다. 손글씨에 대한 칭찬은 주변에서 종종 듣는 편인데, 올해는 유독 이 대회 정보를 나에게 직접 링크로 보내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기 머쓱했지만 몇몇 분께는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사실 제가 이 대회를 매년 지원하는데, 매년 탈락하고 있답니다? 하하하하하하."


(하지만 뒷부분에 약간의 반전이 있다)


그래서 올해도 이것저것 지원한 공모전들이 많다. 작게는 계절별로 열리는 '서울꿈새김판 문안공모전'과 '참신한글판 문안 공모전'이 있고, 그 외에도 '대한민국 독서대전', '버스 아이디어 공모전', '창작시 공모전', '대한민국 소설독서대전(독서대전과 소설독서대전은 다른 공모전이다)', '청소년 생명존중 손글씨 공모전' 등 다양한 공모전에 도전했다. 결과는 모두 탈락!

그래도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는 편이라 준비하는 과정은 대체로 신이 난다. 이번에는 어떻게 써 볼까, 어떻게 지원해 볼까, 혼자 머릿속으로 이것저것 구상하다 보면 나도 몰랐던 나만의 창조성이 샘솟는 느낌이랄까. 결과는 대체로 쓰지만 개중에는 운 좋게 얻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올해 사내 윤리 슬로건 공모전에서 3등을 한 것처럼 말이다.


아직 올해가 절반도 다 지나지 않았고 하반기에 새롭게 올라올 공모전들도 많다. 지난주에는 부산에서 주최하는 '협성독서왕 독후감 공모전'에 지원했고, 바로 어제는 경주시에서 주최하는 '전국 독후감 공모전'에 지원했다. 연거푸 탈락의 고배를 마실 테지만 뭐 어때. 떨어진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니까. 그래서 너무 잘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적당히 잘 하려고 노력하고 적당히 기대하다 보면 가끔은 해 뜰 날이 아주 가끔이긴 해도 오긴 오니까. 약간의 반전이라면 앞서 잠깐 언급했던 <교보손글씨대회>에서 올해 처음으로 입선을 했다는 것이다. 특히나 올해는 지원자만 약 1만 4,700여 명으로 역대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는데, 그중에서 300명 안에 들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본선이 남아있다. 교보문고에서 보낸 본선 응모 용지를 지난주에 수령했고, 오늘 점심시간에 우체국에 들러 작품을 보냈다. 매년 떨어져서 기대도 안 했는데 뜻밖의 결과에 얼마나 행복했던지. 입선을 했을 때 가장 먼저 그 소식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고, 함께 기뻐해줘서 더 행복했다. 사실 이 모든 게 그 사람 덕분인데 말이다.


사상사 연구자이자 칼럼니스트인 김영민 교수는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목적이 없어도 되는 삶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산책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산책에 목적이 없다는 데 있다. 나는 오랫동안 목적 없는 삶을 원해왔다. 왜냐하면 나는 목적보다는 삶을 원하므로. 목적을 위해 삶을 희생하기 싫으므로. 목적은 결국 삶을 배신하기 마련이므로.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해보자. 대개 기대만큼 기쁘지 않다. 허무가 엄습한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제 뭐 하지?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고 해보자. 허무가 엄습한다. 그것 봐, 해내지 못했잖아. 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았지?



결국 중요한 건 과정이 아닐까. 결과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과정 그 자체를 즐기는 것 말이다. 그는 목적을 가지고 걷는 것은 산책이 아닌 출장이라고 말한다.



산책하러 나갈 때 누가 뭘 시키는 것을 싫어한다. 산책하는 김에 쓰레기 좀 버려줘. 곡괭이 하나만 사다 줘. 손도끼 하나만 사다 줘. 텍사스 전기톱 하나만 사다 줘. 어차피 나가는 김인데. 나는 이런 요구가 싫다. 물론 그런 물건들을 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런 목적이 부여되면 산책은 더 이상 산책이 아니라 출장이다.



산책은 그저 산책일 뿐이다. 발길이 닿는 대로 걷다가 마음에 드는 골목을 만나면 한번 걸어보고 기웃거리다가 이내 발길을 돌리는 정도의 적당한 관심과 취향 같은 것? 무언가를 계획하고 걷는 것이 아니라 그저 좋아서 걷는 것 말이다. 가끔 얻어걸리듯 좋은 공간을 만나기도 하는데, 이때는 속으로 기쁨의 쾌재를 부르기도 하는 뭐 그런 것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삶에서 계속해서 실패할 것이다. 그 실패가 때로는 가볍고, 때로는 삶을 뒤흔들 만큼 무겁기도 할 테지만 그 시간을 통해 점점 더 맷집이 좋아질 테니까.



내가 준비한 선물이 가장 의미 있어 지는 순간은 선물을 받은 상대가 그 선물을 잘 쓰고 있다는 사실을 느지막이 알게 되었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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