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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Aug 04. 2023

준최선의 글쓰기

대충 하는 것은 아닌데 최선을 다하는 것도 아니고 그 사이에서 묵묵하게 롱런하기. 준최선에서 한 단계만 오르면 최선이기 때문에 정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순간에 조금 더 힘을 쓰면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계단 내려와서 쉬고.

<준최선의 롱런> 문보영



이 책의 저자인 문보영 시인은 멀리 봤을 때, 최선보다 준최선이 가성비가 더 좋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최선은 관성을 깨는 행위이기 때문에 관성이나 습관이 될 수 없지만, 준최선은 관성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것에든 '준'을 붙이면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다고. 이를테면, '준사랑하고 있지', '나는 준시인이야', '준유감이군' 등의 다양한 표현들로 말이다.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는 나의 동력은 의외로 단순할지 모른다. 최선을 다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고, '억지로 하고 있지 않다? 혹은 '억지로 할 필요가 없다?'와 같은 느낌이랄까. 내가 글쓰기로 직업을 삼을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행위 중 하나지 이 자체에 '최고'나 '누구보다 잘 해야 함'같은 수식어가 달리지 않기 때문이다. '해야 한다'라는 의무감 보다는 '선택했다'라는 기분좋은 설렘이 가득한 행위다. 이건 마치 지는 것과 져주는 것의 차이처럼 확연히 다른 것이다. 지는 건 상대를 이길 수 없어 일방적으로 지는 것이라면 져주는 건 내가 충분히 힘이 세고 이길 수도 있지만, 상대를 아끼는 마음에 져주는 것이기 때문에(아 근데 쓰고 보니 이 비유는 좀 다른 것 같지만 뭐 어쨌든).


글을 쓰는 명확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좋아서 하는 것에 어떠한 이유를 덧붙이는 게 큰 의미가 없는 것처럼, 글쓰기가 내게 그렇다. 그냥 어느 순간 무언가를 끄적일 수밖에 없는 내가 있을 뿐이다. 쓰고 싶은 글이 없다는 말이 나에게는 큰 해당사항이 없었던 건 세상에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에 대해 이것저것 하고 싶은 말을 쓰다 보면 주제는 너무나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장강명 작가의 말처럼 말이다. 여담이지만 장강명 작가는 세상에 문제의식을 던지는 작가다. "이게 옳은가? 이대로 괜찮은가?"같은 질문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계속해서 던지는 것이다. 얘기가 잠깐 옆으로 샜는데, 어쨌든 내가 쓰고 있는 글의 대부분은 일상의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종종 주변에서 그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분명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함께 있었는데, 스쳐가는 듯한 상황들에 대해 어쩜 그렇게 긴 글과 생각들이 나올 수 있느냐고 말이다. 그럴 때면 되려 나야말로 궁금하다. '보통 다들 이렇게까지 생각하지 않나?'하고 말이다.


오래전에 들었던 하미나 작가의 글쓰기 강의에서도 비슷한 말을 듣고 메모했던 기억이 난다. 독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는 여러 자료 중에서 나만의 이야기로 솎아낼 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덧붙여 이전의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어떤 게 독창적인지 알게 되고, 더 나아간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하는 원론적인 생각 말이다. 문장이 유려하고 묘사가 적확하며 소재가 신선하고 가독성이 좋은? 근데, 이건 기술적인 부분이 아닐까. 나는 글을 쓸 때마다 이왕이면 정성과 진심이 담기기를 바라는데, 이를테면 깊은 감정선에 섬세한 묘사 같은 것? 그런 소설류를 좋아하기도 하고 말이다. 다들 출판업은 사양산업이고, 책 읽는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말하지만 글쎄, 내가 보기에 읽는 사람들은 여전히 읽는 것 같다. 쓰는 사람도 계속 쓰는 것 같고. 읽지 않고 쓰기만 하는 사람들은 내 기준에서는 조금 별로이긴 하지만, 뭐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어쨌든 읽고 쓴다는 동사를 지속하는 이들은 아직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 자신만의 길을 잘 걸어가고 있다.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라는 슬로건을 가진 그믐의 건강한 독서 생태계처럼 말이다.


한참을 쓰다 보니 오늘의 글은 왠지 중구난방이다. 뭔가를 말하고 싶었던 것 같기는 한데 이렇다 할 맥락 없이 그냥 의식의 흐름 같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냥 나는 쓰는 게 좋고, 이 자체가 내가 숨을 쉬고 있다는 걸 매 순간 증명하는 행위 같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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