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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Aug 07. 2023

무언가를 굳이 애써 하는 사람

저는 그런 사람들이 좋더라고요

조금만 눈을 돌리면 작은 부분에도 또 다른 세상을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요시다 유니 : Alchemy <Playing Cards>



서촌에서 부암동까지 이어지는 고즈넉한 길을 좋아하다 보니 석파정 서울미술관을 종종 찾아가곤 한다. 예술작품에 조예가 깊은 편은 아니라서 작가들의 예술 세계 인지도는 잘 모르지만, 일단 마음이 끌리는 전시가 올라오면 되도록 방문하는 편이다. 이번에 다녀온 전시도 마찬가지였다. 5월부터 9월까지 진행하는 전시인데, "요시다 유니"라는 일본 아트디렉터의 전시였다.



2023년 기획전 <YOSHIDA YUNI : Alchemy>는 전 세계를 무대로 패션브랜드, 잡지, 광고, 아티스트의 비주얼을 디렉팅하는 요시다 유니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다양한 실험을 통해 황금을 만들려 시도했던 고대의 연금술사들처럼 작가는 빛과 어둠, 유형과 무형 사이의 상호 작용을 세밀하게 조작하여 평범한 것을 비범한 것으로 '변환'시키고 원물의 형태를 재조합하여 아름답고 의미있는 작품으로 '변형'합니다.


총 세 개의 파트로 이루어진 이번 전시는 FREEZE DANCE, HIDDEN PICTURES, PLAYING CARDS 라는 각각의 주제를 갖고 있다. 전시 중간중간 그녀의 가치관을 담은 글귀들도 눈에 들어왔는데, 평범한 것을 비범한 것으로 만들고, 원물의 형태를 재조합하여 아름답고 의미 있는 작품으로 재탄생시킨다는 점이 그녀의 독보적인 매력이 아닌가 싶었다.



@ 요시다 유니 (yuni-yoshida.com)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유에서 독창적인 자신만의 유를 다시 창조하는 것이다. 잘 몰랐는데 이번 전시는 요시다 유니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여는 개인전이라고 한다. 연금술이라는 전시의 제목처럼, 평범하게 지나칠 수 있는 여러 사물을 자신만의 세계로 재해석하고 표현하는 섬세한 능력이 출중한 작가였다. 그녀만의 세밀한 묘사와 날카로운 포착력, 감각적이고 세련된 작품들을 한 점 한 점 보고 있자면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번 전시는 총 230여 점에 이르는 작품을 모두 감상할 수 있어 전시 자체만으로는 꽤 길었지만,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쏟는 그녀의 정성과 노력은 그야말로 경이로웠고, 내가 올해 본 전시 중 가장 좋았다고 단언할 수 있을 만큼 그녀만의 세계에 퐁당 빠져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 요시다 유니 (yuni-yoshida.com)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담은 인터뷰 영상을 보면 기본적으로 그녀는 모든 작업을 수작업으로 진행한다고 말한다. 컴퓨터 그래픽을 절대 사용하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작업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작품에는 완성되었을 때 따뜻함이 느껴진다고 한다. 세세한 부분까지 디테일하게 작업할 수 있다는 점도 좋고, 때로는 그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또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기도 한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과정들이 매우 재미있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어찌나 반짝거리던지. 장인 정신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단어가 아닌가 싶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자연물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는데, 그 안에 정성이 너무나 가득하다.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스케치 과정과 각종 소품들까지 전시회 장에 하나하나 담겨있는데, 세상에 이렇게나 섬세하고 정성스러운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다.



@ 요시다 유니 (yuni-yoshida.com)



작가 소개를 보니 나와 10살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일본의 5대 미술대학 중 하나인 여자미술대학(Joshibi University of Art and Design)을 졸업한 후, 대형 광고 회사 오누키 디자인(ONUKI DESIGN)에 입사했다. 이후 일본을 대표하는 디자인 거장 노다 나기(Noda Nagi)의 우주 컨트리(Uchu Country)를 거쳐 2007년에 독립하여 광고와 영상, 앨범, 책 디자인 등 폭넓은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나와있었다. 전시 중간에는 그녀가 함께 작업했던 예술작가들과 뮤지션들의 추천사가 담긴 아카이브룸도 따로 있었다.


그녀의 인터뷰 영상 중에서 아이디어는 언제, 어디서 얻느냐는 질문에 대한 그녀의 답도 좋았는데, 보통은 의식적으로 떠올리려고 하지 않고, 일상적인 것에서 영감을 얻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평범함에서 비범함을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한 작가라 생각했다. 이게 바로 그녀의 유일무이한 재능이겠지. 전시 제목 그대로 그녀만의 연금술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 요시다 유니 (yuni-yoshida.com)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쓰는 시절에, '굳이 애써 하는 일'과 그 의미에 관해 더 생각해 보게 된다.(중략)
노력을 뽐내거나 강조하지 않는다. 독보적이면서도 정겨워서 좋다. 요시다 유니가 만든 세계는 기묘하면서도 익숙하고, 무모하면서도 치밀하다.

<스튜디오 fnt 공동대표 이재민>



유명한 이들의 추천사 속 유독 내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있었는데, 스튜디오 fnt 공동대표(저는 이분을 잘 몰라요)의 글이었다. 그의 추천사에 담긴 여러 문장 중 "굳이 애써 하는 일"이라는 문장이 유독 내 가슴에 콕 박혔다. 그래, 이게 바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남들이 보기에 굳이? 왜? 라고 되물을 정도로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들, 정성을 다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게 자신의 일생에 전부인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좋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여질까, 혹은 어떻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색을 은은하게 비춰내는 사람들. 작품 하나에 담는 그녀의 정성스러운 손길의 영상으로 보고 있자면 눈물이 날 지경이다. 그리고 내 눈에는 그런 사람들이 반짝거린다. 응원하고 싶어 진다. 요시다 유니를 잘 몰랐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그녀를 더 제대로 알고 싶어졌다. 너무나 매력적인 사람,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사람이다. 작년에 에릭 요한슨 이후로 이렇게 말랑말랑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작가들의 세계가 더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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