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출판단지에 꽁꽁 숨어있지요
그곳에 가기 위해 한참을 헤맸다. 길치라 그런가 아무리 지도를 봐도 서점으로 닿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근처만 뱅뱅 돌고 또 돌았다. 이쯤 되니 그냥 날아가는(?) 것이 어떨까 싶은 다소 어처구니없는 생각마저 들었다. 바로 지난 주말에 있었던 일이다.
나의 서점 탐방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그동안 순항 중이라고 말하기는 조금 어려웠다. 내가 괜찮은 서점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물건 하나를 고를 때도 나만의 기준들이 꽤나 촘촘한 편이라, 어떤 면에서는 독특하기도 한 나의 취향에 꼭 맞는 서점이라, 글쎄. 그동안 마음에 맞는 서점들을 만난 게 오히려 운이 좋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동네에 놀러 갈 때마다 그 근처의 동네 서점(혹은 독립서점)을 검색해 보고 방문하는 나의 오랜 취미는 이제 점점 빛이 바래져가나 싶었는데, 지난주 토요일에 드디어 만났다. 정말 오랜만에 내 마음에 쏙 드는 서점을 만난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주 방문하기는 어렵다는 것, 위치가 파주이기 때문이다.
이름도 예쁘다. 사적인서점. 한 사람을 위한 사적인서점이라는 슬로건이 내 마음에 쏙 든다. 서점 위치를 소개하는 문구에 사장님의 경고(?)가 이미 나와있었음에도 가다 보면 다 길이 있을 거라는 나의 안일함이 다리운동을 아주 실컷 하게 만들었다.
사적인서점이 자리한 건물이 새로 난 길 끝에 위치해 있다 보니, 네이버지도/카카오맵이 길을 잘못 안내해 헤매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현재는 티맵만 정확하게 안내되고 있어요)
차든 대중교통이든 ‘사적인서점‘ 말고 ’헤르만공인중개사사무소’를 도착지로 설정해서 오신 다음, 사진 속 안내에 따라 오시면 가장 빠르게 도착할 거예요. ‘사적인서점’으로 검색해서 오시면 빙 돌아서 엉뚱한 곳에 도착한답니다.
(예예, 그 엉뚱한 곳에 도착한 사람, 바로 나야 나. 나야 나)
이 서점은 2016년 10월 홍대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고 한다. 이번에 파주출판단지로 책방을 이전하면서 시즌 4를 맞이했다고 하니 꽤나 긴 역사를 가진 재미있는 서점이다(개인적으로 서사가 있는 걸 좋아하는 내 취향에도 제격).
올 10월이면 사적인서점을 시작한 지 꼬박 7년이 됩니다. 7년 동안 홍대에서 군산으로, 군산에서 잠실로, 잠실에서 망원으로, 망원에서 다시 파주로 다섯 번의 이사를 했습니다. 혼자 운영하는 서점에서 동생 지수와 함께하는 서점으로, 한 사람을 위해 문을 여는 예약제 서점에서 모두에게 활짝 열린 서점으로, 그때그때 상황과 장소에 맞게 서점의 운영방식 또한 여러 번 모습을 바꾸었고요. 이 모든 과정은 좋아하는 일을 나답게 즐겁게 지속 가능하게 이어가기 위한 끊임없는 시도이자 부단한 노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이제 저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게 되었어요. 어떤 방식으로든 나는 계속해서 서점을 할 거라는 걸.
자매가 운영하고 있는 서점인데, 언니(지혜)가 혼자 운영하다 동생(지수)이 합류해서 이제는 (정)자매가 함께 운영하는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내가 좋아하는 유유출판사와 같은 건물에 위치해 있었다(이건 운명인가). 지층으로 되어있어 계단을 내려가면 서점이 있다. 서울은 땅값이 비싸서 그런지 동네 서점의 경우 공간 자체가 협소한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위치가 파주라 그런지 서점 자체가 굉장히 넓었다(제 편견일까요). 탁 트인 공간이 책으로 가득해 문을 열고 서점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마냥 기분이 좋았다. 거기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이 곳곳에 보여 반가움을 넘어 내적 친밀감마저 샘솟는 기분. 좋아하는 작가들의 신간부터 내가 잘 몰랐던 작품들까지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어 이 서점에서 큐레이션 해놓은 책들의 신뢰도가 더 높아졌다. 신기한 건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뿐만 아니라 오며 가며 주워듣고는 읽어봐야겠다 다짐했던 책들도 하나둘 눈에 띈다는 점이었다.
파주출판단지는 내가 특별히 애정하는 동네다. 그래서 그 동네 안에 있는 서점이라는 점만으로도 나에게는 충분한 가산점이 있지만, 그런 걸 다 떠나서라도 이 서점은 정말 괜찮은 곳이었다. 파주에 사는 분이 계시다면, 아니 파주로 놀러 올 일이 있으신 분께라도 꼭 추천해 드리고 싶을 만큼 말이다. 책을 구입하자 사장님은 종이로 직접 포장까지 해주셨다. 종류도 다양했는데, 나는 윤슬이 그려진 사진을 골랐다. 세상에나, 세상에나! 온통 내가 좋아하는 것 투성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나의 최애 작가인 장강명 작가님의 신간 코멘터리북도 덤으로 얻었다. 모든 게 완벽했던 서점 이야기다. 그 공간에서 예상치 못하게 꽤 오랜 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파주출판단지에 오면 늘 들렀던 '지혜의 숲'을 방문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어차피 파주는 내가 자주 놀러 오는 곳이니까 그때 또 가면 되지. 그리고 그때 이곳도 다시 방문할 것이다. 방문해서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책을 사고 책 이야기를 잔뜩 나누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야지.
그곳을 다녀오고 나서야 서점 사진을 한 장도 찍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평소 같았으면 구도를 잡고 몇 번은 찍었을 텐데, 그걸 생각하지도 못할 만큼 이것저것 책을 보느라 바빴다. 이 글에 올려둔 사진은 서점(업체)에서 네이버에 직접 올려둔 사진을 다운 받아왔다. 출처는 네이버-사적인서점이겠지. 근데 이 서점 이름이 꽤 신기하다. 사적인 서점이 아니라, 사적인서점이다(이해하셨죠?). 띄어쓰기가 없다는 뜻이다. 결론은 아무래도 뜻 자체만으로는 사적인 서점이 맞는 것 같다(사장님께 여쭤보려고 했는데 깜빡했다).
이번 글은 한참을 쓰고 보니 서점에 대한 소개라기보다는, 한 서점을 좋아하게 된 나의 장황하고도 구구절절한 서점일기가 아닌가 싶다. 뭐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 글을 읽고 누군가의 마음이 동요되어 그곳을 방문한다면 충분히 괜찮은 서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만큼 좋았고 그만큼 따뜻했다. 나와 결이 맞는 책들이 많았다는 점이 무엇보다 특별하다. 서가를 보다 보면 '어라? 이 책도 있네? 어라? 어라?' 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러니 또 올게요. 사장님.
조만간 저 되게 한가해질(?) 예정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