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문밖을 나서지 않아도 옆집과 윗집, 아랫집에서 들려오는 생활 소음과 목소리도 저의 신경을 건드리곤 합니다. 안 그래도 최근 들어 제법 시끄러운 이웃을 만나는 바람에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처음 이곳에 이사 왔을 때부터 저의 신경을 긁는 것들이 참 많았는데,
놀라운 건 하나가 해결되면 끝일 거라 생각하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우선은 냄새.
혼자 살다 보면 방 안의 냄새가 쾌쾌해질까 싶어 종류별로 디퓨저를 사들이면서 환기를 위해 문을 열었다 닫았다를 하루에도 몇 번을 반복합니다.
다음은 청소.
집안에 먼지 한 톨, 머리카락 한 가닥도 허락하지 않고 매일 쓸고 닦습니다. 눈에 보일 때마다 줍고 다니곤 합니다.
다음은 샤워실 바닥.
물이 잘 내려가지 않아서 인터넷으로 화장실 배수구 뚫는 영상을 얼마나 많이 찾아봤는지 모릅니다. 결국 이 문제는 부모님이 알려주셔서 청소하는 법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싱크대.
이곳도 물이 콸콸 내려가지 않아 호스가 막힌 게 아닐까 며칠을 고민했는지 모릅니다. 회사 탕비실의 싱크대까지 층마다 열어보면서 저의 집 싱크대와의 차이를 분석해 보기도 했고, 모르는 용어는 영상을 찾아보곤 했습니다. 유명하다는 업자도 알아보고 부를까 말까를 한참 고민하다가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덕분에 이 문제도 쉽게 해결했습니다. 원래 호스 자체가 가로로 되어있어서 정상 속도로 물이 내려가는 거라는 아빠의 말을 듣자마자 거짓말처럼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다음은 바퀴벌레.
제가 사는 곳은 우리 층의 제일 끝 집입니다. 며칠에 걸쳐 커다란 바퀴벌레가 문 앞에 계속 있는 것을 보고 죽은 건가... 싶어 지나쳤는데, 있다 없다를 반복하는 것을 보니 혹시 우리 집 현관 밑을 지나 들어와서 집에서 서식하는 게 아닌가 얼마나 불쾌했는지. 덕분에 바퀴벌레가 문틈 사이를 얼마나 잘 지나가는지 인터넷을 무한 검색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다음은 냉장고.
조용하던 냉장고에서 어느 날부터인가 자꾸 윙하는 소음이 심하게 들려왔습니다. 문제는 이 소리가 언제부터 들렸던 건지 정확하지 않다는 거죠. 원래 들렸는데 어느 순간부터 제 귀에 거슬리기 시작한 건지, 아니면 정말 최근부터 들리기 시작한 게 맞는지. 삼성 서비스센터의 각종 사례들을 찾아보고, 다른 집 냉장고 소리 영상도 인터넷으로 찾아보면서 결국 수리 기사님까지 불렀습니다. 원래 냉장고는 적당한 소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는 그 소리가 귀에 거슬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참 신기하죠.
이 모든 것들은 문제의 진정한 해결보다 제 생각의 변화에 있었습니다.
저에게 거슬렸던 부분들이 '실은 정상인 거래,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원래 그런 거래'라고 인식만 해버리면 더 이상 제 신경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결론은 그것들은 원래부터 계속 시끄러웠고, 불편함을 만들어냈었음에도 그것을 인식하기 전까지는 몰랐다가 인식하는 순간부터 저의 고민거리가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원래 그래 왔던 것들인데.
쓰고 보니 제가 참 이상한 사람 같군요.
이 세상은 예민한 사람이 살기에는 아직 많이 자극적인가 봅니다.
어느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안전할 수만 있다면 아무도 없이 혼자 살고 싶습니다.
그곳에서는 이렇게 불쑥불쑥 저를 힘들게 하는 불청객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예민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저를 사랑합니다.
저의 이런 예민함이 제 스스로를 힘들 게 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와 반대로 행복함을 더 누리게 해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를테면 같은 것을 먹고,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만져도 더 오래 간직하고 향유할 수 있다는 게 저의 큰 장점이죠. 저는 감수성이 풍부한 편이고, 타인의 이야기에 쉽게 공감을 잘하는 편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때 남들보다 더 몰입하면서 그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방법도 알고 있습니다.
타인의 마음에 공감을 잘해서 위로와 경청도 잘하는 편입니다.
덕분에 사람들 관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그 기류를 잘 파악하고, 정리하는 편입니다.
작은 것 하나를 시작해도 오랫동안 꾸준하게 이어가는 것을 잘하고, 크게 지겨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자극적인 것들에 끌리기보다는 저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감각들을 어떻게 해야 잘 발휘할 수 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일레인 아론 박사는 <센서티브>라는 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최근 각종 연구에서 밝혀졌듯 '민감함'은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개발해야 할 대상이다. 우리 사회가 높이 평가하는 창의력, 통찰력, 열정 등이 민감함이라는 재능에 기반을 두고 있음에도,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민감한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흔히 사회적으로 민감하거나 예민한 기질은 고쳐야 할 대상인 것처럼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사회적 시선 때문에 예민한 사람들은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숨긴 채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