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랜 친구를 소개합니다

또 왔구나, 너

by 내민해

범불안장애란 불안장애의 종류 중 하나로 '일상생활의 다양한 주제에 관한 과도하고 통제하기 힘든 비합리적 걱정을 주요 특징으로 하는 정신 장애'라고 네이버 지식백과에 명시되어 있다.


어릴 때부터 간헐적으로 우울감을 늘 달고 살았다. 우울증이라 진단하기는 어렵고, 기분부전장애(가벼운 우울 증상이 지속되는 상태)가 있었다.

평소에는 괜찮다가도 주위의 상황이 힘들어지면 어김없이 찾아오곤 했던 증상이었다.

약 3년 전, 큰 이별을 겪고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우울감이 올라왔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신과를 찾았다. 각종 검사지의 문항에 답하면서 내가 정말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은 좌절감을 느끼며 진료실에 들어갔고, 의사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새롭게 깨달은 사실은 내가 일반인들보다 불안감이 과도하게 높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우울증이 문제가 아니라, 불안함을 조절하는 약이 우선이라는 말을 들었다.

약 처방을 권하셨지만 차마 먹지 못했다.

불안증 약은 우울증 약보다 부작용도 심하고, 그 약을 먹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에 덜컥 겁이 났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범불안장애를 안고 있다.

새로운 도전과 시도는 늘 나의 도파민을 자극하는 신나는 일이지만, 그 일을 시작하기 전 1부터 10까지 별의별 걱정과 불안감이 끊임없이 생겨난다.

내 머릿속에서 마인드맵을 그려나가듯 걱정의 꼬리는 계속 뻗어나간다.

임상심리학자인 데이비드 카보넬이 쓴 <나는 왜 걱정이 많을까>라는 책에서 저자는 '불안의 목적은 잠재적 위험이 대형 사고로 발전하기 전에 위험을 지적하고 해결책을 고안하여 더 안전하게 살도록 해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문제는 불안에 따라오는 걱정이 만성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만성 불안증을 치유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단순하다.

내가 걱정스러운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오늘 얼마나 많은 걱정을 하느냐가 아니라 걱정에 대응하는 습관을 어떻게 들이느냐에 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는 놓아주는 것.

내가 또 걱정하고 있구나를 인지하는 것.

이것이 인지행동치료다.

생각에 따라 감정과 행동이 바뀌는 것인데, 왜곡된 사고체계를 바로잡는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힐 때마다 현재의 상황과 생각, 감정 등을 분석하고 부정의 단계를 낮추는 것이다.

불안한 감정은 시도 때도 없이 내 머릿속을 파고든다. 그럴 때면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끊임없이 걱정하며 불안감을 키워가고 이내 우울한 감정까지 올라온다.

하지만 이제는 그 순간의 알아차림에 집중하려 한다.

'아 내가 지금 이 문제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구나'라고.

불안감이 올라왔을 때 이것을 억지로 없애려고 하면 할수록 생각은 그쪽에 머물고 만다. 그 순간 나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명상도 이와 비슷하다. 흔히들 명상을 하면 잡생각이 떠오른다고 한다. 나도 그랬다. 그 잡생각들을 없애는 것이 비로소 경지에 다른 진정한 명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명상은 무의 생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떠오르는 생각들을 인식하는 과정이었다.

바로, 알아차림인 것이다.


아직도 불안을 늘 내 곁에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오늘 회사의 업무, 집안일, 불면증, 안전함에 대한 불안감 등이 끊임없이 내 머릿속을 파고든다. 그럼에도 이제는 그 불안에 잠식되어 살아가지 않으려고 한다. 그 순간을 알아차리고, 내 가슴에 손을 얹고 차분히 쓰다듬으며 내가 나를 위로하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잠재운다.


'불안하구나. 괜찮아. 충분히 불안할 수 있어'라고.


나처럼 불안이 만성이 되어 범불안장애로 이어진 경우 한 번에 치료로 회복되지 않는다. 어쩌면 평생에 걸쳐 나와 함께 할 애증의 관계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안이라는 감정을 이제는 새롭게 받아들이며, 나를 조금 더 성장하게 하는 적당한 자극제가 되어줄 것이라 기대한다.

작년에 이상심리학 강의를 수강하게 된 것도 나의 이러한 불안 증상을 더 깊이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강의 내용에 따르면, 불안은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감정이지만, 위협적이거나 위험할 수 있는 특수한 환경에 적응하고 자신을 보호하게 하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정서 반응 중 하나라고 한다. 또한, 우리는 누구나 생활 속에서 불안을 경험한다고 말한다.


나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수용하고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불안을 치료해서 없애야 하는 감정이 아닌, 평생 함께할 친구로 조금씩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20년간 완벽주의를 연구한 이동귀 교수의 <네 명의 완벽주의자>라는 책에서는 '적정 수준의 불안은 사람을 고무시키고 몰입하게 만들어서 수행에 도움이 되지만, 과도한 불안은 회피를 유발한다'고 말한다. 실수 없이 일을 완벽하게 잘 해내야만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다 보니 선뜻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걱정에 먼저 빠지게 되는 것이다.


기억하자. '반드시' 통제해야 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대안을 찾을 수 있다. 완벽함에 강박적으로 매달리기보다, 적당히 괜찮은 정도를 바라면 일이 이루어질 확률도 높아지고 더 좋은 대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삶에서 '반드시', '절대', '꼭' 통제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는 생각에 빠져, 다른 좋은 것들을 잊고 있지는 않은지 마음속을 잘 들여다보자.



오늘도 하루를 시작하면서 불안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틈틈이 파고든다. 가끔 그 생각에 매몰되어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기고, 누리지 못하는 나를 볼 때면 걱정스러운 마음에 불안이 또 올라온...(불안의 무한 루프)

다만, 이제는 조금 더 나의 불안을 긍정적으로 토닥여주고 싶다.

또 왔구나, 너!라고 말이다.

나는 이 친구를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따뜻하게 받아들이며 두려워하지 않고, 나를 조금 더 성장하게 하는 적당한 자극제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 불안한 감정이 심하게 올라올 때면 빗소리와 뉴에이지가 섞인 음악을 찾아 듣곤 하는데,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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