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너의 잘못이 아니야
1997년에 개봉한 영화 '굿 윌 헌팅'의 주인공인 천재소년 윌은 어렸을 때 입양과 파양, 가정폭력을 당하며 비뚤어진 마음으로 성장하면서 타인을 조롱한다. 하지만 심리학 교수 숀을 만나게 되면서 그의 삶이 달라진다.
숀은 윌에게 계속해서 말한다.
It's not your fault.
입양된 가정에서 폭력을 당한 것도, 파양을 당한 것도 어린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엄청난 말이 아님에도, 윌의 인생에서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은 없었다. 진정한 마음의 치유가 이루어지는 그 장면을 보면서 함께 울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 여운이 가시질 않았고, 나의 마음에 늘 자리했던 나를 향한 화살들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나의 잘못이 아니었음에도 끊임없이 나 때문이라고 반추하던 순간들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것이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대체로 양심적이고, 반추와 자기 성찰을 많이 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어떠한 상황이 발생했고, 그 상황이 좋지 못할 때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많다.
내가 조금 더 잘했더라면
내가 거기서 그렇게 말했더라면
계속해서 과거의 상황을 되감기 하듯 하나하나 짚어보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다소 강압적인 엄마의 교육방식 덕분인지 아니면 타고난 예민한 기질 때문인지 눈치를 보는 일이 잦았다. 잘못하지 않은 일에도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기검열하는 시간들이 많았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스스로를 통제하거나 다그치곤 했다. 특히 가장 가까운 관계인 엄마의 기분이 나의 기분이 될 때가 많았다. 엄마가 기분이 좋아보이면 그날 하루는 나도 기분이 좋았고, 엄마가 기분이 안 좋아보이면 가만히 숨죽여 있곤 했다.
이경희 작가의 <자기미움>이라는 책에서는 완전한 나의 잘못 같은 것은 없으며, 이미 존재한 과거와 현실을 당당하고 떳떳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핑계가 아니라, 나를 향한 전적인 수용과 허락인 것이다.
즉,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은 없고, 그것이 나의 잘못만은 아닐 것이며, 그 누구라도 비슷하게 행동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훌훌 털어버리라는 것이다(이기적인 마음과는 다르다).
나는 여기서 회복탄력성의 높고 낮음이 결정되는 것 같다.
(회복탄력성이란 위키백과에 따르면, 크고 작은 다양한 역경과 시련과 실패에 대한 인식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뛰어오르는 마음의 근력을 의미한다)
나는 이 부분이 잘 안 되는 사람이다.
'에잇 괜찮아. 내 잘못 아니야. 다음에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며 조금 뻔뻔하게 굴어도 될 법한데, 늘 그러지 못하고 나의 탓을 했다(예민하고 내향적일수록 보통 사람보다 지나치게 양심적인 편이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자기반성(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더 잘할 수 있을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지나간 일을 되감기 해서 살피고, 고민하면서 내 시간을 버리고 있었다.
돌이킬 수도 없고, 생산적인 고민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놓지 못하고 계속 그 상황을 머릿속으로 무한 반복했다. 작은 것 하나하나 다 이렇게 사고하다 보니 회복탄력성이 높을 리 없었고, 늘 나를 깎아먹는 시간들이 많았다.
그런데 또 신기한 것은
남들이 보는 나는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어떤 일에도 평온해 보이고, 담담해 보인다고.
눈치가 없는 것 같다는 말도 종종 들었다(눈치가 있는데 일부러 안 보려고 하다 보니).
회복탄력성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부딪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반성은 하되,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서 걷기까지의 시간이 짧은 것이다.
그 시간이 짧다는 것은 그 부분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 덕분일 것이다.
'나는 할 만큼 했고, 더 이상 후회가 없다'의 마음가짐.
그 마음가짐이 나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새로운 관계와 이별은 늘 큰 상처였고, 관계의 틀어짐이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느껴질 때면 회복하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회복탄력성>을 쓴 김주환 교수는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고 건강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마음 근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사랑과 존중을 두 축으로 한 인간관계를 건강하게 맺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건강한 감정 표현과 건강한 수용.
건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그 모습을 보고 배우면서 나도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그 사람을 통해 나 자신을 온전히 존중받으면 나의 비뚤어졌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받는 느낌이다.
내 주위에는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있다. 그 경중을 따지고자 함이 아니라 사람마다 각각의 모습이 있고, 그 모습이 무엇 하나도 틀리지도, 잘못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자기만의 방식대로 다듬어갈 뿐.
오늘의 나도 그렇다. 힘든 일이 생겨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툭툭 털고 일어나는 시간이 짧기를 바란다. 나의 잘못이 아닌 일에 일일이 연연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해도 그런 내 마음을 다독이며 다시 걸어간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문구를 우연히 접했다. 그 문구가 주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괜찮아도, 괜찮지 않아도 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