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 페르소나의 어원을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 시대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페르소나'라고 불렀다고 한다.
따라서 멀티 페르소나는 '상황에 따라 가면을 바꾸어 쓰듯이 상황적 필요와 역할에 따라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고 다양한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다층적 자아상'을 의미한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카를 융은 "건강한 페르소나는 한 개인이 사회적 요구에 잘 적응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라고 주장했다.
나에게는 직장에서의 모습과 지인들과의 모습, 나 혼자만의 모습 이렇게 3가지가 있는 것 같다.
그 3가지 안에서도 각각의 모습이 나누어지는데, 특히 직장에서의 모습이 가장 나답지 않으면서도 또 나답기도 하다.
사회 초년생 시절만 해도 나름의(?) 애사심이 있어 일에 대한 욕심이 가득했다. 시키는 일은 마다하지 않고, 남의 일과 나의 일을 가리지 않고 다 떠안았다. 퇴근 후에도 직장과 분리된 내 일상을 꾸려가기보다는 다음 날 있을 회사 업무를 걱정하거나 준비하느라 남은 휴식 시간마저 쏟아붓고 있었다.
매일 쳇바퀴 돌듯 정신없이 출근과 퇴근, 야근의 경계선 없는 생활을 지속하다 결국 지치고 말았다.
한동안의 쉼이 필요했고, 첫 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온전히 쉼의 시간을 가지며 나의 직업과 적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이렇게 일만 하다 나이 들어 죽는다면 나의 인생에 남는 것이 무엇일까
지금의 나는 직장에서의 나와 퇴근 후 나를 철저하게 분리하려고 한다. 직장에서는 조금 차가워 보일지라도 철저하게 선을 지키려 하고, 지나치게 사적인 관계는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그 선이 애매해지는 순간 일과 감정이 분리되지 못해 의가 상하는 일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일은 일이고, 사람은 사람이다.
일은 일이고, 내 삶은 내 삶이다.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직업을 다시 선택하는 과정에서 조금 더 의미 있는 일을 찾고자 노력했고, 성취보다는 지속하는 과정 자체에서 보람이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생각했다.
내가 완벽히 꿈꾸던 직장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직장에서는 어느 정도 수용 가능한 정도의 가치관과 업무를 담당하며 4년 차에 접어들었다.
직장 밖 나의 삶은 여러 가지가 있다.
독서와 글쓰기, 시 필사, 독립서점 방문, 산책과 음악 감상, 드라마와 영화 감상, 소중한 사람들과의 대화, 다양한 문화생활 경험 등 일일이 나열하자면 꽤 많은 가짓수를 차지할 것이다.
그리고, 단순한 취미를 넘어 제2의 직업으로 생각하고 있는 부분도 소중하게 다듬어가는 중이다.
즉, 본업은 유지하되, 그것에만 온전한 내 삶을 담지 않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일과 삶의 적절한 균형이다.
주식시장에서 잘 쓰이는 말처럼, 한 바구니에 다 담는 것이 아니라 여러 바구니에 나누어 담아 나의 삶을 다양한 선택지로 채우는 것이다.
주력하는 분야는 있지만, 그 분야만 바라보기에 세상은 넓고, 하고 싶은 일은 아직도 무궁무진하다.
세상이 바뀌었다.
한 우물만 파는 시대는 지났다.
더욱이 한 직업만 파는 시대도 지났다고 생각하다.
나의 창조력은 무궁무진하고 그 가능성을 막고 싶지 않다.
끝으로,
취미라는 것이 꼭 거창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옛날에는 쉬어도 제대로 쉬어야 한다는(제대로 쉬는 게 대체 뭐란 말인가) 강박관념이 있어서, 취미도 생산적이거나 결과물이 있어야 취미로 인정해 주는 내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다.
킬링타임이 될지라도 취미는 취미다. 그 순간 내가 행복했고, 재미있었다면 그 취미는 충분히 가치 있는 취미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수와 필사도 좋아하는데, 작품을 만든다거나 남긴다는 의미보다 반복되는 그 동작을 통해 하나의 명상을 하는듯한 기분이 든다.
우리는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그 모습을 비단 나쁘다라고만 단정 짓기는 어렵다. 한 가지 목표만 바라보고 살다가 그 목표를 이룬 후에 허무감이 찾아오거나 그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때 좌절감이 찾아오는 것은 나의 여러 가능성을 닫았기 때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가면을 쓸 때, 거짓과 정직을 구분하는 명확한 선은 있어야 할 것이다.
1988년 당시 많은 인기를 끌었던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라는 노래(가수 조성모가 리메이크했던) 속 가사말처럼,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이 없... 는 것은 아니고, 나의 가능성을 더 자유롭게 열어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