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욕심쟁이

by 내민해

누군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시계가 걸어 다니는 것 같다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계획된 일정들을 차근차근 처리하는 나의 모습을 두고 한 말이다.

그렇다. 사실 나는 시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시간에 대한 나만의 규칙들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4가지만 정리해보자면



우선 첫 번째,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다.


내향인이 세상과 공존하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고찰을 담은 <세상의 잡담에 적당히 참여하는 방법>이라는 책의 저자인 젠 그렌맨은 내향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향인은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은 우리의 심신에 활력을 주는 연료다. 혼자 있는 시간이 부족하면 지치고 정신적으로 고갈되고 피폐해진다. 그리고 우리의 내면과 신념에서 멀어질 수 있다. 그 시간은 또한 단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우리가 세상에 기여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다.


나는 타인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기보다 나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는 경우가 많다. 안정적이고, 계획적인 삶을 모토로 살아가는 나에게 쉼표 같은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근데 이 혼자만의 시간이라는 것이 타인과 얽히면 이해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테면 누군가 나에게 주말에 뭐 하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 다른 사람과 약속이 있다고 하면 수긍하는데, 나와의 약속이 있다고 하면 수긍하지 않는 것이다. 나와의 약속은 언제든지 미룰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그 말이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내가 나와한 약속의 중요도가 얼마인지 알지 못하면서 왜 나의 시간에 대해 저렇게 말하는 건지... 되려 나보고 겨우 그런 걸로 자신과 약속을 잡지 않는 게 서운하다고 말하면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말문이 턱 막히곤 한다. 회사에서도 사실 나는 혼자 밥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누군가 같이 밥 먹자는 제안을 거절할 때 내가 밥을 혼자 먹고 싶어서 거절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말은 '어차피 혼자 먹을 거면 나랑 먹자'라는 말인데, 왜 어차피냐는 것이다. 어차피가 아니라 일부러 밥을 혼자 먹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왜 이해시켜줘야 하는 것일까. 보통 이 경우에도 본인이 거절당했다고 느끼며 불쾌해하는데, 왜 내가 다른 사람과 약속이 있어서 거절하면 괜찮고, 나와의 약속(혼자 있고 싶은)이 있는 것은 괜찮지 않은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무튼 주제가 옆으로 빠졌는데, 그만큼 나에게 시간은 중요하다. 특히 혼자만의 시간은 나에게는 생명수와도 같아서 이 시간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양보하고 싶지 않다.


두 번째,

시간 낭비를 싫어한다.

입에 자주 달고 사는 말 중 하나인데, 시간 낭비를 싫어하다 보니 하루 일과를 잘 짜두는 편이다. 당일에 짜기보다 그 전날, 전주에 미리 생각해두고 빈 시간을 하나씩 채워가는 방식으로 일정을 정리해둔다. 그렇다고 반드시 그 시간에 그 일정을 지켜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순위에 따라 못할 가능성도 열어놓고 다음 일정에 무리가 생길 것 같으면 중요도에 따라 과감하게 생략하기도 한다. 물론 나 혼자와의 약속일 경우에 한해서다. 타인과의 약속을 당일 그 시간이 되어서 갑작스럽게 취소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어떤 일이든 일정 시간을 정해두는 편이다.

이 말은 한 가지 일에 너무 오랜 시간을 한 번에 쏟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시간을 쪼개서 활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회사 업무도 하루에 다 몰아서 하지 않고, 여러 가지 업무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일 단위로 촘촘히 나눠서 하루에 적당량만큼 달성하는 편이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몰입도도 떨어지고, 오래 붙잡고 있는다고 해서 크게 나아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도, 한도 끝도 없이 쓰는 것이 아니라 일정 시간을 정해놓고 쓰는 편이다. 시간을 정해놓지 않고 쓰다 보면 자꾸 부족한 점이 보여서 보태고, 수정하다 보면 이 글이 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조차 모호해진다.

그 외에도 식사를 할 때, 쉴 때, 책과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도 대략적인 시간을 정해두고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 편의 영화를 이틀에 걸쳐 끊어보는 경우도 꽤 자주 있다.

정보에 대한 검색이나 쇼핑을 할 때도 꼭 시간을 정해둔다. 시간을 정하지 않으면 더 좋은 것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욕심을 내게 되고, 시간이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지면서 내가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정보 검색 같은 것은 나의 경우 오래 볼수록 판단력이 더 흐려지기 때문에 '괜찮은 리뷰 딱 10개만 봐야지'라고 생각하고 시작한다. 쏟아지는 정보의 호수 속에서 알고 있는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욕심을 버려야 지치지 않고 정확한 정보만을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네 번째,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싫어한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느낀 것은 생각보다 시간 약속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만큼은 철저하게 지키려 한다. 상대방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시간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시간도 소중하고, 타인의 시간이 나로 인해 낭비된다면 미안하다고 꼭 말해야 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이건 나의 철칙과도 같은 것인데, 시간 약속을 습관적으로 어기는 사람은 만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에이, 조금 기다릴 수도 있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모든 것을 계획대로 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하지만 적어도 시간을 지키지 못할 경우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것이 맞고, 상대방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도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지속되면 타인에 대한 미안함마저 느끼지 못하게 되고 본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아니 이것이 잘못이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사회생활을 통해 알게 되었다.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면서 가장 기본적인 시간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괜찮고, 좋은 사람이라도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고 멀리하게 되었다. 그 사람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시간이라는 것에 얼마나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다른 것들에는 크게 욕심을 내는 편이 아닌데, 이상하게 시간에 대해서 만큼은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곤 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이벤트처럼 반가울 수도 있는 갑작스러운 방문 같은 서프라이즈는 정말이지 칠색 팔색 하는 편이다. 남자친구의 계획에 없던 방문, 지나가다가 갑자기 '집 앞이야 나와', '나 지금 너네 회사 앞이야' 같은 멘트들은 정말이지 나와 맞지 않는 결이다. 실제로도 지난 연애 중에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연인을 그냥 가라고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걸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는 게 정말이지 내 사고로는 이해가 어려웠다.


나는 시간에 끌려다니기보다 내가 먼저 시간을 끌고 나가려고 하는 편이다. 짧은 인생 속 시간을 허비하며 보내는 것이 나에게는 큰 낭비와 같다고 여겨진다. 돈을 낭비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토록 예민한 사람들이 왜 시간을 낭비하는 것에 대해서는 안일하게 반응하는지 가끔 의문이 올라온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지만, 돈만 벌기 위해 시간을 포기하는 것은 나에게 의미가 없다.

돈도 중요하지만, 나의 소중한 시간을 내가 좋아하는 직업과 관계, 일과 취미로 차근차근 채워나가는 주체적인 삶이 좋다. 그만큼 나에게 시간은 중요하다. 돌아봤을 때 후회하는 일이 없게 오늘의 이 시간도 소중하게 가꿔나가고 싶다.


똑딱똑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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