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서울광장에서는 멍때리기 대회가 열렸다. 멍때리기는 아무런 생각 없이 넋을 놓고 있는 상태를 뜻하며, 대회의 규칙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현대인의 뇌를 쉬게 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는 이 대회는 간접적으로나마 비움을 경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나는 평소 생각이 많은 편이다. 하나의 장면을 보고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생각의 가지가 끝도 없이 늘어가는 느낌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런 나도 종종 멍을 때리긴 하는데, 이때는 생각을 안 한다기보다는 몸이 너무 지쳐서 한 곳을 멍하게 응시하는 느낌의 멍이다.
타야 할 버스가 저 멀리 정류장에 도착한 게 보였을 때, 다다다다 뛰어가서 버스카드를 찍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헉헉대면서 창밖을 멍하게 보는 경우의 멍이랄까. 이것을 비움이라고 보기는 조금 어려울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세상의 잡담에 적당히 참여하는 방법>의 저자인 젠 그렌맨은 사실 누구나 가끔은 생각이 너무 많아질 때가 있지만 내향인은 그런 경향이 좀 더 강하다고 말한다. 게다가 생각이 많은 것이 제2의 천성과도 같기 때문에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실제로 여러 내향인들에게 "지나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라고 물었을 때, 그들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한다.
수도꼭지 100만 개가 한꺼번에 열려 있는 것 같다.
머릿속으로 아무리 수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연습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여전히 누군가와 어려운 대화를 해야 한다.
내가 하는 생각들은 미래의 계획과 같은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것도 있지만, 대체로 과거의 성찰인 경우가 많다.
'아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같은 류의 것들 말이다.
책에서는 반추와 걱정은 수면의 질과 양을 떨어트리고, 지나친 생각은 병이라고도 말한다.
나도 타고난 내향인 중 한 명으로 위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생각을 억지로 안 하려고, 머리를 쉬어주려고 해도 생각을 멈추기란 불가능하다.
다만, 다른 생각으로 넘어가기 정도는 가능하다.
즉, 내가 깊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주제가 너무 심각할 경우는 그 생각을 멈추려고 하기보다는 다른 주제로 빠르게 생각을 전환하려고 한다. 좀 더 생산적이고, 희망찬 내용으로.
작년부터 약 9개월 동안 글쓰기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사실 글쓰기 모임을 지속하는 것도 생각과 연관되어 있다. 생각이 많은 나를 조금 더 생산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환경에 놓아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루의 글감을 받으면 다른 생각들(주로 걱정들)을 접어두고, 오늘은 어떤 글을 쓸까에 나의 생각이 집중되곤 하는데, 그 몰입의 과정이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
나의 삶은 대체로 가볍고, 자유롭기를 추구한다.
보편적인 사람이 되기를 싫어해서 그런지 유행에 기민한 편도 아니고, 물욕도 없어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한다. 꼭 필요한 물건만 구입하고, 그 외에는 관심조차 주지 않는 계획적인 삶을 지향한다.
다만, 내 삶에 유일한 과부하가 있다면 그건 바로 생각이다.
멈춰야지 하면서도 안 되면 '왜 못 멈추지?' '어떻게 멈추지?' '남들은 잘 멈춰지나?'
빠져나올 수 없는 무한 루프.
명상을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내 삶에 '비움'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싶었다. 특히 머릿속을 비운다는 것은 내 인생에 가능성이 있는 명제인가 진지한 물음까지 올라온다.
그리고, 명상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명상은 생각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작사가이자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김이나 작가는 자신의 저서인 <보통의 언어들>에서 명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티벳 승려들처럼 명상의 고수가 아닌 이상, 보통의 사람이라면 떠오르는 생각들을 막을 순 없다. 그럴 땐 가만히 숨을 쉬며 그 생각들을 바라보라고 한다. 신기한 것은 '걱정을 하고 있는 나'를 인지하는 것만으로 실제로 스트레스가 반은 넘게 사라진다는 거였다. 현재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것, 어쩌면 명상은 그걸 위해 하는 걸지도 모른다.
이 사실을 알고 명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을 비우려고 시작해놓고, 명상하면서도 생각의 꼬리를 끊지 못하는 내가 답답하다 여겨졌는데, 실은 억지로 없애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있는 나를 그저 인식하는 것이 명상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버린 것이다.
오늘도 나의 생각 고리는 끊임없이 돌아간다. 다만, 그 생각이 유유히 흘러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다. 내 삶에 머릿속을 비운다는 명제는 영원히 존재하기 어렵겠지만, 조금 더 편안한 내가 되기를 기대하며 오늘 밤도 명상으로 하루를 마무리해야겠다.
다들 오늘 하루도 평안하세요. 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