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조금 더 따뜻한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어
영화나 드라마, 책의 소재가 학원물(학교에서 학생들의 생활과 그들 간의 관계를 묘사한 대중문화의 한 장르)인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책도 청소년 문학을 관심 있게 읽는 편이고, 교복을 입고, 한 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같이 수업을 듣던 그때 그 시절의 아련한 향수가 아직도 남아있다.
학교를 배경으로 할 때마다 나오는 공통적인 주제가 있는데 바로 교육이다.
개개인의 개성은 사라진 채 교사와 학부모의 일방적인 교육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모습.
아이들은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약육강식의 세상을 배워간다. 주입식 교육, 경쟁 사회, 줄 세우기 등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하나의 작은 사회를 경험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철저하게 등급으로 나눠진다. 언어 몇 등급, 수리 몇 등급 등(요즘은 국어, 수학으로 명칭이 바뀐 것 같지만)
그곳에서 자신을 증명하는 가치는 성적이다. 점수가 높을수록 인정받는다.
그리고, 획일화된 줄 세우기에서 벗어난 아이들은 낙오자가 되어 문제아로 취급당한다.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나는 열등감과 비교의식들.
아이들은 세상의 다정함을 배우기도 전에 살아남는 법을 먼저 배운채 공감이 사치인 삶을 살아간다.
<공부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김영민 교수는 한국 교육에 대해 다음과 같이 꼬집어 말한다.
경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패거리를 만들고, 위계적인 '갑질' 관계를 일상화하고, 자칫 자신도 이 경쟁 속에서 죽임을 당할까 하는 두려움에 타인을 짓밟기를 서슴지 않는다.
이러한 삶의 모습은 청소년기에 사실 이미 시작되었다. 한국은 일찍부터 입시에 정열을 바친다는 점에서 교육열이 강한 나라이지만, 진정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는 점에서 교육에 냉담한 나라이기도 하다.
마치 부동산에 관심을 쏟으면서도, 그 부동산에서 어떻게 희로애락을 쌓아 올릴지에 대해서는 냉담한 것처럼.
사람들이 입시와 부동산에 초미의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것들이 계층 이동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학에 성공한다고 해서 갑자기 대단한 선물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상급 학교 진학에 실패했을 때 치러야 할 사회적 대가는 혹독하다. 삶의 노역이 대물림되는 상태, 즉 노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릴 때 나는 부모님께 예절에 대해 지나치게 교육을 받았다.
어른들이 하라면 무조건 따르고, 항상 웃으면서 먼저 인사하고, 싫다는 말은 하면 안 되고, 착하다는 말은 칭찬이고, 밥을 먹을 때는 이렇게 앉아서 먹고, 공부는 무조건 잘해야만 하고, 어떤 친구들을 사귀어야 하고 등등 나열하다 보면 끝도 없다.
나는 지금 부모님의 교육방식이 틀렸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과 달랐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각자만의 교육관이라는 게 존재해야 하고, 자신의 교육관만이 절대적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부모님 세대의 교육이 지금 세대의 아이들에게 꼭 맞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것이 내가 평균적인 삶, 보편적인 삶을 지양하는 이유다.
개개인의 생각과 의견이 결여되어 있는 교육제도는 누구를 위한 교육제도란 말인가. 우리는 자라면서 '왜?'라는 질문에 대해 얼마나 자유로웠나.
우리나라의 대학입시제도가 아이들의 유년시절에 얼마나 안 좋은 영향을 주는지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그것을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직 적당한 대체방안을 찾지 못했고, 큰 변화에는 그만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어릴 때 배우고 자랐던 모든 것들을 나의 다음 세대에 그대로 대물림하고 싶지는 않다. '고통의 대물림'이 아닌, '고통의 단절'에 집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잘못된 교육방식은 과감히 끊어내고 다음 세대를 위해 변화된 교육들이 계속 생겨났으면 좋겠다.
우리의 교육에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결여되어 있다. 책을 읽는 것도 어쩌면 이와 비슷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작가의 글을 통해 타인의 감정과 상황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
대학교육 또한 마찬가지다. 그 교육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라는 책에서 어린이 심리치료사인 하임 G. 기너트는 교육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학생들이 부디 ‘인간’이 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박식한 괴물이나 유능한 정신병자, 혹은 고등교육을 받은 폭군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읽기, 쓰기, 철자법, 역사, 수학은 학생들을 인간답게 만들고 난 다음에나 비로소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추구하는 교육은 인간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 우선시되는 교육이다.
우리의 기술은 빠르게 변화하고 성장하지만, 인간의 의식 수준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에 씁쓸함이 올라올 때가 있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혐오 범죄, 인격모독, 극단주의 등 모든 문제가 공감의 결여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는 점점 더 각박한 세상 속에서 살아갈지도 모른다. 나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이 지구라는 행성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곳인지 알려주고 싶다. 상대를 찍어 눌러야만 내가 사는 사회가 아니라, 먼저 손을 내밀고 함께 걸어가는 사회 말이다. 그리고 그 기쁨을 다음 세대에게 전달해 주는 선순환.
내가 바라고 꿈꾸는 사회와 교육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