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여성들은 노숙을 해도 위험을 피하고자 찾기 힘든 데 숨어 있는 경우가 많고, 또 굳이 남녀를 구분하지 않더라도 어느 한 시점에서 조사되는 '노숙인 등'의 수는 홈리스 상태에 놓인 사람들을 모두 포괄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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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홈리스 여성의 삶 안에는 길거리나 복지시설이나 쪽방이라는 취약한 거처에서의 생활이라고 말해서는 다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아마도 어떤 여성은 더부살이를 하며, 또 다른 여성은 어떤 종교 시설 등에 머물며 안정적 거처가 없는 위기 여성의 삶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고시원 월세가 밀려 쫓겨나게 되면서 그나마 갖고 있던 짐들은 어디에 맡겨야 하는지 고민하는 여성들, 찜질방 비용조차 다 떨어져 구석에서 주인의 눈치를 보는 여성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홈리스 여성들의 삶에까지 우리의 눈길이 머물 때, 숨겨진 위기 여성들의 삶을 변화시킬 방안도 찾을 수 있으리라.
<빅이슈 No.284>
서울역 광장에 나가 조금만 주변을 돌아보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홈리스.
흔히 홈리스라고 하면 남성들의 모습을 쉽게 떠올리곤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생각보다 많은 '여성' 홈리스가 우리 주변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여성의 경우 노숙을 하게 된 원인조차 남성과 사뭇 다르다. 보건복지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남성들의 경우 실직과 사업 실패 등 경제적인 이유로 거리에 나서는 경우가 많은데(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에서 노숙 생활을 이어가는 독고 씨의 원래 직업도 의사였다), 여성의 경우 가정 내 문제와 폭력에 시달리다 거리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거기다 같은 홈리스인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 위험하고, 취약한 환경에 놓이는 경우도 많다. 광장이나 지하도는 성폭력 위험에 수시로 노출되고, 공원 화장실, 찜질방 등을 전전하거나 요양병원, 정신병원 등의 시설로 끌려가기도 한다. 처지가 나은 남성에 기대어 숨통을 틔워보려 하지만 성폭력과 금전적 착취, 돌봄 노동에 시달리기도 한다. ‘2021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를 보면 여성 홈리스의 정신질환 유병률은 42.1%로 남성(15.8%)보다 높다고 하는데, 노숙이 그 원인인지 결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여성 홈리스가 각종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되는 건 암암리에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아닐까.
3월 8일, 오늘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세계 여성의 날은 여성들의 지위 향상을 위한 날로, 1908년 3월 8일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근로여건 개선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시위한 것에서 시작됐다. 세계 여러 나라가 축하하는 국제적인 기념일이고, 우리나라도 1985년부터 기념하기 시작했다. 여성의 인권은 지켜져야 마땅한데, 과연 우리는 어떤 문제에 더 집중하고 있을까.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이해 뉴닉 뉴스레터에서 받아본 통계 자료는 우리나라 100대 기업 임원 비율이었다.
세계 노동자의 41.9%는 여성인데 반해, 회사에서 임원급 역할을 맡은 사람 중 여성의 비율은 세계 평균 32.2%에 그쳐요. 작년 말 기준 우리나라 100대 기업의 여성 임원(439명)은 전체 임원(7345명) 중 단 6%로, 이보다 훨씬 적은 비율이고요. 100대 기업 중 28곳에는 여성 임원이 1명도 없어요.
정치도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9.2%로 세계 186개 나라 중 126위이고, 프랑스의 37.3%, 미국의 29.1%와 비교해도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여성 대표성이 정치, 경제 분야에서 모두 충분히 확보되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2024.03.08 뉴닉>
우리가 성평등을 주제로 이야기할 때, 자주 거론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유리천장이다. 충분한 능력을 갖춘 여성이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인해 조직 내 일정 서열 이상으로 오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근데, 근데 말이다. 그건 그들만의 리그가 아닐까. 그니까, 그 직장이라는 것, 아니 직장은커녕 거주지조차 없는 홈리스 여성들의 이야기는 대체 누가 하고 있는 것일까. 페미니즘의 담론에서조차 투명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가까이에 있지만 타자조차 되지 못한 존재로 말이다. 여성의 인권을 말하는 곳에서조차 그들의 목소리가 누락되는 것만 같아 가슴이 답답해졌다.
내가 오늘 이 이야기를 꺼낸 건, 얼마 전에 만난 한 여성 때문이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종각역에 있는 화장실에서였다. 내가 첫 직장을 다니던 때였는데, 회사가 종각역 근처라 출근길에 잠깐 화장실에 들렀다가 그녀를 처음 만났다. 화장실 입구로 들어서는데, 한 여성이 세면대 앞에 멀거니 서서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중간중간 새치가 섞인 듯한 긴 머리카락을 부스스하게 허리 밑까지 기른 그녀는 낡고 색이 바랜 옷을 입고 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마주한 여성 홈리스였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10살이나 어렸으니, 그녀의 외적인 모습만으로 모든 판단을 끝낸 뒤였다. 나에게 아무런 위협을 가하지 않았음에도 상대가 기분 나쁠 정도로 화들짝 놀라며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 뒤로도 종종 그녀와 마주쳤다. 화장실에서뿐만 아니라 종각역을 걷다가도, 몇 년이 지난 후에는 을지로역에서도 그녀의 모습을 봤다. 10년 동안 그녀를 보고 지나친 횟수를 꼽아보자면 10번은 족히 넘는다. 그리고 얼마 전,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 근처(명동역)에서 정말 오랜만에 그녀를 다시 만났다. 정확히는 만났다기보다 스쳐 지나갔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녀는 10년 전보다 흰머리가 더 늘었다는 것 외에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여전히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알 수 없는 말을 혼자 중얼거리며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이고는 앞만 보며 걸어가고 있었다. 낡은 옷도 그대로였다. 알게 모르게 나처럼 그녀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한 번 보고 잊어버릴 만큼 평범한 모습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요즘도 난 종각역에 들러 <빅이슈>를 구입한다. 빅이슈는 빅이슈 판매원으로 도전하는 홈리스에게 잡지 <빅이슈>를 팔아 판매금 절반을 수익으로 가져가도록 일 훈련 경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시작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빅이슈의 꽤 오랜 구독자다. 그리고 어제 노원역에 갔다가 빅판을 만났다. 늘 지나던 출구였는데, 못 보던 얼굴이었다. 노원역에도 새로운 빅판이 생겼나 보다. 빨간 조끼를 입고 빅이슈를 외치는 그분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이번에는 종각역이 아닌 노원역에서 빅이슈를 샀다. 그 와중에 얼마 전에 만났던 여성 홈리스가 떠올랐다. 그분도 이 기업을 알았다면 지금과 조금은 다른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종로를 떠돌며 하염없이 걷고 계신 그분의 삶이 조금, 아니 많이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