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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Mar 18. 2024

놀이 노동은 놀이일까, 노동일까

말장난일까

«프로젝트 해시태그»는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 시각예술을 이끌어 갈 창작자를 발굴하고 미술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상호협업을 지원하기 위해 기획한 사업이다. 2019년부터 현대자동차의 후원으로 시작한 «프로젝트 해시태그»는 2023년 올해로 4회를 맞이했으며 동시대 시각예술의 확장성을 실험하는 새로운 차원의 공모사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 주말, 국립현대미술관을 다녀왔다. 올해로 4회를 맞이한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3>의 결과물을 보기 위해서다. 프로젝트 공모에 총 102팀이 지원했고, 51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 선정된 두 팀의 결과물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흥미롭게 본 전시팀은 <강냉이 털어 국현감>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프로젝트를 진행한 랩삐(lab B·강민정, 안가영, 최혜련, 협업: 제닌기)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작품에 '놀이 노동(playbor)'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일련의 놀이를 가장한 노동 과정을 거치며 자동화 사회가 일으키고 있는 인간 소외를 파악하고자 이번 작품을 기획했다고 전했다.




프로젝트 제목 ‹강냉이 털어 국현감›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 옥수수를 재배하여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들여오기까지 과정에서의 온갖 물질과 비물질 ‘노동’에 대해 다뤄보고 싶었습니다. 저희는 올 초 서울의 한 미술관 앞 광장에 앱테크를 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의 모습을 보고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이미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노동으로 채우고 있는데도 점심시간이나 여가 시간에도 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흥미가 생겼습니다. 하필 ‘미술관 앞 광장’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군중들이 묘한 풍경을 만들어낸다는 지점이 신기하기도 하고 놀라웠거든요.



그들이 본 광경은 한 금융 플랫폼에서 주관한 행사로, 미술관 근처에서 앱을 켜고 터치하면 돈을 주는 기획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든 현장이었다. 정작 미술관 안에는 아무도 없고, 스마트폰만 쳐다보며 노동을 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묘하게 느껴져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이다. 랩삐의 제닌기 작가는 인터뷰를 통해 "예술을 즐기러 오는 미술관에서도 놀이로 가장되는 노동을 하는 현상을 다뤄보고 싶었다"고 전했다.


나 또한 이번 전시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했다. 일단 전시관에 들어서는 순간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 기이하다. 중앙에는 거대한 LED 기둥이 있고, 그 기둥을 둘러싼 의자에는 사람들이 모여 앉아 스마트폰 게임에만 열중하고 있다. 게임 미션을 완수하면 '랩삐 팩토리'에서 주는 강냉이 한 봉지를 받기 위해서다. 랩삐가 기획한 주제처럼, 미술관이 예술을 즐기는 곳이 아니라 일을 하고 보상을 받는 일터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클릭노동을 통해 얻은 실물 강냉이는 위에서도 언급했던 놀이노동을 그대로 실현하고 있었다. 전시관 한쪽에는 랩삐가 3,000만 원의 창작지원금으로 6개월 간 인천 강화에서 직접 농사를 짓고 옥수수를 수확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미션을 완수한 관람객들이 의자에 앉아 강냉이를 먹으며 영상을 보고 있는 풍경 또한 꽤나 생경하게 다가왔다.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는 것처럼 음식물을 섭취할 수 있는 전시라니.


인간을 규정하는 말 중에 '호모 라보란스(Homo laborans)'라는 라틴어가 있다. ‘노동하는 인간’이라는 뜻인데, 인간에게 노동이 생존을 위한 본능이란 걸 암시한다. 노동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이자 삶의 원동력이 되고, 나아가 인간의 정체성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대가 바뀌고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져도 '호모 라보란스'로서의 인간의 삶은 계속된다고 한다.


얼마 전에 권태에 대한 글에서도 살짝 언급했지만 여기서 말하는 노동이란 원대한 꿈이라기보다는 나를 증명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닐까 싶다. 지인들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농담처럼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죽을 때까지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일이란 단순히 경제활동만을 뜻하지 않는다. 꼭 돈이 되지 않더라도 단순히 좋아하는 여러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흔히 정년퇴직을 하고 삶에 권태를 느끼며 소일거리를 찾아다니시는 어르신들처럼, 삶에 무언가 하나쯤은 쥐고 가야 한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를 보면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여러 가지 노동들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됐다. 직장에서 하고 있는 경제적 활동과 놀이인지 일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몇 가지 것들, 취미의 영역으로 순수하게 좋아서 하는 여러 행위들까지. 그 경계가 모호할 때도 종종 있지만, 이왕이면 자발적으로 좋아서 하는 것들로만 가득 채우려는 욕심도 있다. 게임에 소질이 없는 내가 실물 강냉이를 얻기 위해 클릭노동에 참여했던 순간처럼 말이다. 물론 일터로 출근하는 마음이 매 순간 즐겁고 설레는 건 아니지만, 5년 넘게 몸담고 있는 이 조직이 나는 싫지 않다. 사랑... 까지는 어렵겠지만 여전히 좋아한다(가끔 답답할 때는 있다). 이곳의 직원 중 한 명이자 애정하는 사업의 후원자 중 한 명이기도 한 나는, 설령 이곳을 그만둔다 해도 응원하는 마음만큼은 계속 이어갈 자신이 (아직은) 있다.


그리고 교정교열에도 여전히 관심이 있어 종종 아르바이트처럼 일자리를 들여다보곤 하는데,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은 내가 피싱사기를 당할 뻔했다는 것이다. 이쪽 생태계의 시세를 잘 모르니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는데, 워낙 경계심이 많은 편이라 폐쇄적인 그들의 방식에 물음표가 뜬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것저것 질문을 쏟아냈더니, 그들도 지쳤던지(귀찮았던지) 답을 하지 않았고, 그렇게 나는 피싱사기인 줄도 모르고 '칫, 나도 됐거든, 흥'을 외쳤건만 그게 사기였다니! 내가 그들과 소통했던 건 작년 말쯤이었다. 이제 3월이고 감사도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업무적으로 조금씩 숨통이 트이고 있다. 그래서 오랜만에 교정교열 공고를 확인하다가 어떤 분의 글을 읽고 설마 싶었다. 그 글을 쓰신 분에게 비밀댓글로 업체를 여쭤봤는데, 작년에 나에게 연락했던 그곳이 맞았다! 다행히 나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사기를 당한 사람이 꽤 있는 듯했다. 조심 또 조심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덧, 장강명 작가님의 옛 별명 중 '강냉이'라는 별명도 있었다고 한다. 연결고리가 생긴 것 같아 반가운 마음에 이번에 다녀온 전시를 말씀드렸더니 직접 찾아보시곤, "원 클릭 쓰리 강냉이"라는 게임 이름에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셔서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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