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그 입을 다물어 다오
나는 전화통화를 좋아한다.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이 좋다는 사람도 있고, 직접 얼굴을 보면서 대화하는 것이 좋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선호하는 대화는 전화통화다.
나의 가장 편안한 공간에 누워 이어폰을 꽂고 잠자리에 들기 전 친한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시간은 하루를 마감하는 나만의 꿀 같은 휴식 시간이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내 방의 방음이 좋지 않아 친구들과의 연락을 최대한 자제하거나 산책을 핑계 삼아 동네 골목 여기저기를 걸어 다니며 전화통화를 하곤 했었다. 사람들과의 깊은 대화를 통해 친밀감을 유지하는 나에게 전화통화란 나의 영역을 지키면서도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독립을 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것 중 하나는 이제 나만의 공간에서 마음껏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나의 행복한 일상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인가 이어폰으로 한참 통화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웬 비명소리가 들렸다. 알 수 없는 여자의 비명소리.
정확히 비명이라기보다는 악에 가까운 외침이랄까. 처음에는 무슨 일이 난 줄 알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통화 너머 상대방은 무슨 일이냐고 나에게 재차 물었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며 다시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뒤이어 들려오는 여자의 절규에 가까운 소리.
납치당한 건가? 누구랑 싸우나? 도와달라는 소리인가?
그녀의 생생한 외침이 무섭기도 했지만 걱정되는 마음도 함께 올라와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망설이고 있던 중에 소리가 잦아들었다. 옆 집이라고 하기에는 꽤 거리감 있게 들렸던 그 비명소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잊혀 갔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면서 깨달았다.
그녀는 꽤 주기적으로 소리를 지른다는 것을 말이다.
처음에는 저녁과 밤사이에 규칙적으로 비명을 지르더니 어떤 날은 새벽 2시에도 지르고, 또 어떤 날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데 느닷없이 비명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랐던 적도 있다.
도대체 그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1. 납치나 감금
2. 연인 혹은 배우자와의 주기적인 다툼
3. 힘든 삶에 대한 절규
이 3 가지 말고 다른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던 중 최근에 새로운 4번이 생겨났다.
그 이유는 그녀와는 또 다른 집의 이야기가 얽혀있다. 그 내용은 다음 화에서 계속 이어진다.
알면 알수록 신기한 층간소음의 세상.
그녀의 삶은 대체 어떤 삶이기에 저리도 악에 받친 비명이 나올 수 있을까.
누가 그녀를 이토록 힘들게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