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좋게 지내면 안 될까요

그만 좀 해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by 내민해

나는 출근을 일찍 하는 편이라 남들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고 일찍 일어난다.

그 일찍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 기상시간은 보통 5시 전후다.


한 번은 아침을 준비하면서 그릇과 그릇의 마찰음이 조금 크게 났던 적이 있는데, 그때 갑자기 여자의 절규에 가까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편의상 이제 그녀를 여자 1호라고 칭하겠다.

이쯤 되니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이 나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궁금해졌다.

가까운 거리라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들었던 비명은 꽤 멀리서 느껴졌다. 약간 아득한 느낌이랄까.

처음에는 옆집인 줄 알았다. 옆집에서 가끔씩 남자의 기침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여자 1호가 함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 있었던 일로 여자 1호와 옆집 남자는 같이 사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도대체 제가 왜 이걸 알아야 하죠).

뭐 정확히는 알았다기보다는 나의 추측에 가깝지만 사실과 가깝다고 추리해 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웃들에게 층간소음으로 시달리다 보니 애꿎은 추리력만 늘어간다.

이유인즉슨, 얼마 전에 있었던 일 덕분이다.


평소 여자 1호의 소리 지르는 시간대가 있다(나름의 기준 같은).

보통 아침 일찍이나 밤 시간이다. 여기서 말하는 밤은 대략 오후 8시에서 10시 사이를 의미한다. 그래서 그 시간이 되면 나는 자연스럽게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잔잔한 뉴에이지보다는 조금 활기찬 음악을 듣거나 재밌는 유튜브 영상을 보며 나름 마음의 안정을 찾곤 한다.

근데 웬걸. 얼마 전에 한참 깊은 잠에 빠져있는데, 여자 1호의 절규가 또다시 들려왔다.

이상하다. 지금은 소리 지를 시간이 아닌데...(응?)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비비며 탁상시계를 보니 새벽 2시. 무려 새벽 2시다!

대체 왜 저러는 걸까 싶어 화가 나서 같이 소리를 지를까 하다가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도로 자리에 눕고 잠을 청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늦은 밤.

오늘은 또 옆집 남자가 시작되었다. 이 남자는 편의상 남자 1호로 지칭하겠다.

남자 1호의 생활패턴도 나름 알고 있다(왜 알게 되는 거냐고요).

그는 대체로 조용하게 자기 할 일을 하는 편이다. 가끔 친구들을 불러올 때만 빼고는.

보통은 아주 늦은 시간은 아니고 저녁 시간대에 그의 친구들인지 지인들인지 모를 남자들이 놀러 올 때가 있다. 내가 어떻게 그들의 성별까지 알고 있느냐고 묻는 다면 그들의 거친 대화 소리가 내 방까지 생생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정말 괴롭고 무서운 시간이다.

괴롭다는 것은 소음 때문이지만, 차라리 소음만 있으면 괜찮을 것 같다. 이 늦은 저녁 남자들 여럿이서 나누는 대화의 내용이 무엇일까.

굳이 내가 알고 싶지 않은데 너무 생생하게 전해진다는 사실이 꽤 공포스럽다.

남자 1호의 친구들(?)이 찾아오는 날이면 나는 또 자연스럽게 이어폰으로 손을 뻗는다(이러다가 내 귀가 망가지겠다 싶어).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여자 1호의 새벽 2시 절규에 이어 다음 날은 남자 1호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평소 같으면 저녁 시간대에 사람들과 놀던 그가 때아닌 밤 11시에 사람들을 부른 건지, 그들이 놀러 온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거친 대화의 음성이 내 방을 건너 내 귀에 생생하게 꽂히는 그때의 공포스러움이란.

아니 대체 이 늦은 시간까지 왜들 이러시는 거예요. 저한테.

그들은 거의 12시가 다 지나서야 집으로 간 건지 잠이 든 건지 알 수 없지만 잠잠해졌다.


그리고, 그 2가지 사건을 바탕으로 나의 추리력이 또 발동했다.

일단 지금까지의 추측을 써 내려가자면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가 나온다.


1. 여자 1호와 남자 1호는 함께 살지 않는다.

2. 아마 여자 1호는 남자 1호의 밑에 집이 아닐까 싶다.

3. 남자 1호는 식탁을 끌거나 발도장을 찍는 소음을 늦은 밤 꽤 자주 낸다.

4. 그동안 여자 1호의 절규에 가까운 비명은 그 행동에 대한 보복성이 아닐까 한다.

5. 윗 집의 시끄러움에 호소하는 절규였던 것이다.

6. 얼마 전 여자 1호가 평소와 다른 시간대인 새벽 2시에 소리를 지른 건 그동안 참았던 것이 폭발한 것이 아닐까 한다.

7. 화가 난 남자 1호는 평소 같았으면 늦은 시간에는 사람을 잘 부르지 않지만, 그녀에게 다시 보복하고자 그 늦은 밤 친구들을 불렀다.

8. 큰 소리로 떠들고, 연신 발도장을 쿵쿵 찍어가면서 그녀에게 보복성 행동을 보인 것이다.


지금까지 나의 시나리오는 대충 이러하다.

물론 이 시나리오가 사실이라는 증거는 없다.

다만 나의 추측으로 그들의 행동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고 할 뿐.

이게 아니라면 대체 나의 이웃들은 왜 저런 행동들을 하는 거냐고요.


오늘은 출근 준비를 하는데 아주 오랜만에 여자 1호의 절규를 들었다.

이 말인즉슨 남자 1호가 오늘 밤 그녀에게 또 어떤 보복을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고, 고래싸움에 늘 새우등이 터지는 나는 그저 그 소음들을 이어폰이라는 작은 물건에 의지하며 잠을 청해야 한다.

하... 차라리 아예 일찍 잠들어버리고 싶다.

퇴근길에 수면제를 사올까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평화로운 아침이다.